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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커버가 될 뻔 했던 컷들. (사진 보면 팔팔해 보이지만) 배우들도, 기자들도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날 녹초 상태로 진행된 촬영이라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띈다는.


기대(?)가 많았던 배우 정유미.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의 정유미, 정말 잊기 힘듭니다. <가족의 탄생>은 정유미도 정유미지만 영화가 인상적이었고,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진 않았지만 올해 개봉했던 <그녀들의 방>은 정유미의 어떤 지점을 찍은 작품인 듯.

지면 관계 상, 그리고 인터뷰 기사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얘기라 책에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냥 묻어버리긴 안타까울 것 같아서 아래에 발췌 하는 얘기. 인터뷰에 대해 얘기하다가 얘기가 곁다리로 빠졌던 부분.

"가끔 기사를 다르게 쓰는 기자분들이 있어서 인터뷰가 속상할 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인 것 같다. 내가 했던 얘기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다르게 기사가 나와있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분명히 이렇게 말했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많이 한 건 아니었는데 기준이 참 다르더라.
하지만 안 그런 분들을 만나면 (기사가 나온 걸 보고 너무 좋다.) "우와! 고맙다고 전화하면 안돼?"하고 매니저에게 얘기한다. 매니저는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을테니까 그때 얘기하세요"하고, 난 또 "메일이라도 쓸까?' 하고 묻는다. 실제로 메일을 쓰려고 시도는 해 봤는데 부끄러워서, 오버같기도 해서 보내진 않았다. 메일을 딱 두 번 보내고 싶었었는데, 한 번은 심지어 써놨는데 보내지 않았다. 최근 <스크린> 인터뷰가, 내가 말했던 그대로 기사에 나와서 "우와!" 했다. 다음주에 <스크린> 인터뷰가 또 있다던데 이번엔 다른 기자님이지만, 그때 그 기자님을 꼭 또 만나고 싶다."
- 그 기자의 정체는 <스크린> 신민경 선배였습니다 ㅎㅎ (선배님, 좋으시겠어요)

어찌 된 일인지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웹에 떠있군요. 흠... 일단 링크 끌어와 보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꼬장꼬장한 구도자', 박혁권 씨 인터뷰는, 윤성호 신동일 신정원 감독님이 코멘트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윤성호 감독님과는 전화로 꽤 길게 얘기했는데, 인터뷰도 길고 코멘트도 많아 다 들어가질 못 했어요.

윤성호 감독님이랑 박혁권 씨가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다가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박혁권 씨를 알아보셨다는군요. <하얀거탑> 이후였던 듯. 아무튼 그래서 이것저것 서비스도 막 나오고 아주머니가 신이 나셨다는데, 원래 사인을 완전 싫어하는(사인 받아간 사람이 몇 년 후에 사인을 찢어서 버릴 상상을 하면 딱 하기 싫댑니다.) 박혁권 씨는 끝까지 사인을 안 해주고 버티셨다고. 이름만 적어달라, 점이라도 하나 찍어달라 하시는데 끝까지 안 하셨답니다. 윤성호 감독은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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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역별


칸에서 <박쥐>가 돌아왔다. 27일 귀국한 <박쥐>팀은 28일 압구정 CGV 3관에서 조촐한 기자 회견을 열어 칸에서의 소회를 밝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뜻으로 검은 정장을 입었으며, 칸 현지에서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음을 전해 들은 박찬욱 감독은 <박쥐>팀의 대표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슬픔과 당혹감을 표현했다.

<박쥐>의 심사위원상 수상에 대해 송강호는 "국내 개봉 당시 논란이 많았던 작품인 만큼 세계 영화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던 한편, 감독상이나 남우, 혹은 여우주연상보다는 작품상을 수상해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심사위원상 대상은 아니지만 심사위원상 수상은 <박쥐>에 대한 존중과 박수의 표현이라 생각하며, 매우 기쁘다. 인간적으로 남우주연상 수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봤을 때는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것이 행복하고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해외 영화제를 숱하게 다니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축전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마치 남의 일 같이 낯설게 느껴졌다. 갈라 스크리닝 때 관객들의 진심 어린 환호가 매우 뜨거워서 어느 정도 수상을 기대하긴 했는데, 수상하게 되어 기쁘다. 현지에서 칸국제영화제 62년 역사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라는 말을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별난 예술 영화 취급을 받고, 영화제에서는 장르적 성격이 강한 상업 영화 취급을 받는 온도의 갭이 있는 ‘박쥐’ 같은 작품인 <박쥐>가 영화제에서는 새롭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작품이 출품된다는 것은 한 영화제 심사위원장의 말대로 ‘승자는 있어도 패자는 없는 게임’인데, 상을 못 받았을 때에도 ‘수상 실패’로 받아들이지 말고, 작품이 영화제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돌아온 자체만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 기자의 ‘수상작 발표 때 <박쥐>가 호명되자 야유가 쏟아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박찬욱 감독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송강호가 나서서 ‘어디서 그런 얘기를 하던가? 내가 현장에 있었는데 그건 다른 나라의 다른 작품 얘기고, <박쥐>는 야유 받은 적 없다’고 명확한 답변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이해림 기자

Posted by 집없는 사람

김형식(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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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역별

photo by
오중석(지니어스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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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역별



photo by 김범렬(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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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역별

본지에서 말씀드렸던 노희경 작가와 김태균 감독의 대화 녹취록 전문입니다.
사실 원고를 쓰던 화요일까지만 해도 기사 형태로 풀어서 올리려고 했으나,
정리할 틈 없이 어느새 발행일인 금요일이 되어버렸고, 독자와의 약속에 늦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절반만 약속을 지키게 돼서 죄송한 마음을 보태며...

구어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 사실 읽으시기엔 좀 힘든 글이 될텐데요...
두 분의 화법이나 성정을 알기에는 기자에 의해 가공된 글보다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녹취록과 기사를 세세히 비교해보시다 보면
'기자란 놈들은 이렇게까지 남이 한 말을 바꾸는 거였냐!!'라고 생각하실지도?.?
어찌 보면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프로세스이기도 한데,
말을 바꾸고자 정리하는 게 아니라 읽기 쉽도록 정리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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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 김태균 감독. photo by 안주영

노 영화 보고 어떻게 보면 울지도 못하겠고 막 목이 계속 아팠어요. 감독님께서도 말하지만 불편하잖아요 끊임없이 저걸 만든 사람은 무슨 의도로 저 불편한 영화에 마음을 냈을까 저렇게까지.
김 제일 큰 대답은 하느님이예요 사실. 한 5년 크리찬됐는데 10년 전에 제 자신이 좋지않은 후지다는 건 알았죠. 꽃제비가 국수먹는 걸 다큐에서 보다가 너무 가슴아팠어요 아프리카 난민도 아니고 바로 저 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도덕적 윤리적으로 벗어날 길이 없었어요 그 전에도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싫고 힘들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감정이 체한 것처럼 쭉 있었어요 4년 전 쯤에 누군가 내게 이런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래서 이런 영화를 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노 왜 안된다고 했어요
김 대한민국에서 투자가 안된다고 안될 일이라고 했어요 미국에서 영화하는 친군데 이런 걸 영화 만들어야 한다 알려야 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보고 실상에 충격을 받은 거에요 자기가 프로듀서한다 했는데 한국에서 투자 안된다 정치적으로 너무 복잡해 처음에 거절을 했는데 끈질기게 하자 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미국에 있고 모르니까 내가 작가 찾아서 스터디해서 영화가 될 출발지점까지 만들어줄게 감독 컨택하고 그것도 심지어 내가 감독 리스트 줄게 도와주기 시작한 거에요 친한 후배니까. 그랬는데 한 6개월 정도 스터디하고 사람들 만나고 준비하는데 계속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거에요 사람 만날 때마다 그러고 나서도 영화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만드는 게 불가능해보였으니까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내 생각에는 이걸 세상에 내놔봐야 투자사를 만나봐야 내가 바보 소리 들을 것 같았어요 내가 20년간 기획 제작 연출 다 했고 너무 잘 아는데 돈 댈 사람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내가 다른 거 찍어서 돈 많이 벌면 작은 영화로 만들자 했는데 덜컹 투자가 돼버린 거지. 도덕적으로 이 영화를 준비했지만 놀려고 던진 거에요. 안 하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벤티지에 시나리오를 준 거지. 묵은 게 하나 있는데 지금 풀지 못한 게. 너랑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면 이걸 놔야 한다. 니가 안 한다고 하면 고생한 사람들이 있지만 놔야 한다. 덜컹 하자고 하는. 그래서 참 이건 운명이다, 해야 하는 거다. 했지. 나도 엄두가 안 났지. 세트 만들 생각하면 엄두가 나나. 미술 쪽이 준비도 많이 해 왔지만 중국 촬영도 있잖아. 중국은 촬영하기 어려워요. 정치적으로. 돈은 모여졌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제일 어려웠어요. 해야되는가.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뚫고 나가자. 40억이라는 돈이 사실은 좀 모자라요. 세트 만들고 3개국 돌아다녀야 하는데 모잘라죠. 투자사는 40억 안에 만들면 오케이다. 사실은 벤티지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투자 메이드시키기가. 하자고는 했는데 뒷걸음질치고 싶지. 노 왜 안 물렀어요
김 그때만해도 씩씩할때니까. 젊으니까 용기있는 30대 중바 젊은이들이니까 패기도 있고 밀어붙이는 거지. 이런 말도 하더라고. 오케이하고 돌아서서부터 후회했다고.
노 그럤을 것 같아요
김 최근까지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투자가 완벽히 다 이뤄지지 않아서.
노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양심의 문제가 딱 걸렸었다고
김 체한 것 같았어요 아주 오랫동안. 나도 외면하고 싶고 동영상 수기를 보고 싶다가 불가능해보였으니까. 왜냐면 그렇잖아요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탈북자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데 투자자는 당연히 관심없고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정말 독립영화로 얘기 하나 하는 걸로 할 수는 있겠지만 상업시장에서 대중영화로 완성되기는 좀 무리하다. 물론 아주 재미난 액션물이나 첩보물 속 안에서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건 아니었지만.
노 저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된장을 푼다 약을 푼다고 하는 얘기도 하는데 그 유혹을 내려놓기 되게 힘들잖아요
김 그렇죠
노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이댄거야
김 이런 거였어요 처음에 저도 많이 했으니까 아이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면 당연히 관객도 편할 거고 흥행도 더 될 것 같다 그 엔딩이 분명히 더 편할거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나랑 같이 못을 박았어요. 그 친구도 상업영화를 하는 친구니까. 우리가 끝까지 유혹이 있을텐데 그러지 말자 비겁하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그 비슷한 주인공 유상준 다큐멘터리 본적 있어요 아이랑. 이거보다 더 슬퍼요. 거기선 아이랑 핸드폰이 계속 통화가 됐어요. 갖고 있었던 거지. 밤에 사막에서 총이 발사되고 넘다가 대열이 흩어진 거야 잘못 넘었는데 그게 군부대로 가는 철조망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몽골군이 쏜 거야
노 그런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김 그걸 나중에 아버지가 구술하는 게 있었죠. 이 아이가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아버지 내가 여긴지 모르곘어요 아버지는 서울에서 그 핸드폰을 듣고 있었어 핸드폰이 끊어지고 몽골경비대에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되고 묻어준 거야 유상준씨가 있어요 그분은 탈북자를 도우려고 중국에 갔다가 잡혔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워해요 얘기도 하기 힘들어하고 극복이 안된 거죠 자식을 묻었는데 극복이 되겠어요 너무 슬픈 사연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해서 얘기가 시작이 됐는데 해피엔딩의 유혹은 계속 있겠지만 해피엔딩은 만들 수 없다 너무 비극적이라서 조금만 극화를 올려도 너무 극적이 돼버리니까 그건 아니었음 좋겠다
노 영화 보면서 그랬죠 집에 와서도 캐릭터들이 생각이 나는 거에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어요 ??????? 타는데 눈빛 같은 것. ??보면서 느꼈던 참담함에 버금간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시체더미 속에 있는 건데 한나라가 다 거지같았어 그 불편한 감정을 다독이는 방법은 단 하나야 신파지. 그래야 다독여지는데 신파라고 얘기를 해도 사람이 이 지경이 된 것을 갖고 과연 신파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자꾸 스스로 질문이 되는 거야.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감정이 쿨하고 세련되고 모던한 걸 저도 드라마 속에서 계속 고민되는 게 그런 것들인데 지금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김 저도 궁금합니다
노 나 자신은 그런데 왜 끊지 못하고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묻는 건데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절대 안하는데 내가 왜 하고 있나 너는 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쓸 마음까지 내느냐.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통제되어서 97년 10년 전 자료들 이후로 안나온다는 건 더 심각하다는 것. 그걸 알아도 우리는 잘 피해가지. 저도 멜로를 하니까.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고 나 자신도 떠들고 있으니까. 근데 그러면서 이게 뒷덜미를 잡는 거야. 지금 놔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게 정리되어 있다, 감정이 신파로 몰고가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에 기대서 말하지 않는 게 되게 좋았고. 우리가 보여준 것만으로 느끼게 하니까. 나는 피해갔는데 왜 이 사람은 피해가지 못했는가, 자괴감이 드네요
김 자본은 어쨌건 투자가 됐고 저도 대중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었어요 첫날부터. 그러다보니 아역을 찾는 것도 기존 연기자를 계속 많은 애들을 봤는데 아역이야 많으니까 쉽게 생각했어요 그 많은 아역 중에 분명, 그런데 없는 거에요 영동 산골 아이에요 분교 25명 생활하는 데서 개울에서 놀고 때 하나 묻지 않은 명철이가 온 거에요 독립영화를 하나 해 봤어요 그 동네 와서 찍는 걸
노 난 걔가 연기하던 애인 줄 알았어요
김 독립영화 편집하는 걸 보다가
노 유연해서 연기를 참 잘 배웠다 생각했어요
김 안 배운 애죠
노 여자애도 그렇고?
김 여자애는 많이 한 얘에요. 여섯살 때부터. 그런데 명철이를 보면서 걔 톤의 연기 톤을 기준으로 잡자. 담백하다. 연기가 훈련되어진 애가 아니니까 담백한 것 이외에는 못해요 조절이 안되는 거죠 어쩌면
노 시키면 너무 연기 해버리는구나
김 그게 안되고 또 성격이 워낙 쿨해요 네 아니면 대답이 없어 아니오는 대답을 안해버려요 세시간 앉아있어도 말을 시키는 법이 없고 말 시키면 그냥 네 산골 조그만 분교에서 때묻지 않고 자란 거지 아버지는 호두농사 지으시고 양봉 치시고.
노 또 제가 궁금했던 게 사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을 때에 감독이나 작가조차도 공감을 받는 부분이 있잖아요 영화나 만들고 글이나 쓰지 뭐한다고 의미를 담을 거냐 언젠가 감독과 작가에게 요구되던 게 의식이었다면, 의미나 사회적 참여였다면 지금 이 시기는 그런 것들이 하나의 제스쳐, 쇼가 돼버린 거지. 모두가 그렇게 해서 결국 종교로 빠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하니까 글 쓰는 사람들, 작품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건 하나의 쇼고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하다못해 감독답지 못하고 작가답지 못한 짓이다라는 공방이 있어요 어떤 밥을 먹고 살든 호화롭게 살든 그런게 욕이 안되는 세상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기 때문에 모든 게 쇼처럼 됐고 충분히 욕을 먹을 수 있는 쪽에서 보면 감독이 돈 써서 상업사회 살면서 돈이나 벌고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서 그렇게 고민을 해야지 무슨 의미를 찾고 하느님도 나오고.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 늘 가로막혀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이 시대의 창작자들은 지 밥벌이가 전부여야만 하는 사람들인가. 감정조차도 신파가 되고 이런 세상이니까 감독님도 고민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전면에 내세우면서 할 수 있었나
김 이건 오래된 숙제 같은 거니까요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거죠
노 숙제 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김 저는 이거 찍고 바로 화산고처럼 액션 젊은 애들 액션 영화 들어가는데 크로싱 찍을 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내가 여태 그런 얘기 하던 사람도 아니고 우습고 그만한 걸 감당할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떨어진 거죠 누군가 이 소재를 빨리 했으면 저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어요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하다못해 이 영화를 4년 동안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왔을 때 남북한이 더 빨리 교류되고 더 빨리 무너지면 이 영화를 가치 없는 게 되잖아요 지금 북한이 더 잘 살고 식량이 많이 들어가면 걱정을 했잖아요 그러다 회개를 했어요 누가 이렇게 묻더라고 니 영화가 망하는 게 좋니 저기가 살게 되는 게 좋니. 내가 4년을 날려도 저기가 잘 사는 게 좋더라고요. 해왔다고 했는데도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내 스태프들에게도 분노하고. 왜냐면 갈등이 많아요. 탈북자분들이 스태프로 배우로 많이 참여했는데 화가 너무 날 때가 있었어요
노 왜
김 요구사항도 참 많아 나는 다른 사람과 못 자니까 방을 따로 달라고 하기도 해요. 웬만하면 감독 빼고 돈 없어서 다 따로 자. 감독이야 혼자 자야되니까. 그런데 남이랑 못자겠다는 거야. 근데 나중에 이해를 한 게 많아요
노 어떻게 이해를 했어요
김 어려서부터 다른 세계에서 살았는데 잘못을 인정을 안 해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나 못 들었습니다 전달 받은 바 없습니다. 실수를 인정을 안 해요. 그게 뭐냐면 스스로 인정하는 그 순간 죽는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생활총아라는 게 너무 다른 세계에요. 세계 표준화에 접근돼있지 않아.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얘기하는 생활총아라는 자아비판 시간이 있는데 직장인 1주에 한 번 작가나 예술가는 이틀에 한 번 농민은 보름에 한 번
노 작가 예술가는 빨리 썩으니까 이틀에 한번씩이구나 하하
김 그런 사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같은 한국말인데도 말이 안 통해도 일본 미국 사람과 얘기하는 게 더 부드러워요 너무 폐쇄된 사회에서 자기 질서만 갖고 살아왔어. 통일되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노 아까 아들 죽은 아버지가 말하기 싫다는 마음이 차인표의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보는데 아이가 죽을 때보다 더 그런 ? 어떻게 사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막 울었어요
김 내가 볼 때 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온 게 아니에요 생존하려고 온 거에요 1만5천명이. 그 안에서 자유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유는 맛보고 비교는 거에요. 태어나서 그 안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면 몰라요. 자유를.
노 실제 대사관 사건도 그렇고 저도 그때 갔었는데
김 다 생존의 문제예요. 오고 싶어서 탈출하는 건 아니다. 잡혀가면 수용소 가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가면 또 굶어죽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먹고 살고 싶어서. 가면 또 굶어죽고.
노 돈 준다고 해서 넘어온. 그런 걸 계속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벗어나는 문제였던 거야. 부모자식 버리고 온 놈이 오죽하겠어,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인데 그렇게 나올 때 갔다 와서 동생이 묻는 거에요. 얘기를 하다가 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얘기를 하니까 ??????
김 그 사람들 지금도 사실 돌아가고 싶어해요 정치적으로 박해만 안 받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여기서 친척을 먹여살리는 탈북자 많아요. 돈을 송금해서. 100만원 보내면 80만원이 들어가더라고요. 한국돈 80만원이면 여덟-12식구가 1년 간 식량 안 떨어지고 먹을 수 있어요. 그게 참, 돌아가고 싶어해요. 어쨌건 여기 뭐가 있어도 별 게 없는 거거든요. 자기 고향이잖아요. 자유가 없는 것 같아도 숨 쉴만은 해요. 숨 못 쉬는 건 아니고 다 익숙해서 그 안에서 설렁설렁 가는 것도 있고. 밥과 약만 있으면. 물론 자유를 맛 본 사람들은 힘들겠지. 직장 안 가도 되는 게 신기하대요. 배치 받으면 안 갈 수가 없대요. 출근 안 하면 노동단련소로 가야 하고. 우리는 직장 싫으면 관두잖아 그게 너무 신기하고. 너무 다른 세계에요
노 어떨 땐 북한 아사자들 얘기 들으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과연 그러겠나. 정부에서도 굶어죽는 사람 없다고 하니까. 내가 옛날에 19 20살 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소설이 있었어요 625 배경으로 한 가족사를 설명 거였는데 책 겉장에 독후감을 써놔요 막 욕을 써놨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고 막말을. 저도 산동네 살았는데 이미 70년대에도 나는 그 가난보다 더 찌들게 산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게 지금 과연 전후의 아픔을 아는 건가.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브루조아야. 먹을 수 있고 학교에 갈 수 있다니. 66년 생인데 마포 산2번지, 산천동. 고층 삼성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지만 판자촌이었어요. 거기서 내가 그 책을 읽는데 분노스러운 거야. 그걸로 아주 리얼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 사람들이 다 잠깐 미쳤나 했어요 20년 이후에도 우리는 이러고 살고 있는데 늘 싸우고. 크로싱 그 마을 보니까 우리 동네 같은 거야.
김 저도 그런 느낌을. 연결해서 세트 짓고 몽골 마을. 50년대 전쟁 끝나고 너무 똑같아요. 북한 사람들이. 사진이랑 연결해서 보니까 소련에서 처음 주택을 지어주던 방법들이 몽골이랑 똑같아요. 설계도가 같은 거야. 표준 설계도. 방 구조가 러시아 방법으로. 새마을 짓듯이. 그게 똑같아요. 너무 잘됐다 했죠. 저도 찍으면서 어린 시절이 너무 기억 나는 거야. 동네 애들… 충무로 위 산동네. 장충동쪽. 그 동네 좀 낫지 않아요. 루핑집이 있는 데서 살았어요 저도. 동네애들 다 트고 버짐 올라서 할 거 없으니까 밖에 나와서 놀고. 할 일 없는 아저씨들 파자마 입고 나와 있고. 술취해서 초저녁도 안돼서 소리 나오고 똑같아요. 그 느낌들이 나도 향수가 있지.
노 그 생각도 나고 그 이후 데뷔해서 좀 먹고 살 때 중국 다통 탄광촌에서 깜짝 놀란 거지. 20년 전의 모습이 있는 거야. 우리 언니도 공원이었으니까 카바 신고. 그때 내가 수필을 하나 썼었는데 거짓말 이후 간 거였어요. 도대체 이 시간이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나는 이미 잊었는데 또 만났다가 영화에서 또 만난 거지. 대한민궁이라 쓴 쌀이 있잔항요. 우리도 동회에서 배급을 쭉 받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위에서 뜯어먹는다고 해도 그래도 밑으로 떨어지긴 하거든. 어린 애가 20키로짜리 밀가루를 들고 계단을 막 올라요 거기에 그게 있는 거야. 악수하던 미군 포대. 한미우호. 그 생각도 나면서.
김 저도 이거 찍으면서 향수를 많이 느꼈어요. 왜냐면 북한 사람들 만나보니까 사람들이 점잖아요. 배운 사람들이. 내가 막 썼던 말들이,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내가 좀 뽈 좀 차죠 이렇게 말하면 걔는 사람 취급 안 받는다, 잘난 척 못 합니다. 하더라.
노 ???해서 그런가.
김 우리 아버지 시대 부부관계 같아요. 부부 간에도. 술먹고 때리는 사람 많다는데 참 깔끔하고 정있게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정있고 조용조용. 애들도 부모에게 존대말을 써요. 부부간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 내 어린 시절 기억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쉬웠어요. 30-40년 전 모습이구나. 그대로 있구나.
노 우리에겐 추억이고 향수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계속 현실이구나. 내가 그걸 2-30년 겪었으면 돌았을 것 같아요. 그 가난은 나는 절대적 가난이 10년. 설마가 자꾸만 확인하게 되고.
김 너무 변했죠. 먹고 살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노 그래도 불구하고 잊잖아요. 안 믿기잖아요. 설마가 떠오르잖아요. 내가 펑펑 울었던 장면이 두 군데였는데, 울음을 참았어. 우는 것도 신파다. 차인표가 벌목장에서 돈 받는 장면의 초라함과 구질스러움이 눈물이 나더라고. 임금 받을 때의 느낌. 우리는 이제 통장으로 받지만 옛날에 아르바이트 했었어요. 찌라시 나눠주면 아저씨가 오천원짜리 천원짜리 오백원짜리 섞어서 주는 거지. 탁 받아서 분명히 내 순서되면 날 주는 건데도 탁 받아서 고맙습니다 소리도 못 하고 뛰어가는 거야. 돈 쓸 생각에 그랬는지 몰라도 그게 돈 세는 데에 오버랩되더라고
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 고통이 있었던 사람들이예요 어머니 생각이 나거나 아버지 생각이 나거나 굉장히 강하게 다가오는 거. 요즘 영화가 그런 기능을 안했고 많이 채워준 적 없고, 현장에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맨날 좀 더 스피드있게 좀 더 대사 툭툭 쿨하게 던지고 좀 더 드라마틱한 것에 훈련되고 살아온 사람이라 어릴 때 꿈꿨던 영화를 잊었어요. 누군가에게 위안될 수 있고 그런 걸 잊었어요. 맨날 대중 의식하고. 대중보다 일단 투자자부터 의식하게 되지. 투자자가 대중의 표본이지. 그러다보니 잊었는데 찍을 수 있는 기호가 만들어진 게 감사하지. 극장에서 시사하는데 가니까 블록버스터들 보니까 나 같아도 내가 이걸 보겠나. 들어가면 고통일텐데. 어느 순간 되게 크로싱이 초라해보이더라. 그 화려한 신나는 여름 블록버스터들 안에서 미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일단은 감사한 거에요 내 스스로에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만들어진 자체가. 충무로 자본이 힘든 상황에서 만들어진 자체가 기적이에요.
노 그 기적이 정말 기적이 되길…
김 묘한 건데 만들고도 두려워졌고 영화가 나왔을 때 고독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치적으로 ?될까봐 표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인터뷰도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움직였어요. 이 문제를 만든다고 할 때 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너무나 의견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복잡하고 내가 중국촬영을 할 때 그 사람들 만나면 정보기관도 있고. 북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그럼 중국촬영 무산되고, 몽골에서도 여러 허가 받는 게 복잡해질 것 같고. 거기 북한 대사관이 있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하다가 한 분 한 분씩 만나기 시작하는 거죠. 만들었으니까. 그 안에서 진짜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고 내가 뭐했나 싶게. 일들을 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뉴스위크 일본 특파원이 중국에 취재를 갔다가 탈북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꽃제비 아이들을 만났다가 돌아서지를 못한 것. 돌아서면 애가 죽을 것 같았고. 통역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쟤 돌봐달라 하다가 그게 연결이 돼서 기자를 안 하고 NGO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신기자 클럽에서 이런 일을 알리고 있다. 중국이 계속 북송시키니까. 북송 당하면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사실 정치적 난민인데도 중국이 거부하고 있으니까. 그럼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부끄럽고. 저는 사실 이만치 했으니까 도망가고 싶은데. 숙제 했잖아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제 또 만나보니.
노 너무 많은 의미가 있으면
김 그게 발목 잡히는 것 같아서. 그런 분들 만나면 발목 잡힐 것 같아서. 너무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내 살 길 때문에 바빠서 안 돌봤는데 만나고 보면 내가 눈물이 나오는 거야.
노 누구는 목숨 걸고 하는데, 도망갈 변명이 너무 빈약한 거야
김 안 만나고 영화 찍고 도망가고 싶은데 홍보를 하려다 보니까 그분들을 또 초청하게 되고 만나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못 도망가는 거지. 그렇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여명학교 탈북자 아이들 교육시키는 곳인데 사실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나도 이걸 찍으며 쉽지 않았는데, 내가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데 나도 잡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잡혀가는 악몽꾸고 일어나서 식은땀 흘리고. 아이들도 여기 와서 두려운 거지. 왜 티비에 김정일 사진이 계속 나오는지. 잘못 되는 거 아닌지. 그런 두려움. 교육 체계도 다르니까 부적응해요. 더 돌보고 더 배려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애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데 상처를 더 후벼파는 거 아닌가. 잊고 싶은 부분을 상기시키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런 편지를 보냈는데. 애들이 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잘 안 우는 애들이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관객 안에 있었다는 게 애들에게 너무 위로가 됐다. 그들의 마음을 누군가 아는 것만 해도 큰 위로가 됐다.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그렇게 후벼파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같이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고. 감사한 건 홈페이지에 격려의 글이 많다는 것. 300몇십개를 읽어보면서. 이렇게 바쁘고 스쳐지나가는 것 같지만 누군가 장을 마련해주면 얘기를 할 수 있구나.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거지만 끄집어내지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 가장 위안이 되는게 될까 하는 부정적 마음 한 편에 모르고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정보가 공유되어있지 않으니까 들은 말로 편견이 돼버리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될 수 있겠다. 요즘 뉴스와 100분 토론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인데 너무나 많은 정보가 공유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다 보니 정확해지고. 엄청난 정보의 공유. 그러나 기사보다도 영화가 힘이 발휘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는 모르니까, 보고 나서의 얘기는 굉장히 다른 부분이다. 그런 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피해가고 도망가고 싶은 얘기지만 보고 있으며 불편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들을 감싸안는 자체가 내 자신이 편해지기 때문. 누구에게 그랬어. 작업하다 왜 내가 여길 왔을까. 나도 모르겠다. 동생이 그러더라. 배우 얘기를 많이 해, 연기 잘 한다고 그래.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봐. 꼬맹이들 정말 연기 잘한다고.
김 저도 안 가본 데잖아요. 몰래 찍어온 동영상, 사진 몇 장으로 새로 만드는데 북한 사람들 탈북자들이 도와주긴 했는데 녹음실에서 트는데 장마당 엑스트라들이 몽고 사람이니까 대사를 넣어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자기 동네라고 그러는 거다.  정말 들어가서 찍은 거냐고. 정말 감사한 거다. 내가 제대로 찍었구나.
노 가난을 접해보셨으니까.
김 참혹한 건 거뒀지. 수용소도 일부러 좀 더 아름답게 찍었다. 자연의 느낌이라도 다가오게. 그렇지 않으면 이걸 어떻게 볼까. 어떻게 더 쿨하게 드라이하게 찍을까 고민. 멜로와 서정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못 보겠다 싶었다. 비참함은 1/10도 안 보여진 것.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게 너무 많지만 묘사해버리면 몬도가네가 되니까. 감방이라는 데도 걔들은 잡혀가면 누워서 자지를 못 해. 풀려나올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자는 거다. 통솔하는 완장 찬 죄수만 발 뻗고 잔다. 밤 10시 취침 전까지는 계속 외우고 아침에는 노동하고 자는 거다. 허약한 애들은 석 달 못 버틴다더라
노 나는 한달도 못 버틸거야
김 살라고 갖다 놓은 것도 아니고 너무 말이 안돼. 온 몸, 벽 사이에 이가 득시글. 그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해 봐. 솔기마다 이가 붙어 있는 거. 내가 보위부에 잡혀가는 꿈을 꿨다. 김정일이 보위부 보내서 잡으러 오면. 너무 싫은 거야 거기 가서 산다는 게. 악몽을 두 번을 꿨어요.
노 시나리오는 누가 썼어요?
김 처음으로 영화화가 된 거예요
노 쓴 사람도 그렇고 카메라 들이댄 사람도 그렇고 판 사람도 그렇고 참.
김 이제 반동작가가 된 거죠. 자료수집서부터 고생했고 브로커 만나고 두만강변에서. 브로커가 진짜 들어가서 취재하고 올래 한 적도 있고, 강 건너가면 들어가는 거다. 거기서 겁이 나지. 눈 앞이 북한인데 들어가게 해줄게 인터뷰 하게 해줄게. 하는데. 나 아는 탈북자는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해. 허술한 것 같기도 하고. 돈으로 너무 잘 되니까. 여기보다 거기가 더 돈이 왕이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인데 너무 모르고 알려고 들지도 않고.
노 오면서 생각했어 사람들이 착해요. 어떻게 착하냐면 우리는 안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야. 정보가 없으니까 그렇게 믿어. 그게 사는 방법이야. 외면해야 내가 사니까.
김 그렇죠 한 시간 거리에서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게 진짜라면. 같은 핏줄이고 같은 언어을 쓰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분명 신음소리가 들려올텐데 너무 귀찮으니까 귀를 일부러 닫는 거지. 티비 볼 때도 힘들면 채널 돌리잖아. 그런 현상인 것 같아. 그러나 우리 국민 훌륭해요. 금반지 태안. 훈훈하고
노 이런 나라가 어딨어. 나 촛불 가서 촛불이 찡하더라니까. 72시간 할 때 한 번 갔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가니까 나도 나가서 한 시간 정도 걸어봤는데 누가 말을 들어줄 거라고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와서 촛불을 들고 있나 해서 먹먹하더라고. 희망이 있을 거예요.
김 저도 그렇게 믿어요. 우리 민족이 참 묘한 민족이에요.
노 그렇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를 통해서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줄 세뇌됐던 것을 깰 때 훈훈한 봇물이 좀 터질 수 있는 걸 왜 김태균 감독이 하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하하
김 저도 그게 제일 피하고 싶었고 궁금했던 저도 10월부터 일본 합작 촬영 스케줄이 있어요. 잘됐다 하는데 그런데 끝없이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기니까.
김 일본에서 크로싱을 틀어요. 인권 운동하는 분들이. 처음엔 사람 많은 런치 타임에 틀기로 했는데 사람이 덜 모이더라도 식후에 틀자 했죠.
노 나도 이거 보고 나와서 김효진씨랑 빈대떡집에 갔는데 음식이 남아서 싸올 건 싸오고 먹을 건 꾸역꾸역 먹고. 계속 뒷통수가.
김 어떤 목사님이 이러더라. 거룩한 고문이다. 이건 우리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다. 북의 문제는 우리 문제다.  혐오증이 생겨서 그래. 짜증나게 핵이니 뭐니 자꾸 그러니까. 핵이나 정치적 문제는 눈 돌려 들여다 보지 않아. 염증이 생겨 그렇지.
노 그런 정치적인 것들을 다 떠나 봐야 할 것 같아.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 감독님이 절제했단느 건 보면서도 힘든 와중에 절제된 게 보인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잘하셨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령 1/10밖에 안되더라도 사람들이 그나마 그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따뜻한 두 부자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참 잘하신 것 같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결과일 것이다. 너무 한쪽으로 갈 수 있었는데도
김 가족, 부자 간의 얘기만 잘 보이길 바랬어요. 지나가면서 다 보일 테니까 겪는 것 안에서 과장 안해도 그 안에서 다 느껴질테니까 얘기하고 싶은 건 부자의 얘기만 감정선을 가져가자. 그래서 그게 그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감정이입 들어가면 우리 얘기가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얘기가.
노 의미를 빼고 감동스러운 부자 얘기로 자꾸 얘기가 돼야 해요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부분이 많죠 다들 전략가가 됐으니까 다들 사람이 없어지고 다들 훈수를 두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지. 감독님이 참 잘 만드신 거야. 나는 일단 도망갔을 거예요. 100프로 도망갔을 거예요. 아예 다룰 생각도 안 했을 것. 이 얘기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도 쓰려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도, 통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같이 어우를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드라마에서 탈북자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잖아요. 그런데 날 보세요. 나는 도망갔단 얘기지. 내가 안 하는 꼴을 보세요.
김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노 소극적이지만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난 외면했잖아요. 그런 부분들. 모든 의미나 모든 사람들의 인정. 인간 사이에 가져야 할 훈훈함 마저, 때때로 부모자식간 마저도 쇼가 되고 나 자신까지도 신파가 돼버린다. 마음이 먹먹하죠. 언제부터 이렇게. 나 역시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사진 한 장이 아닌 영화로 새롭게. 부자 얘기가 참. 우리는 살려고 헤어졌습니다. 말이 안돼요. 내 동생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준 떡을 먹고 체해서 병원에 갔는데 쇼크사로 죽었어요. 가난이라는 분노는 <내가 사는 이유>를 썼을 때 70년대 마포를 갖고, 20년 내내 그게 내게 상처가 됐어요. 내 동생이 죽고 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거든요. 그 아버지가 몽골에서 ?때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너무 힘든 게 영화를 찍을 떄까지 오히려 몰랐는데 찍고 나서 우리 배우들 인터뷰를 했어요. 배우 중에 브로커로 등장하는 사람이 탈북자다. 난 처녀인 줄 알았는데 몇 달을 씩씩하게 잘 살았는데 갑자기 펑펑 우는 거다. 나 사실은 애 놓고 왔다고. 자격증 따서 화물 크레인 기사인데 열심히 잘 사는데. 석달 있다 온다고 애 두고 왔는데 영영 헤어졌다며. 자기 살려고.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애 데리고 강을 못 건너니까 맡겨놓고 왔는데 영영 멀어진 거야. 몇 개월 동안 생활하며 얘기를 안 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그러더라. 우리도 찍다가 못 찍은 일 많아요. 연습하다가 살아온 사연 좀 듣다 보면 이 사람들은 생사를 넘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한 상상을 초월하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 이번에 취재하고 준비하면서는 못한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인간의 극한까지 가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까지를 그려야 하는지. 소통의 방법은 그래서 일단 아버지와 아들 얘기로만. 멜로드라마지만 일단 사람이 관심을 갖고 봐야 하니까. 고발 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가 훨씬 강렬하지. 블록버스터지만, 그 틈새에 들어가 있지만. 내가 어쩌다가 처음에 5월에 했어야 했는데 점점 밀려서 그 중심에 딱 들어가게 됐나. 함경남도 고원이 우리 아버지 고향이다.
노 여러가지 빚도 있으셨네
김 이제 생존해 계신 분도 몇 분 안 계시고. 그래서 내가 함경도를 모델로 삼았지. 마지막 장면의 강가가 우리 할머니가 귀에 못 박히도록 말하던 덕지강이다. 편하고 좋았던 시절 얘기가 강가거든. 함경남도 고원군 군내면 상석연리. 이렇게 주소를 외우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내가 못 가도 너는 가라는 얘기를 들어서 나중에 찾아 봐라. 아버지 쫓아서 고향 분들 만나는 데에 따라가고, 술 많이 먹으면 우는 사람 꼭 나오고. 어쩄건 북한 문제가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가족의 문제가. 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요. 60년이 넘었잖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부르면 어릴 때 찡하고 그럤는데 부른지도 너무 오래됐고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중학교때. 통일 비용 어쩌고 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니가 돈 내냐 하며. 어디부터 그렇게 돈돈돈 해버렸는지. 중2짜리가.
노 이제 돈에 질리지 않았을까. 돈 때문에 뽑았는데 이렇게 되니까
김 노대통령이 이라크 파병할 때 근사한 얘길 보편적으로 해야 될 거 아냐. 돈 때문에 파병한다는 얘기를 하고. 진보는 그렇게 실수를 하고, 실용주의는 인간이 살 가치가 아니거든. 대안이잖아. 왜 그게 가치가 돼버렸는가.
노 돈계산들을 너무 잘하지
김 배고프면 일단 먹여야지, 아프면 약줘야지. 어느 순간에 통일의 문제가 비용 문제가 된 건가.
노 세뇌가 된 거죠. 계속 들으니까 전략가 정치가가 되는 것 같아요. 정치는 정치적으로 풀어야돼 하다가 반문을 하지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치적이었어, 정부에서 나오는 어쩌고 또 생각하다가 니가 또 언제부터 그렇게 정부를 믿었어, 북한 정부 얘기하면 또 니가 그렇게 북한 정부를 믿었어. 내가 말을 하면서도 탁탁 걸리는 거지. WFT도 그렇고 북한 자료도 그렇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믿었나. 세뇌가 된 거지. 대량학살 안 난다고 하는데, 이미 다 거지촌이고. 니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고 있냐. 세뇌가 뿌리깊게 된 거예요.
김 저도 그랬어요. NGO도 의심스럽기도 했다. CIA 국정원 안기부 끄나풀일 거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과장된 정보를 던지는 거야 하며. 외국인 NGO는 외국 사람이 여기 와서 왜 저 난리야 했고, 쇼맨쉽이라 의심했다. 그런데 다 가짜가 아니다.
노 이게 다 미친 짓이 돼버린 거지.
김 사실은 내가 NGO 피땀 흘리는 걸 잘 못 그려줬어. 냉정하게 그렸죠. 기획탈북도 그렇고 잘못할 수도 있다는 걸 자료를 통해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중립을 넘어서서 사실 비난논조가 있었어요. 희생양도 있고. 나중에는 그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탈북 운동하는 사람들은 버젓한 직장에 있다가 어쩌다 한 사람에게 엮여서, 그 사람 어떻게 될까 해서 돕다가 또 한 사람 알게 되고 해서 점점 일을 못 하게 돼버린 사람들 많아요
노 뻔히 보이는데 갈 수가 없지
김 내가 가면 쟤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쪽 세계에 발목 잡힌다는 얘기들이 있는 거지. 세상엔 내가 볼 때는 완전히 안 무너진 기준들이 있다.
김 성격상 목청 높이는 사람도 아니고 피켓 드는 사람도 아니다. 영화 봐. 영화가 만들어져 감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지게 돼서 감사하고. 요즘은 내 스스로가 감동돼서 감사한 게 많아요. 고맙다 하는 소리 들을 때. 조금이라도 체했던 거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다. 전 행복해요. 작가님도…
노 난 도망가서 힘들어요. 영화에 고맙고. 영화적으로 충분히 볼 거리도 있고. 저도 멜로 참 좋아하는데 세상에 부모자식 간의 멜로만큼 찡한 게 없죠. 상당히 이 영화가 대중에게 어필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내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면피 용으로 지원을 해야겠다는, 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내 양심을 잡는 부분이니까. 이런 큰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믿는 만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통일을 이 영화를 통해 믿게 된다면 통일에 큰 교두보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의미에 빠진 것이 아니고, 정말 많이 울고 훈훈해졌어요. 불편한 영화라면 보고 나서 각박해졌을텐데, 크로싱의 불편함은 내가 인정해야만 했던 부분이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축축해졌나봐요. 나올 때, 외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잘 봤다는 기분으로 훈훈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말 한 마디 보태는 것이잖아. 탈북자들에게도. 얼마나 악랄하면 자식을 두고 오냐,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무서운 애들 아니냐고. 하지만 오죽하면 여북할까. 나는 안 그러리라 생각하면서 남은 그럴 거라 생각하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다고 하면, 살려고 그렇게 버리고 오는 현실이라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그게 아닐까. 편견을 가지고 이들의 시선을 봐왔지만. 같이 울어주는 것, 마음 한 번 내주는 것이 어쩌면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 좀 더 편한 기분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김 이만치 어려운 거예요. 북한에 식량 보내자고 100분 토론하면 100분으로 안 될 거예요. 의견들이 그만큼 복잡해요. 다 잘라내고 단순한 데서 출발하자. 저기 사람이 있고, 굶어 죽고 있다. 가족들이 죽고 있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있다. 우리는 여태 보지 않았지만 안 보이는 곳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 나중에 그 시간에 우리 동포가 죽고 있는데 그 시간에 우린 뭘 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쩌나.
노 보고 나면 많은 논리들이 녹아요. 느끼게 되죠. 내가 당장 탈북자를 본다고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말, 작은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거예요. 보지 않고서는 거추장스러운 말이 많아져요. 냉정함은 그렇게 힘든 것.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닦아낼 때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게 내려 앉고 세상이 살만하게 다가설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도망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짜르르하구나 아직은 사람같이 느낄 수 있구나.

Posted by 미역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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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역의 장혁, 민석 역의 조동혁, 진혁 역의 이상우. (30대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명실상부 꽃미남 3인3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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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당연한' 강남영화 트렌드물은 이미 줄을 이어 실패를 맛봤다.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그 대열에 끼지는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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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에서 장혁의 손은 캐릭터만큼이나 황폐했다. 고운 손을 만지고 싶은 게 자연이겠으나, 장혁만 보면 곱지 않은 그 손이 좋다!

2009년 상반기 개봉할 예정인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6월 15일 크랭크 인했다. <스카우트> <내사랑> <추격자> <크로싱>(26일 개봉이지만, 영화를 봤으므로...)이후 <차우> <홍당무>를 라인업에 걸어놓고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커다란 앰플리파이어,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브랜드'의 작품인 만큼 벌써부터 작품성에만은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을 준비를 시작한 기분이다.
불륜이라는 모호한 관계를 통해 삶에 중독된 세 남자, 한 여자의 미묘한 감정선을 거미줄처럼 엮어갈 현대 서울의 도시 드라마...라고, 시나리오조차 안 읽은 상태로 알지도 못하는 얘기를 떠들기보다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결혼만 안 했어도 훨씬 더 좋았겠지만 장혁을 좋아한다. 생김새도 불만 없지만 군제대 후 부쩍 속깊어진 듯한 여운을 남기는 그 몸놀림 때문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와 인터뷰를 통해 내가 짐작한 그 변화를 가늠해보고 싶다. 이상우도 좋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네 캘리포니아 집 옆집 청년, 단테의 샤워 신만큼이나 눈을 사로잡는 샤워 신을 제공해 준 허리 부위 라인에 자신 있는 청년이니까. *-_-* (궁금하신 분은 <흑심모녀>를 보자. 김수미 선생님은 그를 두고 "난 놈이네, 난 놈"이라고 하셨단다.) 조동혁의 덜 깎아진 선도 좋다. 섹스에 중독된 자유분방한 성형외과의 역할이니 굳이 베드신을 지목하는 건 아니어도, 그의 거침없는 선은 더욱 거칠게 표현되겠지.
3인3색의 각기 다른 꽃미남성을 지닌 세 남자의 영화, 스태프를 가장하던가 촬영 현장이라도 급습해서 호들갑 떨고 싶을 정도로 기대된다. 아무쪼록 과잉 없이 잘 연기하고 댄디하게 잘 연출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영화로 완성되길.
Posted by 미역별

드디어 개봉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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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스필버그

5월 22일입니다. 극장에서는 이미 <인디아나 존스 4>가 여러번 상영됐겠네요. 몇 년을 기다린 작품이었고, 개봉 직전 전편들을 되돌려 보며 두근거리는 심정도 느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비록 영화에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스필버그와 루카스에 대한 팬심만은 영원하다는 의미에서... 칸 영화제 기사와 중복되어 게재하지 못한 스필버그, 루카스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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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속편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있었나?
내가 연출한 영화 때문에 홍보 정킷을 갈 때마다 나는 기자들로부터 꼭 이런 질문을 받곤 했었어요. “다음의 ‘인디아나’ 영화는 언제 나옵니까?” 물론 거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고 일종의 뉴스 거리이긴 하죠.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일하는 라디오나 TV 방송국, 또는 신문이나 잡지를 대변하여 물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그저 자신들 스스로가 궁금한 것 뿐이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카메라가 꺼졌을 때도 나한테 이렇게 묻곤 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만드실 건가요?”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나에게만 던져진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난 그것과 관련해서 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 질문은 해리슨에게도 마찬가지로 던져지곤 했고 조지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모두가 그 질문을 받아왔죠.

해리슨 포드와 다시 작업하는 건 어땠나?
맨 처음부터 해리슨은 이 프로젝트의 중심이었어요. 그를 캐스팅 한 건 우리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구요. 내가 연출했다는 점보다, 모든 작가들이 달려들어 에피소드들을 썼다는 점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어요. 더 중요한 건, 내 생각이지만, 그가 그 역할을 맡아주지 않으면 이 시리즈는 과거만큼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해리슨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방식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힘이 나온다고 믿었으니까요. 이건 단지 맥거핀이 아니라 컨셉의 문제에요. 이 캐릭터를 만든 것 자체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니까. 이 점이 바로 우리 모두가 공감한 핵심이었어요.

액션 영웅, 해리슨 포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 생각에 이번 영화는 어떤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세 편의 영화보다 더 해리슨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안전 장비나 장치들, 혹은 우리가 나중에 디지털 작업으로 지울 수 있는 와이어 덕분에 해리슨은 죽음을 무릅쓴 스턴트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죠. 아마 물리적 관점에서 만일 주행 거리계 같은 것이 있다면 해리슨은 아마 <레이더스>보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더 많은 마일리지를 기록했을 걸요.

영화의 시대배경이 1957년이다…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된 1957년은 냉전과 매카시즘처럼 서슬 퍼런 시기였죠. 물론 가죽 스웨터에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새들 슈즈를 신은 소녀들도 넘쳐나긴 했지만요. 결국 이런 게 50년대를 규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음악은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였구요. 완전히 새로운 시대였죠. 더 이상 30년대가 아닌…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인디아나를 본 지 20년, 거의 20년이 흘렀어요. 인디는 성장했고 더 현명해졌고, 그리고 훨씬 더 강해졌어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1950년 대 중반의 미덕으로 바꿔야했죠.

머트’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설명해달라
머트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인디아나 존스의 삶에 들어왔죠. 마치 <와일드 원(위험한 질주)>에서 말론 브란도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는 브란도 스타일의 모터사이클용 모자를 줬더니 그는 역을 막 떠나려는 기차에서 기관차의 수증기 속을 헤집고 나오더군요.  그의 손에 드라마의 키가 있죠. 그가 결국은 인디아나 존스, 즉 존스 교수와 관객에게 플롯의 단초를 제공해요. 그가 인디아나에게 그의 오랜 동료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물이거든요. 수 년 전에 인디아나와 함께 시카고 대학교를 다닌 옥슬리 교수라는사람이 납치된 사실을… 결국 그가 정보를 제공하고 “인디아나 4편”의 드라마를 여는 인물이에요.

샤이아 라보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머트 역할에는 그 어떤 다른 대안도 없었어요. 내가 몇 해 전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영화 “홀스 Holes”에서 샤이아를 처음 봤을 때 그랬어요. “인다아나 존스 영화에 딱이겠다”구요. 약간 리버 피닉스를 연상시키기도 했구요. 어쨌건 내가 샤이아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첫인상을 내 머리 속에 일종의 북마크한 순간이었어요.

샤이아 라보프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
내가 샤이아가 “인디아나 4”의 머트가 될 거라는 걸 안 건 “디스터비아”를 봤을 때였어요. 거기에 관해서는 정말 확신이 있었어요. 조지 루카스에게 “디스터비아” 얘기를 했고 그도 보고 나선 당연히 좋아했죠. “당장 샤이아를 캐스팅하자”고 하던데요.

“메리언 래번우드”, 카렌 알렌과 다시 작업하는 기분은 어땠나?
그 수 년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카렌과 같이 일한다는 건 진짜 영광이었어요. 그녀는 정말 하나도 안 바뀌었더라구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우리가 저번 영화를 개봉했던 1981년과 하나도 다름없이 그녀는 여전히 혈기왕성하고 팔팔한 메리언 래번우드더라구요.

악역 “스팔코”, 케이트 블란쳇에 대해 설명해달라
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작업해 봤던 제 주변의 감독들이 하나같이 그러더군요. 블란쳇이 혹시 캐릭터 속으로 사라져버리더라도 놀라지 말라구요. 정말 그들 말이 맞았어요. 그녀는 진짜 이리나 스팔코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더라구요. 그리곤 내가 “컷”을 부르는 순간 다시 나타나요.

이번 시리즈의 스타일에 대해 설명해달라
나는 정말로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전작 3편과의 혈통을 이어가길 바랬어요. 그래서 온갖 종류의 부비 트랩과 온갖 해외 로케이션과 리얼한 셋트들이 동원됐죠. 하지만 첫 번째 영화만큼 전세계를 돌아다니진 않았어요. 전작들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이 미국 내에서 촬영됐어요. 남미와 중미, 사우스 웨스트, 그리고 마샬 대학 분량을 찍은 이스트 코스트 등지를 다녔죠.         

존 윌리암스의 음악이 이번에도 역시 등장하겠죠?
매일 아침 셋트장엘 가면 전기공이 “인디아나 존스”의 주제가를 휘바람으로 불곤 했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그 주제가를 흥얼댈 때도 있었구요. 누군가가 그 노래를 시작하지 않으면 우린 촬영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건 확실히 존이었죠. 이 영화의 표상이나 이미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구요. 멋진 모자도 있고 훌륭한 채찍도 있어요. 물론 그 모자를 쓰고 자켓을 입고 채찍을 든 해리슨은 정말 근사하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거의 누더기 차림으로 나타나는 해리슨에게 그 멋진 활기를 부여한 건 바로 존 윌리암스의 주제가에요. 마치 선율들이 하늘에서 그의 악보로 뚝 떨어진 것처럼 존은 천재에요. 그의 주제가가 없었다면 인디아나 존스는 정말 존재하지 못했을 거에요. 물론 당연히 그 주제가도 인디아나 존스 없인 아무 의미도 아니었을 테구요.

인디아나 존스가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인디아나 존스”가 전형적인 가족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DVD나 비디오, 심지어 텔레비전으로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인디아나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아마 “인디아나 존스”가 과거에 누구였고 현재는 또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보시게 될 거에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앉아서 은접시에 담겨 나오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받아 보시는 것처럼요. 이 영화는 단지 오랜 팬들을 위한 영화뿐만 아니라 인디아나 시리즈를 접해 보지 못한 어린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해요. 그 어린 관객들은 인디아나라는 이 남자가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전혀 알 턱이 없지만 이게 곧 그가 헤쳐 나갈 일을 생애 처음으로 목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곤 그들 역시 그 여정에 동참하게 되겠죠.

조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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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관련, 30년간에 걸친 스필버그와의 작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부분 합의를 했고, 비슷한 미적 취향을 가졌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와이 해변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죠. 해변에서 스필버그는 제임스 본드 류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고 “이봐, 나한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야, 아마도 우리가 함께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라고 나는 말했어요. 사실 나는 절친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건 다른 어떤 일도 마찬가지지만 자칫하면 우정에 금이 가기 쉽거든요. 하지만 스티븐과 나는 서로 기질이 비슷했고, 우리가 함께 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리고 우린 둘 다 영화 만드는 걸 정말 사랑합니다. 제작을 하건, 연출을 하건, 시나리오를 쓰건 말이죠. 그 과정 자체를 정말 사랑해요. 그런 면에서 우린 정말 닮은 사람들이에요.

인디아나 존스라는 이름의 기원이 유명한데 설명해달라
인디아나라는 이름은 사실 내가 키우던 개에게서 따 온 거 에요.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면 책상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개죠.  사실 그 개가 오리지널 우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우키 족을 칭함)에요. 내가 외출할 때면 나랑 차에 타서 같이 다니곤 했는데, 알래스칸 맬러뮤트 (썰매 개) 종이라서 정말 덩치가 컸거든요. 그래서 정말 우키가 나랑 같이 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쨌건 그 개 이름이 인디아나였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해리슨 포드는 어떤 의미의 배우인가
아마 관객들은 인디아나 존스의 어떤 영화를 떠 올리더라도 특유의 모자와 코트를 입고 있는 해리슨 포드가 완전히 풀 샷으로 연상될 거에요. 하지만 어떤 영화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죠. 그 풀 샷의 이미지가 어떤 시리즈에서 나온 건지 말이죠. 왜냐하면 해리슨은 인디아나 존스의 다른 모든 시리즈에서 항상 그렇게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이니까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선 어떤 스타일을 추구했는가
인디아나 존스는 B급 영화지만 스타일만큼은 확실히 A급이에요. 프로페셔널리즘의 최고의 경지가 만들어 낸 거죠.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완성도와 그 외 모든 게... 그 전에는 결코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그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전에 애정과 경외심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바로 이런 것들이 모두 “인디아나 존스”의 품질 보증서 같은 거죠.

“메리언 래번우드” 역을 맡은 카렌 알렌과의 작업은 어땠나
첫 번 째 시리즈에서 메리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였어요. 그녀는 용감무쌍하고 재미있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고, 독립심 강한 인물이죠. 유머 감각도 훌륭하구요. 근데 그게 바로 카렌이에요. 그리고 이번 속편에서 그녀를 다시 불러들인 건, 그 생동감 넘치고 독립적인 여성을 불러들인 건 우리한텐 정말 플러스가 됐어요. 그녀는 같이 있으면 좋고 강하고 인디아나에 대적할 수 있고, 또 그를 항상 제 자리에 돌려 놓을 수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들은 함께 해서 좋은 진짜 팀이에요. 그건 항상 유쾌하고 행복한 관계에요. 그리고 카렌은 정말 예전 그대로에요. 정말 어제 만난 사람처럼 그대로 더라구요. 예전 그대로의 유머 감각과 예전 그대로의 캐릭터에요. 그녀는 캐릭터 속으로 완전히 몰입했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영화 속 세트를 거의 실제 사이즈로 지었다고 들었다. 제작을 고집한 이유가 있나
이 영화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하고 멋진 셋트를 만들었어요. 나는 대규모의 셋트를 짓지 않고, 블루 스크린 앞에서 최소한의 셋트 외에는 전부 디지털 셋트로 처리한 “스타워즈”를 끝냈는데 그때 스티븐이 그러더군요.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구. 나는 말야, 진짜 셋트를 원해.” 그래서 뭐, 우린 그렇게 했어요.  

전세계에서 이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기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 관객들이 어떤 점을 주목해서 봐주길 바라나
나이든 관객층들은 정말 그 기대가 대단했죠. 어렸을 때 “인디아나 존스”에 열광했었던 세대니까요.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인디아나 존스”를 보여주러 극장에 가고 싶어했을 거구요. 왜냐하면 정말 설레고 재미있잖아요. 그 경험 자체도 그렇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10대와 젊은 관객들에게도 소구될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그들 또한 예전의 열광적인 현상을 다시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자료제공|올댓시네마

Posted by 미역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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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가 왜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게 됐을까요?
<일지매> 방송이 시작되면 알게 되겠죠 뭐 ^^;
Posted by 미역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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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드니 라방에게 전주 영화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전주의 그 많은 음식 얘기는 쏙 빼놓고(사실 당연하죠, 뭘 알았겠습니까-_-) 벨라 타르의 회고전에 대한 언급을 했었죠.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고,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벨라 타르를 이야기 했습니다. 살아있는 벨라 타르가 전주 거리를 활보해서 실감이 덜하지만, 아무튼 생전에 회고전이 마련되는 거장 감독인 겁니다. 그의 작품세계의 유니크한 예술적 가치는 롱테이크에 취약해 어쩔 때는 기어이 3분 안에 잠들어버리는(한 5분 자고 일어나도 화면에 변화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에게도 와닿는 바입니다.

인터뷰 때는 그가 왜 거장인지, 포스로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는데요. 그에게는 어떤 질문을 해도 명확한 자기 '입장'이 답변으로 되돌아옵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은 이유를 또한 명확하게 덧붙입니다. 그리고, 영화로 이야기되어야 할 자신에 대해 말로 하는 것이 싫은 티를 과감하게 팍팍 냅니다-_ -.. 말하면서 자신이 웃고 싶은 대목에서는 웃고, 인상 쓰고 싶을 때에는 인상 쓰면서, 상대방도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몇몇 질문을 던졌고, 대답했지만, 기자를 일정 컨디션 하에서의 대화 상대가 아닌, 철저한 메신저로만 취급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의 수용방식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몇 년 간 인터뷰를 했지만, 감정 없는 문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흔치 않았습니다. 여느 배우들과는 다른 의미의 벽이 존재했습니다. 이제까지, 벨라 타르는 거장으로서의 자아를 그런 식으로 일궈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가 아침이었는데, 그 전날 공식석상에서 운영상의 미숙으로 심기가 불편했다고 하긴 하더군요. 인터뷰는 제 입장에서 다소 걸끄러웠으나, 결과적으로는 기사쓸 거리야 풍부했습니다. 문제는 사진이었죠. A컷이 나오긴 했는데, 다른 인터뷰가 200컷을 찍고 1컷을 고른다면, 벨라 타르는 20컷도 채 못 찍은 시점에서 촬영을 그만하자고 해서 그 중 A컷을 간신히 건진 거였습니다. 왜 "촬영은 이만 됐어, 그만 해"했을까요? 사진 찍히는 게 싫은 걸까요? 아니면 이미 A컷이 포토그래퍼의 카메라에 찍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거장'의 포스때문에 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촬영 중에 반동강을 내는 건 자신의 높은 위치를 지나치게 자각하고 못된 권한으로 써먹는, 자신의 예술을 인정해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부족한 태도였습니다. 이미 A컷이 나왔을 거라 생각했더라도, 그 판단은 포토그래퍼에게 맡기는 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의 겸손한 예의였을 겁니다. 포토그래퍼 또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 아닐까요. 물론 무비위크의 포토그래퍼는 파인아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벨라 타르만큼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벨라 타르라는 벽에 막혀 촬영을 스스로 끝내지 못하고 끝냄 당한 우리 포토그래퍼 김태선씨에게 미안함을, 더불어 전주영화제 기간 내내 좋은 사진을 고심한 노고에 감사를 전합니다.

Posted by 미역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