다들 아시다시피 <이어도>, <파계>를 비롯한 김기영의 영화들은 오늘날 씨네필에 의해 재발견되어 부산영화제를 통해 상찬되었고 최근에는 영상자료원에서 그의 전작전을 치룬 바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의 페르소나였던 이화시 선생님으로부터 김기영 감독님이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10여 년을 함께 한 배우들인 윤여정, 이화시, 김정철 등의 주연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왔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김기영에 관한 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일화에서 ‘김기영 감독이 꽁꽁 언 떡을 접대했다’(이효인의 글)거나 <이어도>의 배경이 된 차귀도에서 ‘혼자 몰래 삼겹살을 구워먹었다’(DVD 코멘터리)는 식의 감독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강조는 그의 천재적 기질과 함께 그를 괴팍하게 인상지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일화들이 부분적으로 사실일지라도 이 두 일화가 김기영 감독이 십 수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스탭들을 때론 독려하고 다독거려가며 작업해왔다는 사실을 덮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김기영 감독 자체에 대한 오해 역시 영화세계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연구와 함께 보강되어져야 할 ‘결핍’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의 이런 사소한 오해가 김기영 감독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리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일개 촬영기사를 촬영의 명인으로 키운 안목과 능력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그의 영화가 초창기 한국영화의 ‘모더니즘’ 경향을 개척하였음은 아직도 여전히 불분명한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김기영 감독에 대한 이해가 그의 괴팍함과 기벽에 대한 강조에 치우치며 일화를 재밌게 주억거리고 그저 찬탄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의 영화세계에 왜 <반금련>같은 중국 고전을 각색한 영화가 끼어있는지, 왜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같은 미스터리 판타지 영화와 <흙>과 <혈육애> 같은 문예영화들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번 전작전을 보면서 <파계>의 조감독이셨던 유지형 감독님과 이화시 선생님에게서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어도> 혹은 <파계> 같은 걸작들 역시 당시의 쿼터를 따내기 위해 만들어야 했던 영화에 불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에 따르면 김기영 감독을 비롯한 당시의 감독들이 쿼터를 따내기 위해 급조한 영화와 문예영화 혹은 예술영화는 비교적 뚜렷이 구분되었다고 하는데 이번의 증언에 따른다면 이러한 서술도 수정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만큼 지나간 세대의 위대한 영화유산과 그 경험이 사실 지금은 오해되고 있거나 추측으로 메워지고 있어 세부적인 사항들은 아직 ‘미몽의 상태’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에 약간 손아래의 감독으로서 촉망받던 이만희감독이나 비슷한 연배였던 김수용, 유현목, 신상옥 감독 역시 이러한 전설적인 아우라의 휘황찬란함이 걷혀지고 실체로 드러나야 합니다.
좀 더 심각하게는 한국영화의 이론적 지형이 작가연구를 주요한 기반으로 하는 한편 아직도 한국영화의 역사를 역사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파헤치는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기 척박했던 연구풍토는 그래서 한국영화의 장르를 언제나 ‘한국적 리얼리즘’이라는 잣대로 평가되곤 했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안에 녹아있는 경향들은 단지 ‘리얼리즘’의 자장 안에만 가둬둘 수 없는 요소들이 오히려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어도>의 복잡한 회상 씬들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라는 놀랄만한 선견지명과 함께 샤머니즘과 과학을 결부시키고 있고 인간의 성에 대한 탐닉을 종교적인 경지로 탈바꿈시키는 등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거의 까무라칠 정도의 전율을 안겨줍니다. 특히 이화시와 박정자의 눈빛은 안광을 내뿜을 정도이지요. <파계> 역시 마찬가지로 고은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껍데기만 빌려왔을 뿐 <파계>라는 영화의 핵심은 온전히 김기영 감독이 던진 ‘화두’임에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한창 짝을 이뤄 놀라운 영화적 경험을 하게 했던 정일성 촬영감독의 솜씨 역시 상당부분 연출력과 결부된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영화에서 당시의 ‘리얼리즘’적 경향을 이탈하려는 욕망을 읽을 수 있는 이러한 실험적 기법들은 70년대의 새로운 한국영화의 경향이었던 ‘혼종’된 모더니티의 한 흐름으로 보입니다. 특히 하길종의 영화들과 이장호의 영화들은 한국영화가 정치적 억압 속에서 탈출구로 삼았던 ‘노스탤지어’ 혹은 ‘낭만주의적 경향’과 결부되어 정치적 무의식을 현재에 투사하는 한편 분출하는 에너지로서의 ‘낭만성’을 통해 비극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대상황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김기영 감독의 ‘외화수입 쿼터를 따내기 위해’ 급조한 영화들이 결국 이상한(?) 걸작들을 탄생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치적 억압에 의해 검열되어 원형을 알아볼 수조차 없는 <반금련>의 ‘기괴함’과 산업적 파행이 빚은 급조된 영화들의 흐름을 보면서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동시대 미국 혹은 프랑스의 영화적 흐름을 생각해봐도 그러합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같은 해 1960년에 나온 고다르의 영화 <네멋대로 해라> 혹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이러한 만개직전의 영화적 욕망들을 정치적 억압에서 비롯된 산업의 구조적 파행으로 망치질하고 말았습니다. 김기영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외화수입쿼터를 위한 급조된 영화만들기로 내몰렸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정치적 억압보다는 ‘산업화’의 욕망이 영화산업 전반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한 두 영화의 메가히트가 한국영화산업을 건져 올릴 수 없다는 것이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교훈인데도 말이죠.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라는 마지막 만주웨스턴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요즘 다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으로 다시 극장에 내걸릴 채비를 마쳤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운명을 짊어진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 못내 불만스럽습니다. 몇 백억 짜리 대작영화들 중심의 산업구조재편이 낳은 불황에 대한 결정타가 될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놈놈놈>은 저에게 매우 낯선 영화였습니다. 그 이유는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만주라는 공간 자체가 한국인의 인식지도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는 저에게 <놈놈놈>에서 여러 다른 영화들을 경유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데자뷔 현상만을 반복해서 불러일으켰습니다.
<괴물>을 위시한 메가히트작들이 한국영화의 몸집을 쓸데없이 부풀리고 거대자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스크린 싹쓸이는 더 이상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비록 천만관객에 도달한다하더라도 <놈놈놈>이 그 마지막 대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기영 감독을 비롯한 많은 재능 있는 감독들이 외화수입 배급권을 따내기 위한 쿼터채우기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교훈 삼아 제작비를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투자된 것 이상의 프러덕션 밸류를 뽑아내는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화평론가 박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