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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풍금> 오만석 & 조정석
유쾌한 두 남자와의 왁자지껄 수다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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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군요! *_*) 진행한 오만석 & 조정석 인터뷰 전문입니다. 기자와 배우 각자 약간의 사생활(?)이 들어간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고요! 사진은 <무비위크> 335호에 실리지 못한 미공개 컷(!)입니다. 얼마 전에 화제의 <상상플러스>를 봤는데, 이야~ 이 날 인터뷰만큼이나 화기애애하더군요. 이 날 인터뷰 분위기는 정말 웃음이 끊이질 않고 마냥 즐거웠답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내 마음의 풍금>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지면 관계상 생략한 둘의 수다를 공개하니, 마음껏 감상하세요!


P.S 당연히 인터뷰는 서로 존댓말을 썼답니다. 제가 녹취 정리하는 습성(?)상 저절로 기사투로 풀어놓은 것이니 오해마세요~


**인터뷰 장소를 착각(?)한 조정석씨가 바이크를 타고 달려오는 중간에 먼저 짬 내서 오만석씨 개인 컷 찍고 인터뷰부터 진행**


오랜만에 돌아왔다.

오 1년 6개월 만이다.


팬들의 기대가 많다.

오 부담인데, 사실은 오랜만에 하는 거라서 사람들은 강하거나 혹은 할 거리가 많고 이런 걸 기대할 지도 모르는 데 특히, 나는 도드라지게 하는 게 없다. 여주인공 홍연이 역할이 워낙 중요하고 크기 때문에. 그런 면에 실망할 수도 있다.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오 원래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못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오히려 더 못했다. 작년 여름, 봄쯤 됐는데 좋은 대본이 있는데 읽었으면 좋겠다. 훈훈하고 좋더라. 이런 뮤지컬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본을 읽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앉아서 읽어라}하더라. (웃음) <달고나> 초연 이후로 4년 만이다. 워낙에 작품 외적으로 동네도 같은 동네고. 오랜만에 같이 해서 참 좋고, 사는 얘기해서 좋고. 창작극이다 보니까 항상 없는 것 속에서 뭘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게 힘들어서 그렇지 그게 참 즐겁다.


창작을 많이 했다.

오 좋아하는 것 같다. 라이선스도 좋아하는데, 좀 뭐랄까 오랜 시간 많이 거쳐 오면서 가장 최선의 방법들을. 주어진 것만 하면 되니까. 근데 창작극들은 연습하는 거에 따라서 계속 변할 수 있고. 배우로서 할 거리들이 많으니까. 재미있다.


작품을 떠나서 무대에 선다는 설렘이 있을 것 같다.

오 월요일에 갈라 콘서트에서 <내 마음의 풍금> 노래를 한 곡 부르는 데 벌벌 떨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연습하는 거니까 1년 6개월 만에 연습실에서 장난치고 연습하는 거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


무대에서 쌓아왔기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 활동에 대한 반감이 있는 팬들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복합적인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오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과정 상태에 있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공연과 드라마, 영화를 잘 배분해서 하려고 노력을 한다. <왕과 나>가 너무 긴 프로젝트였고 오랫동안 공연을 안 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 사실 병행해왔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약간에 치우치는 건 있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연을 못하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라. 스스로 상호 보완이 된다. 성장하게 된다. 그런 부분에서 필요한 것 같다. 여러 가지를 계속 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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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무대를 찾은 만큼 걱정과 부담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연습실 안에서 땀 흘리고 연습하는 지금이 너무 즐겁다. 그는 연기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배우의 삶을 떠안고 태어난 것만 같은 그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배우의 자리다.


**오만석씨가 옷 갈아입으러 가는 사이 조정석씨와 바통 터치! 두 배우 분 처음에 왔다갔다 촬영하느라 인터뷰하느라 분주하셨답니다**


작품을 즐겁게 하려고하는 것 같다. 이번엔 어떤가?

조 너무 즐겁다. 작품 신 나가는 것 때문에 벅차고 힘든 것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고 정리가 된 상태에서 신을 되풀이하고 연습하면서 찾는 것들이 참 좋다. 찾는 재미가 있고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그런 과정이 참 재밌다. 열심히 찾은 다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배우의 몫인 것 같다.


창작이고 초연이다. 부담스럽지 않나?

조 부담감은 언제나 있다. 그것보다 이 작품을 얼마나 즐기고 있느냐, 하는 것. 더 중요한 것들. 부담보단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조 대본 읽고. 따뜻하고 <소리도둑>을 봤는데, 참 좋더라.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이런 걸 언제 해볼 수 있을까 했는데 대본 보자마자 {저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영화는 봤나?

조 이번에 작품 준비하면서 새로 봤는데, 평소에 워낙 이병헌을 좋아한다. 아니나 다를까 연기를 너무 잘 했고, 이걸 보고서 내가 생각하는 <내 마음의 풍금>과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구성할까 하는 찰나라 우리가 하고 있는 작품과 확연히 다르겠다는 것을 느꼈다.


무비컬에 대한 제작 과정을 훑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의 풍금> 취재할 때 영화와는 다르게 뮤지컬적인 요소를 부각시킬 거란 얘기를 들었다. 운동회나 소풍 장면이나, 지금 연습 과정도 그런 것들을 염두하고 있나?

조 염두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섬세한 작업까지 이뤄지려면 소극장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중극장 이상의 사이즈이기 때문에 보여 지는 게 쇼적인 요소들이 많아야 한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볼 때 재미가 없으면 지루하지 않나. 무대라는 공간이 스크린과는 다르니까 염두하고 있고. 연출님이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아무래도 조광화 연출에 대한 신뢰가 있다.

조 좋다. 동화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작품이랑 잘 맞는다. 선생님이 연기적으로도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연기론이 뚜렷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좋다.


연습 과정은 어느 정도?

조 리딩은 예전에 다 했고, 신은 거의 다 나갔다. 그 안에서 디테일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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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해맑은 미소 뒤엔 치열한 훈련이 있다. 그의 밝은 에너지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 결과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부담감보단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즐기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의 긍정적 에너지는 무대에서 가장 빛난다.


**짜짠, 이 때 오만석씨 다시 등장! 두 분의 거침 없는 폭소 수다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기대하시라!**


오 대변인이다. 알아서 다 말해줄 거다. 사생활도 다 물어봐라.

조 대통령님께선 항상 연습 끝나고 후배들에게 {맥주 한 잔 안 할래?}하시는 데, {아니요.} 그러면 {형은 너 오래 보고 싶다}하신다. (웃음)


대선배가 되어 버렸다.

오 아니다. (웃음) 중간이 되고 싶다. 언제 그렇게 되어 버렸지? (웃음) 난 항상 중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조 나는 2003년에 학교 다닐 때였는데 형 공연 보고 학창 시절에..

오 학창시절! (웃음)

조 팜플렛 사서보고. 학교에서 <그리스> 소니 역을 했다. 그 때 [Those Magic Change] 부를 때 형이 부른 걸 학교의 모든 애들이 다 듣고.

오 그래서 내가 그 때 앨범 녹음한 걸 완전 후회해. 술 마시고 아침 11시에 음 다 플랫되서. (웃음) 완전 후회한다니까. (웃음)


오만석은 젊은 배우들에게 우상 같은 존재다.

조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웃음)

오 점심 좀 거한 거 먹고 가자. (웃음)

조 후배들에게 항상 즐거움을 주신다.

오 집에 거짓말 안 하고 라이터 한 30개 있다.

조 [초원의 집] 라이터가 있더라. 술 좋아하니까 막 마시다보면 라이터가 어디 갔는지 모른다. 막 바뀌고. 막 챙기고 그럼 한 30개 정도? (웃음)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알고 있다.

조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오 요즘 좀 덜 마신다. 나이가 들어서..

조 전 아직 많이 마신다. (웃음)


연습이 빡빡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오 붙어서 연습하는 거라. 라이선스는 노래, 안무, 연기 할 몫만 하면 되는데 뭘 할지 몰라서 계속 항시 대기해야 한다.


같은 역을 둘이 한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조 서로 보면서 저렇게 하는 구나 하고 배워간다.

오 어휴, 너무 센스 있어 가지고. 진짜로 아주 똑똑하고 빠르고 표현력이 좋고, 노래나 춤 너무 잘 하기 때문에.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란다. 이번 작품 나오면 오만석 보단 조정석이 훨씬 더 강동수 같다 할 거다.

조 (웃음) 형님이 신을 할 때 보면 사실, 내가 저 신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문제점을 해결해 준다. 바로 배우는 거다. 저걸 저렇게 풀면 되겠구나 하고. 형은 바로 바로 즉각적인 센스로 형의 연기력으로 바로 보여주니까. 이런 말도 잘 못한다. {연출님, 표현을 못하겠는데} 이러면 형이 바로 해버리니까. 음, 제가 배우는 건 100가지 중에 100가지? (웃음)


마치 교과서 같은? (웃음)

조 그렇죠! (웃음)


뮤지컬만의 캐릭터로 해석한 게 있나?

조 영화와 뮤지컬 속 강동수의 캐릭터가 다른 건 없다. 무대라는 게 다른 공간이지 않나. 무대에서 표현해야 하고 절제해야 하는 것이 있어서 차이가 확연히 있을 거다.


영화를 봤나?

오 작년에 <내 마음의 풍금> 하기로 한 얘기를 듣고 DVD를 받았는데, 이상하게 안 보게 되더라. 아직도 보면 혹시 너무 그 모델을 보고 각인이 될까봐 웬만하면 안 보고 있다.

조 나도 팬이 줬다.


기대가 엄청나다. 오디션 자체도 둘의 연인을 찾는다고 해서 화제였는데.

조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고맙고.


팬들의 기대가 큰 데 기분이 어떤가?

조 오만석씨 어떠세요? (웃음)

오 진짜 도움을 많이 얻는다. <왕과 나> 준비할 때 내시에 대한 책, 이런 거 자료를 구해서 주시기도 하고. 힘들면 지칠까봐 약이나 맛있는 간식거리도 해주시고 그게 물심양면으로 좋아해주시는데 감사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공연장에서 보면 공연을 잘 본다. 누구 나온다고 해서 대놓고 환호하고 웃거나 분위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공연 자체를 잘 보려고 하고. 사인회 있어도 힘들 게 하지 말고 가자하는 것도 참 고맙고. 할 때마다 제대로 해야 하는 데 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뮤지컬 처음 시작할 때랑 정말 많이 달라졌다. 몸소 느끼는 게 있을 텐데.

오 처음이었다. 지방 공연 가면 서울에서 찾아오고 그런 게 정말. 2003년 <그리스>할 때. 지금은 그런 게 참 다반사더라. 마니아들이 정말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품이 잘 안 되거나 못하게 되면 데미지도 커지는 거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


서울예대를 삼수했단 얘기가 있던데.

조 에, 어디서? 예대 삼수생이 아니라 기타 삼수생이다. 음대 낙방하고 연극과로 전향한 거다. 교회 다닐 때. 여러 가지를 했다. 태권도 선수가 돼서 삼관왕하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오 그래서 그런지 얘는 못 하는 게 없다.


영리하단 얘기를 들었다.

오 머리 가죽 안이 전부 다 뇌다. (웃음) 뼈가 없어요. (머리 만지면서) 이게 다 뇌라니까요. (웃음)

조 태권도 열심히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 때는 참 태권도가 참 하기 싫었다. 관장님이 스무 살까지 연락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고1 때 교회를 가게 됐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성극이나 뮤지컬에 참여하면서 즐거워했고, 연기는 그랬고. 기타를 치면서 푹 빠져서 친구들이 {기타 해서 뭐 하겠냐?} 이래도 난 예술가가 될 거야,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해서. 이건 아닌 가보다 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청년 부 전도사님이 연기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해서 배우게 됐다. 내 돈을 내서 레슨을 받고 예전 시험을 본 거다. 그 전까지는 주워들은 연기에 대한 건 있었지만 학교에 들어간 다음에 들어가자마자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가서 열심히 했다. 모범생이었다. 공부 집 공부 집 학교 집 학교 집 이었다. 나중에는 좀 날라리가 됐지만. (웃음) 많이 배웠다. 동아리에서 뮤지컬하면서 꿈을 안게 되었다. 원래는 영화를 하고 싶어 했었다. 학교에서 <그리스>할 때 외부 관계자 분들이 와서 여섯 명을 뽑아갔다. 그래서 공짜로 연수를 받게 됐다. 그 때 같이 했던 게 창용이였고. <호두까지 인형>으로 시작하게 된 거다.


좋은 작품을 참 많이 했다. 이번 작품을 할 때 밑바탕이 될 것 같다.

오 개인적으로 더 어렵다. <헤드윅>이나 다른 뮤지컬들은 역할로서 익숙해져 있고 기술적으로 많이 능숙해보여야 한다고 할까? 그런 걸 소화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능숙해 보일수록 실패하는 캐릭터다. 그런 걸 열어놓고 자꾸 버리고, 순간순간의 작은 설렘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해서 능숙하지 않는 걸 연기하는 게 어렵단 생각을 한다. 오히려 그런 부문에 있어서 어렵다. 순박하다는 걸 연기하다기 보단 계속 비워야 하기 때문에. 이미 찌들어서. (웃음)


여주인공과의 호흡은 어떤가? 새로 오디션에서 뽑힌 신인으로 알고 있다.

오 장은아가 이번에 새로 뽑혔고, 다른 한 친구는 이정미. 둘 다 너무 좋다. 잘 맞고. 정미는 우리가 걱정하는 부분처럼 그 부분이 힘든 거다. 능숙하지 않아야 하는 거. 은아 입장에선 설레고 떨리는 건 저절로 나올 것 같은데 연기나 노래를 맞추는 게 쉽진 않을 거고, 정미는 오히려 반대인 경우고.


임철형, 임기홍씨도 나오지 않나?

오 내 생각에 공연 시작하면 홍연이, 정복이, 박선생이 주인공이 될 거다. 정말 재밌다. (웃음)

조 죽어요, 죽어. (웃음)

오 우리는 정복이랑 박선생하고 싶어서 연습 때 난리도 아니다. (웃음)

조 서로 딴 역할 할 때 되게 열심히 한다. 혼신을 기울여서! (웃음)


실제로 작품 안에서의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떨 것 같나?

오 못 받아들일 것 같다. 예전에 연기 학원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군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고 고3 아이들이니까 열 살 조금 안 되게 차이가 났는데, 그 애들 중에 보면 또래니까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갖는 게 느껴지면 딱 끊게 되더라. 고등학생이라서. 대학생이면 달라졌겠지. (웃음)

조 교회 다닐 때 사귄 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좋아하는 형이 있었다. 그 형이 그 아이의 청년부 선생님이었는데, 형이 내 여자친구를 신경 쓰고 챙기는 게 반복되면서. [이건 뭐야?]하고 생각했다. (웃음) 순간 그럴 수는 있겠단 생각은 한다. 나도 만석이 형처럼 그럴 것 같다. 20대 초반이면 몰라도. 너무 나이차이 많이 나면 나도 모르게 자꾸 끊게 된다.

오 삼년만 지나서 대학생이 되면 또 달라지겠지? 나이 차이는 같은데 그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 또 달라지는? (웃음)


<헤드윅>을 같이해서 엄청 친하다고 유명하다.

조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최고다. 기쁘다. 집에서 막 소리 지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게 있고. 형이랑 더블 캐스팅 됐다고 했을 때 너무 좋았다. 이번에 <이블데드>도 그렇고. 어휴, 참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오만석을 보고 꿈을 키운 후배들이 많다.

오 아니 누가 그래요! (웃음) 도통 믿기지가 않네.

조 연극 <이>가 정말 최고다란 말이 있어서 인터넷을 막 뒤졌다. 김뢰하씨와 나오는 장면을 봤는데, 혀의 대사나 연기를 떠나서 형의 그 깔끔한 움직임이 정말.


워낙에 몸을 잘 쓰는 배우이지 않나.

조 대~박이에요. 쓰러져요 정말. 내가 느낄 때 형은 몸을 잘 쓴다는 게 연기를 하다보면 호흡이 바뀌니까 그런 걸 정말 잘 쓴다. 진짜 많이 배워야 한다.

오 이 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럽다. (웃음)

조 술 마실 땐 이런 얘기 안 한다. (웃음)


<싱글즈><라디오 스타>와 같은 무비컬을 봤나? <미녀는 괴로워>도 있고, <달콤 살벌한 연인>도 하고. 무비컬이란 유행이랄까, 번지는 감도 없지 않다.

오 사실 무비컬은 만들어 낸 용어지만, 유래는 외국에서 먼저 해프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잘 된 것들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역으로 뮤지컬이 영화화 된 게 있고. 우리도 앞으로 지금은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고 있지만, 뮤지컬이 영화화 되는 것도 있을 거다. <살인의 추억>이 연극이었고, <이>도 그렇고. <오! 당신이 잠든 사이>도 그렇고. 하나의 작품 소재라든지 작품의 이미지라든지 그런 건 도움을 얻는 과정이고 이런 것들이 지나면 이게 우리나라 뮤지컬 극작가가 부재이기 때문에 오는 거다. 그게 저변화 되고 있기 때문에 뮤지컬 극작에 대한 인력 양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벗어나는 시기가 있을 거다. 우리 작품은 무비컬은 아니다. 하근찬의 <여제자>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다르다. 영화와는 터치감이나 느낌이 많이 다를 거다. 무대 자체도 모노톤에 가깝고, 영화 속에서 고증을 했다면 우리 공연에선 고증이라기 보단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분위기와 이미지를 넣고. 사실적인 물건이 나오거나 하진 않는다. 배경을 색감으로 하면 빛바랜 핑크빛을 쏜다거나 하는 색다른 느낌? 발전하는 무대 사용이고.


정서적으로 무대를 보여준다는 건가?

오 시대의 사람들을 보여 준다기 보단 느꼈던 감성이 어떻게 풀렸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거지.


설렘, 풋풋한 정서일 것 같다. 한동안 이런 작품이 없었는데.

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지루해할 수도 있다. 여지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지금 관객들은 템포가 빠르고 맞출 수는 없다. 너무 빨라진 사람들이 느린 템포의 것을 받았을 때 신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푸근해지고, <이블데드>도 상당히 재밌고 빠르지 않나. 돌아보고 쉬어갈 수 있는 페이지인 거다.


여름이라 신나는 것을 원하지 않나. 관객을 염두 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장치적으론 관객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들을 넣었다. 그래도 그런 것만 원하는 관객들에겐 물론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


음악은 어떤가?

오 음악이 되게 좋다. 그 시대를 떠올리면서 나오는 음악은 옛스러울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앞서간다. 록 느낌도 있고, 왈츠도 있고, 탱고도 있고 완전 발라드도 있고 섞여있는데 음악이 시대가 무너진 다기 보다 장면 장면이 이어지는 것 보단. 홍연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데 적절하게 배치를 해서 재밌게 했다.


극 안에서 풍금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나? 풍금에서 오는 고유한 정서가 있다.

오 정석이가 진짜 잘 친다.

조 아이, 못 쳐요. (웃음) 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데요. 장난 아니었어요.


의외로 밝은 미소 뒤에 독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웃음)

조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나. 풍금은 정말 독하게 맘먹고 해서 될 게 아니기 때문에, 형이 아까 말했듯이 신에 홍연이와 얘기하던 신이든 템포가 느리지만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들이 오가야 맛깔나고 재밌는 작품이라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춤이 과격하고 얘를 들어 <이블데드>의 핸드 파이팅은 독하게 했지만 섬세한 감정이 오가려면 좀 그래야 한다.


연습하면서 옛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랄까?

오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난 한 마디로 <지킬 앤 하이드>였다. (웃음) 멀쩡하다가 엉뚱한 짓 하기도 하고, 수줍어하기도 하고. 기준이 없는, 지금도 그런다. (웃음) 그 시절에 그런 애가 나 밖에 없을 거다. 점퍼에 매직으로 글 쓰고 입고 다니고. 애들이 다 쳐다보고 그랬는데, 막상 짝사랑하는 애한테는 말 한마디 못하고. 수업 시간에 소화전이 있는데, 오늘 정말 눌러 보고 싶은 거다. 꼭! 딱 눌렀다는. 내 자리로 와서 아닌 척 앉아있었다는. 선생님이 {너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어!} 혼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조 최고의 개구쟁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이런 개구쟁이가 없었다. 난리도 아니었다. 책상에 낙서, 의자에 올려놓는 거, 여자애들 막 괴롭히고 (웃음) 교문이 있으면 문 사이로 올라가고 그런 애였다. 하다못해 교실 안에서 누가 훔쳐가서 혼나는 상황에서도 우유 먹지 않나, 우유 통으로 애들 웃기려고 하다가 맞기도 하고. (웃음) 4학년 때부터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 사춘기였다. 희한하게. 집안에 일이나 뭐 많아서. 때리고 다니고. 6학년 때 나랑 싸우지 않은 애가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들이 지금 보면 놀란다. 중학교 가선 이러면 안 되겠다 해서 운동 하고 바른 생활로. 초등학교 때 개구쟁이, 죽을 고비도 많이 남겼다. (웃음)


다른 장르 계획이 있나?

조 계획은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 드라마가 몇 개가 있었는데 안 되겠더라. <내 마음의 풍금>하고 <즐거운 인생> 연출까지.


연출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오 사연이 있다. 김태용 작가와 워낙에 친했다. 연습할 때 만드는 거 좋아해서 소학지희 부분은 던져지고, 친했었고. 학교에서 애들이랑 동물원 이야기라는 부조리극을 했는데 연출을 한 적이 있었다. 태용이 형이 보고 {나중에 연출해도 되겠다}했는데 연극 <즐거운 인생>보고 뮤지컬을 만들면 어떨까 했는데, 그리고 나서 작년에 다시 가을 즈음에 전화가 다시 왔다. 진지하게 만들어보고 싶은데 연출을 하면 어떠냐고 해서. <왕과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을 때라 그 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그런 욕심이 있진 않은지?

조 배우는 다 그럴 거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다면 학교 다닐 때 창작극을 써보다가 한 신이 안 넘어가는 거다. (웃음) {커피 마실래?} {어.} 이런 게 두 페이지가 넘어가니까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했다. 배우만 하려고 한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배우에게 힘들기도 할 것 같다.

조 그건 어떤 작품을 하든 모든 배우가 하는 걱정이다.


분위기가 좋아야 작품이 잘 나오는 것 같다.

조 작품이 잘 나오면 분위기도 좋아진다. (웃음) 그러기 때문에 작품이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면?

조 모르겠어요. (웃음) 우선 보러오세요.

오 작품을 영화와 비교하기 보다는 핵심 중에 하나인데 첫사랑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나. 돌아보면 웃기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에 광풍이 일기도 하는데. 떨림이나 설렘, 새로운 환경들, 신선함을 각자의 삶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좋은 공연이다. 와서 마음 편하게 돌아보고 편히 쉬고 돌아갈 수 있는 공연인 것 같다. 가볍게 그 정서를 만끽하면 좋겠다.


첫사랑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 그렇게 설레고 떨렸던 적이 없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지만 사귄다는 생각에 그 사람과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날아서 갔는지 꼭 난 것 같은 기분이었고. 뛰어도 10분이 넘는 거리를 5분 만에 날아갔던 적이 있다.

오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첫사랑이었더라.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사랑을 잘 몰랐을 때인데 처음 설레고 그런데 말도 못 건네고 반대로 행동했던 게 처음이었다. 같은 반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모른다.


첫사랑을 이번 공연에 초대할 의향은

(둘 다 동시에) 없어요! 첫사랑은 마음속에만. (웃음)


진행 이유진 남은경 기자 / 글 이유진 기자 / 사진 고윤지

Posted by haru :

본지에서 말씀드렸던 노희경 작가와 김태균 감독의 대화 녹취록 전문입니다.
사실 원고를 쓰던 화요일까지만 해도 기사 형태로 풀어서 올리려고 했으나,
정리할 틈 없이 어느새 발행일인 금요일이 되어버렸고, 독자와의 약속에 늦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절반만 약속을 지키게 돼서 죄송한 마음을 보태며...

구어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 사실 읽으시기엔 좀 힘든 글이 될텐데요...
두 분의 화법이나 성정을 알기에는 기자에 의해 가공된 글보다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녹취록과 기사를 세세히 비교해보시다 보면
'기자란 놈들은 이렇게까지 남이 한 말을 바꾸는 거였냐!!'라고 생각하실지도?.?
어찌 보면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프로세스이기도 한데,
말을 바꾸고자 정리하는 게 아니라 읽기 쉽도록 정리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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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 김태균 감독. photo by 안주영

노 영화 보고 어떻게 보면 울지도 못하겠고 막 목이 계속 아팠어요. 감독님께서도 말하지만 불편하잖아요 끊임없이 저걸 만든 사람은 무슨 의도로 저 불편한 영화에 마음을 냈을까 저렇게까지.
김 제일 큰 대답은 하느님이예요 사실. 한 5년 크리찬됐는데 10년 전에 제 자신이 좋지않은 후지다는 건 알았죠. 꽃제비가 국수먹는 걸 다큐에서 보다가 너무 가슴아팠어요 아프리카 난민도 아니고 바로 저 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도덕적 윤리적으로 벗어날 길이 없었어요 그 전에도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싫고 힘들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감정이 체한 것처럼 쭉 있었어요 4년 전 쯤에 누군가 내게 이런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래서 이런 영화를 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노 왜 안된다고 했어요
김 대한민국에서 투자가 안된다고 안될 일이라고 했어요 미국에서 영화하는 친군데 이런 걸 영화 만들어야 한다 알려야 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보고 실상에 충격을 받은 거에요 자기가 프로듀서한다 했는데 한국에서 투자 안된다 정치적으로 너무 복잡해 처음에 거절을 했는데 끈질기게 하자 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미국에 있고 모르니까 내가 작가 찾아서 스터디해서 영화가 될 출발지점까지 만들어줄게 감독 컨택하고 그것도 심지어 내가 감독 리스트 줄게 도와주기 시작한 거에요 친한 후배니까. 그랬는데 한 6개월 정도 스터디하고 사람들 만나고 준비하는데 계속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거에요 사람 만날 때마다 그러고 나서도 영화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만드는 게 불가능해보였으니까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내 생각에는 이걸 세상에 내놔봐야 투자사를 만나봐야 내가 바보 소리 들을 것 같았어요 내가 20년간 기획 제작 연출 다 했고 너무 잘 아는데 돈 댈 사람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내가 다른 거 찍어서 돈 많이 벌면 작은 영화로 만들자 했는데 덜컹 투자가 돼버린 거지. 도덕적으로 이 영화를 준비했지만 놀려고 던진 거에요. 안 하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벤티지에 시나리오를 준 거지. 묵은 게 하나 있는데 지금 풀지 못한 게. 너랑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면 이걸 놔야 한다. 니가 안 한다고 하면 고생한 사람들이 있지만 놔야 한다. 덜컹 하자고 하는. 그래서 참 이건 운명이다, 해야 하는 거다. 했지. 나도 엄두가 안 났지. 세트 만들 생각하면 엄두가 나나. 미술 쪽이 준비도 많이 해 왔지만 중국 촬영도 있잖아. 중국은 촬영하기 어려워요. 정치적으로. 돈은 모여졌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제일 어려웠어요. 해야되는가.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뚫고 나가자. 40억이라는 돈이 사실은 좀 모자라요. 세트 만들고 3개국 돌아다녀야 하는데 모잘라죠. 투자사는 40억 안에 만들면 오케이다. 사실은 벤티지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투자 메이드시키기가. 하자고는 했는데 뒷걸음질치고 싶지. 노 왜 안 물렀어요
김 그때만해도 씩씩할때니까. 젊으니까 용기있는 30대 중바 젊은이들이니까 패기도 있고 밀어붙이는 거지. 이런 말도 하더라고. 오케이하고 돌아서서부터 후회했다고.
노 그럤을 것 같아요
김 최근까지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투자가 완벽히 다 이뤄지지 않아서.
노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양심의 문제가 딱 걸렸었다고
김 체한 것 같았어요 아주 오랫동안. 나도 외면하고 싶고 동영상 수기를 보고 싶다가 불가능해보였으니까. 왜냐면 그렇잖아요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탈북자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데 투자자는 당연히 관심없고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정말 독립영화로 얘기 하나 하는 걸로 할 수는 있겠지만 상업시장에서 대중영화로 완성되기는 좀 무리하다. 물론 아주 재미난 액션물이나 첩보물 속 안에서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건 아니었지만.
노 저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된장을 푼다 약을 푼다고 하는 얘기도 하는데 그 유혹을 내려놓기 되게 힘들잖아요
김 그렇죠
노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이댄거야
김 이런 거였어요 처음에 저도 많이 했으니까 아이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면 당연히 관객도 편할 거고 흥행도 더 될 것 같다 그 엔딩이 분명히 더 편할거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나랑 같이 못을 박았어요. 그 친구도 상업영화를 하는 친구니까. 우리가 끝까지 유혹이 있을텐데 그러지 말자 비겁하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그 비슷한 주인공 유상준 다큐멘터리 본적 있어요 아이랑. 이거보다 더 슬퍼요. 거기선 아이랑 핸드폰이 계속 통화가 됐어요. 갖고 있었던 거지. 밤에 사막에서 총이 발사되고 넘다가 대열이 흩어진 거야 잘못 넘었는데 그게 군부대로 가는 철조망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몽골군이 쏜 거야
노 그런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김 그걸 나중에 아버지가 구술하는 게 있었죠. 이 아이가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아버지 내가 여긴지 모르곘어요 아버지는 서울에서 그 핸드폰을 듣고 있었어 핸드폰이 끊어지고 몽골경비대에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되고 묻어준 거야 유상준씨가 있어요 그분은 탈북자를 도우려고 중국에 갔다가 잡혔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워해요 얘기도 하기 힘들어하고 극복이 안된 거죠 자식을 묻었는데 극복이 되겠어요 너무 슬픈 사연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해서 얘기가 시작이 됐는데 해피엔딩의 유혹은 계속 있겠지만 해피엔딩은 만들 수 없다 너무 비극적이라서 조금만 극화를 올려도 너무 극적이 돼버리니까 그건 아니었음 좋겠다
노 영화 보면서 그랬죠 집에 와서도 캐릭터들이 생각이 나는 거에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어요 ??????? 타는데 눈빛 같은 것. ??보면서 느꼈던 참담함에 버금간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시체더미 속에 있는 건데 한나라가 다 거지같았어 그 불편한 감정을 다독이는 방법은 단 하나야 신파지. 그래야 다독여지는데 신파라고 얘기를 해도 사람이 이 지경이 된 것을 갖고 과연 신파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자꾸 스스로 질문이 되는 거야.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감정이 쿨하고 세련되고 모던한 걸 저도 드라마 속에서 계속 고민되는 게 그런 것들인데 지금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김 저도 궁금합니다
노 나 자신은 그런데 왜 끊지 못하고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묻는 건데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절대 안하는데 내가 왜 하고 있나 너는 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쓸 마음까지 내느냐.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통제되어서 97년 10년 전 자료들 이후로 안나온다는 건 더 심각하다는 것. 그걸 알아도 우리는 잘 피해가지. 저도 멜로를 하니까.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고 나 자신도 떠들고 있으니까. 근데 그러면서 이게 뒷덜미를 잡는 거야. 지금 놔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게 정리되어 있다, 감정이 신파로 몰고가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에 기대서 말하지 않는 게 되게 좋았고. 우리가 보여준 것만으로 느끼게 하니까. 나는 피해갔는데 왜 이 사람은 피해가지 못했는가, 자괴감이 드네요
김 자본은 어쨌건 투자가 됐고 저도 대중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었어요 첫날부터. 그러다보니 아역을 찾는 것도 기존 연기자를 계속 많은 애들을 봤는데 아역이야 많으니까 쉽게 생각했어요 그 많은 아역 중에 분명, 그런데 없는 거에요 영동 산골 아이에요 분교 25명 생활하는 데서 개울에서 놀고 때 하나 묻지 않은 명철이가 온 거에요 독립영화를 하나 해 봤어요 그 동네 와서 찍는 걸
노 난 걔가 연기하던 애인 줄 알았어요
김 독립영화 편집하는 걸 보다가
노 유연해서 연기를 참 잘 배웠다 생각했어요
김 안 배운 애죠
노 여자애도 그렇고?
김 여자애는 많이 한 얘에요. 여섯살 때부터. 그런데 명철이를 보면서 걔 톤의 연기 톤을 기준으로 잡자. 담백하다. 연기가 훈련되어진 애가 아니니까 담백한 것 이외에는 못해요 조절이 안되는 거죠 어쩌면
노 시키면 너무 연기 해버리는구나
김 그게 안되고 또 성격이 워낙 쿨해요 네 아니면 대답이 없어 아니오는 대답을 안해버려요 세시간 앉아있어도 말을 시키는 법이 없고 말 시키면 그냥 네 산골 조그만 분교에서 때묻지 않고 자란 거지 아버지는 호두농사 지으시고 양봉 치시고.
노 또 제가 궁금했던 게 사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을 때에 감독이나 작가조차도 공감을 받는 부분이 있잖아요 영화나 만들고 글이나 쓰지 뭐한다고 의미를 담을 거냐 언젠가 감독과 작가에게 요구되던 게 의식이었다면, 의미나 사회적 참여였다면 지금 이 시기는 그런 것들이 하나의 제스쳐, 쇼가 돼버린 거지. 모두가 그렇게 해서 결국 종교로 빠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하니까 글 쓰는 사람들, 작품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건 하나의 쇼고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하다못해 감독답지 못하고 작가답지 못한 짓이다라는 공방이 있어요 어떤 밥을 먹고 살든 호화롭게 살든 그런게 욕이 안되는 세상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기 때문에 모든 게 쇼처럼 됐고 충분히 욕을 먹을 수 있는 쪽에서 보면 감독이 돈 써서 상업사회 살면서 돈이나 벌고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서 그렇게 고민을 해야지 무슨 의미를 찾고 하느님도 나오고.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 늘 가로막혀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이 시대의 창작자들은 지 밥벌이가 전부여야만 하는 사람들인가. 감정조차도 신파가 되고 이런 세상이니까 감독님도 고민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전면에 내세우면서 할 수 있었나
김 이건 오래된 숙제 같은 거니까요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거죠
노 숙제 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김 저는 이거 찍고 바로 화산고처럼 액션 젊은 애들 액션 영화 들어가는데 크로싱 찍을 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내가 여태 그런 얘기 하던 사람도 아니고 우습고 그만한 걸 감당할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떨어진 거죠 누군가 이 소재를 빨리 했으면 저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어요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하다못해 이 영화를 4년 동안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왔을 때 남북한이 더 빨리 교류되고 더 빨리 무너지면 이 영화를 가치 없는 게 되잖아요 지금 북한이 더 잘 살고 식량이 많이 들어가면 걱정을 했잖아요 그러다 회개를 했어요 누가 이렇게 묻더라고 니 영화가 망하는 게 좋니 저기가 살게 되는 게 좋니. 내가 4년을 날려도 저기가 잘 사는 게 좋더라고요. 해왔다고 했는데도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내 스태프들에게도 분노하고. 왜냐면 갈등이 많아요. 탈북자분들이 스태프로 배우로 많이 참여했는데 화가 너무 날 때가 있었어요
노 왜
김 요구사항도 참 많아 나는 다른 사람과 못 자니까 방을 따로 달라고 하기도 해요. 웬만하면 감독 빼고 돈 없어서 다 따로 자. 감독이야 혼자 자야되니까. 그런데 남이랑 못자겠다는 거야. 근데 나중에 이해를 한 게 많아요
노 어떻게 이해를 했어요
김 어려서부터 다른 세계에서 살았는데 잘못을 인정을 안 해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나 못 들었습니다 전달 받은 바 없습니다. 실수를 인정을 안 해요. 그게 뭐냐면 스스로 인정하는 그 순간 죽는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생활총아라는 게 너무 다른 세계에요. 세계 표준화에 접근돼있지 않아.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얘기하는 생활총아라는 자아비판 시간이 있는데 직장인 1주에 한 번 작가나 예술가는 이틀에 한 번 농민은 보름에 한 번
노 작가 예술가는 빨리 썩으니까 이틀에 한번씩이구나 하하
김 그런 사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같은 한국말인데도 말이 안 통해도 일본 미국 사람과 얘기하는 게 더 부드러워요 너무 폐쇄된 사회에서 자기 질서만 갖고 살아왔어. 통일되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노 아까 아들 죽은 아버지가 말하기 싫다는 마음이 차인표의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보는데 아이가 죽을 때보다 더 그런 ? 어떻게 사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막 울었어요
김 내가 볼 때 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온 게 아니에요 생존하려고 온 거에요 1만5천명이. 그 안에서 자유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유는 맛보고 비교는 거에요. 태어나서 그 안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면 몰라요. 자유를.
노 실제 대사관 사건도 그렇고 저도 그때 갔었는데
김 다 생존의 문제예요. 오고 싶어서 탈출하는 건 아니다. 잡혀가면 수용소 가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가면 또 굶어죽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먹고 살고 싶어서. 가면 또 굶어죽고.
노 돈 준다고 해서 넘어온. 그런 걸 계속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벗어나는 문제였던 거야. 부모자식 버리고 온 놈이 오죽하겠어,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인데 그렇게 나올 때 갔다 와서 동생이 묻는 거에요. 얘기를 하다가 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얘기를 하니까 ??????
김 그 사람들 지금도 사실 돌아가고 싶어해요 정치적으로 박해만 안 받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여기서 친척을 먹여살리는 탈북자 많아요. 돈을 송금해서. 100만원 보내면 80만원이 들어가더라고요. 한국돈 80만원이면 여덟-12식구가 1년 간 식량 안 떨어지고 먹을 수 있어요. 그게 참, 돌아가고 싶어해요. 어쨌건 여기 뭐가 있어도 별 게 없는 거거든요. 자기 고향이잖아요. 자유가 없는 것 같아도 숨 쉴만은 해요. 숨 못 쉬는 건 아니고 다 익숙해서 그 안에서 설렁설렁 가는 것도 있고. 밥과 약만 있으면. 물론 자유를 맛 본 사람들은 힘들겠지. 직장 안 가도 되는 게 신기하대요. 배치 받으면 안 갈 수가 없대요. 출근 안 하면 노동단련소로 가야 하고. 우리는 직장 싫으면 관두잖아 그게 너무 신기하고. 너무 다른 세계에요
노 어떨 땐 북한 아사자들 얘기 들으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과연 그러겠나. 정부에서도 굶어죽는 사람 없다고 하니까. 내가 옛날에 19 20살 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소설이 있었어요 625 배경으로 한 가족사를 설명 거였는데 책 겉장에 독후감을 써놔요 막 욕을 써놨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고 막말을. 저도 산동네 살았는데 이미 70년대에도 나는 그 가난보다 더 찌들게 산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게 지금 과연 전후의 아픔을 아는 건가.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브루조아야. 먹을 수 있고 학교에 갈 수 있다니. 66년 생인데 마포 산2번지, 산천동. 고층 삼성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지만 판자촌이었어요. 거기서 내가 그 책을 읽는데 분노스러운 거야. 그걸로 아주 리얼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 사람들이 다 잠깐 미쳤나 했어요 20년 이후에도 우리는 이러고 살고 있는데 늘 싸우고. 크로싱 그 마을 보니까 우리 동네 같은 거야.
김 저도 그런 느낌을. 연결해서 세트 짓고 몽골 마을. 50년대 전쟁 끝나고 너무 똑같아요. 북한 사람들이. 사진이랑 연결해서 보니까 소련에서 처음 주택을 지어주던 방법들이 몽골이랑 똑같아요. 설계도가 같은 거야. 표준 설계도. 방 구조가 러시아 방법으로. 새마을 짓듯이. 그게 똑같아요. 너무 잘됐다 했죠. 저도 찍으면서 어린 시절이 너무 기억 나는 거야. 동네 애들… 충무로 위 산동네. 장충동쪽. 그 동네 좀 낫지 않아요. 루핑집이 있는 데서 살았어요 저도. 동네애들 다 트고 버짐 올라서 할 거 없으니까 밖에 나와서 놀고. 할 일 없는 아저씨들 파자마 입고 나와 있고. 술취해서 초저녁도 안돼서 소리 나오고 똑같아요. 그 느낌들이 나도 향수가 있지.
노 그 생각도 나고 그 이후 데뷔해서 좀 먹고 살 때 중국 다통 탄광촌에서 깜짝 놀란 거지. 20년 전의 모습이 있는 거야. 우리 언니도 공원이었으니까 카바 신고. 그때 내가 수필을 하나 썼었는데 거짓말 이후 간 거였어요. 도대체 이 시간이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나는 이미 잊었는데 또 만났다가 영화에서 또 만난 거지. 대한민궁이라 쓴 쌀이 있잔항요. 우리도 동회에서 배급을 쭉 받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위에서 뜯어먹는다고 해도 그래도 밑으로 떨어지긴 하거든. 어린 애가 20키로짜리 밀가루를 들고 계단을 막 올라요 거기에 그게 있는 거야. 악수하던 미군 포대. 한미우호. 그 생각도 나면서.
김 저도 이거 찍으면서 향수를 많이 느꼈어요. 왜냐면 북한 사람들 만나보니까 사람들이 점잖아요. 배운 사람들이. 내가 막 썼던 말들이,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내가 좀 뽈 좀 차죠 이렇게 말하면 걔는 사람 취급 안 받는다, 잘난 척 못 합니다. 하더라.
노 ???해서 그런가.
김 우리 아버지 시대 부부관계 같아요. 부부 간에도. 술먹고 때리는 사람 많다는데 참 깔끔하고 정있게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정있고 조용조용. 애들도 부모에게 존대말을 써요. 부부간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 내 어린 시절 기억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쉬웠어요. 30-40년 전 모습이구나. 그대로 있구나.
노 우리에겐 추억이고 향수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계속 현실이구나. 내가 그걸 2-30년 겪었으면 돌았을 것 같아요. 그 가난은 나는 절대적 가난이 10년. 설마가 자꾸만 확인하게 되고.
김 너무 변했죠. 먹고 살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노 그래도 불구하고 잊잖아요. 안 믿기잖아요. 설마가 떠오르잖아요. 내가 펑펑 울었던 장면이 두 군데였는데, 울음을 참았어. 우는 것도 신파다. 차인표가 벌목장에서 돈 받는 장면의 초라함과 구질스러움이 눈물이 나더라고. 임금 받을 때의 느낌. 우리는 이제 통장으로 받지만 옛날에 아르바이트 했었어요. 찌라시 나눠주면 아저씨가 오천원짜리 천원짜리 오백원짜리 섞어서 주는 거지. 탁 받아서 분명히 내 순서되면 날 주는 건데도 탁 받아서 고맙습니다 소리도 못 하고 뛰어가는 거야. 돈 쓸 생각에 그랬는지 몰라도 그게 돈 세는 데에 오버랩되더라고
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 고통이 있었던 사람들이예요 어머니 생각이 나거나 아버지 생각이 나거나 굉장히 강하게 다가오는 거. 요즘 영화가 그런 기능을 안했고 많이 채워준 적 없고, 현장에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맨날 좀 더 스피드있게 좀 더 대사 툭툭 쿨하게 던지고 좀 더 드라마틱한 것에 훈련되고 살아온 사람이라 어릴 때 꿈꿨던 영화를 잊었어요. 누군가에게 위안될 수 있고 그런 걸 잊었어요. 맨날 대중 의식하고. 대중보다 일단 투자자부터 의식하게 되지. 투자자가 대중의 표본이지. 그러다보니 잊었는데 찍을 수 있는 기호가 만들어진 게 감사하지. 극장에서 시사하는데 가니까 블록버스터들 보니까 나 같아도 내가 이걸 보겠나. 들어가면 고통일텐데. 어느 순간 되게 크로싱이 초라해보이더라. 그 화려한 신나는 여름 블록버스터들 안에서 미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일단은 감사한 거에요 내 스스로에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만들어진 자체가. 충무로 자본이 힘든 상황에서 만들어진 자체가 기적이에요.
노 그 기적이 정말 기적이 되길…
김 묘한 건데 만들고도 두려워졌고 영화가 나왔을 때 고독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치적으로 ?될까봐 표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인터뷰도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움직였어요. 이 문제를 만든다고 할 때 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너무나 의견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복잡하고 내가 중국촬영을 할 때 그 사람들 만나면 정보기관도 있고. 북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그럼 중국촬영 무산되고, 몽골에서도 여러 허가 받는 게 복잡해질 것 같고. 거기 북한 대사관이 있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하다가 한 분 한 분씩 만나기 시작하는 거죠. 만들었으니까. 그 안에서 진짜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고 내가 뭐했나 싶게. 일들을 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뉴스위크 일본 특파원이 중국에 취재를 갔다가 탈북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꽃제비 아이들을 만났다가 돌아서지를 못한 것. 돌아서면 애가 죽을 것 같았고. 통역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쟤 돌봐달라 하다가 그게 연결이 돼서 기자를 안 하고 NGO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신기자 클럽에서 이런 일을 알리고 있다. 중국이 계속 북송시키니까. 북송 당하면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사실 정치적 난민인데도 중국이 거부하고 있으니까. 그럼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부끄럽고. 저는 사실 이만치 했으니까 도망가고 싶은데. 숙제 했잖아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제 또 만나보니.
노 너무 많은 의미가 있으면
김 그게 발목 잡히는 것 같아서. 그런 분들 만나면 발목 잡힐 것 같아서. 너무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내 살 길 때문에 바빠서 안 돌봤는데 만나고 보면 내가 눈물이 나오는 거야.
노 누구는 목숨 걸고 하는데, 도망갈 변명이 너무 빈약한 거야
김 안 만나고 영화 찍고 도망가고 싶은데 홍보를 하려다 보니까 그분들을 또 초청하게 되고 만나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못 도망가는 거지. 그렇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여명학교 탈북자 아이들 교육시키는 곳인데 사실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나도 이걸 찍으며 쉽지 않았는데, 내가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데 나도 잡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잡혀가는 악몽꾸고 일어나서 식은땀 흘리고. 아이들도 여기 와서 두려운 거지. 왜 티비에 김정일 사진이 계속 나오는지. 잘못 되는 거 아닌지. 그런 두려움. 교육 체계도 다르니까 부적응해요. 더 돌보고 더 배려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애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데 상처를 더 후벼파는 거 아닌가. 잊고 싶은 부분을 상기시키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런 편지를 보냈는데. 애들이 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잘 안 우는 애들이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관객 안에 있었다는 게 애들에게 너무 위로가 됐다. 그들의 마음을 누군가 아는 것만 해도 큰 위로가 됐다.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그렇게 후벼파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같이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고. 감사한 건 홈페이지에 격려의 글이 많다는 것. 300몇십개를 읽어보면서. 이렇게 바쁘고 스쳐지나가는 것 같지만 누군가 장을 마련해주면 얘기를 할 수 있구나.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거지만 끄집어내지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 가장 위안이 되는게 될까 하는 부정적 마음 한 편에 모르고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정보가 공유되어있지 않으니까 들은 말로 편견이 돼버리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될 수 있겠다. 요즘 뉴스와 100분 토론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인데 너무나 많은 정보가 공유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다 보니 정확해지고. 엄청난 정보의 공유. 그러나 기사보다도 영화가 힘이 발휘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는 모르니까, 보고 나서의 얘기는 굉장히 다른 부분이다. 그런 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피해가고 도망가고 싶은 얘기지만 보고 있으며 불편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들을 감싸안는 자체가 내 자신이 편해지기 때문. 누구에게 그랬어. 작업하다 왜 내가 여길 왔을까. 나도 모르겠다. 동생이 그러더라. 배우 얘기를 많이 해, 연기 잘 한다고 그래.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봐. 꼬맹이들 정말 연기 잘한다고.
김 저도 안 가본 데잖아요. 몰래 찍어온 동영상, 사진 몇 장으로 새로 만드는데 북한 사람들 탈북자들이 도와주긴 했는데 녹음실에서 트는데 장마당 엑스트라들이 몽고 사람이니까 대사를 넣어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자기 동네라고 그러는 거다.  정말 들어가서 찍은 거냐고. 정말 감사한 거다. 내가 제대로 찍었구나.
노 가난을 접해보셨으니까.
김 참혹한 건 거뒀지. 수용소도 일부러 좀 더 아름답게 찍었다. 자연의 느낌이라도 다가오게. 그렇지 않으면 이걸 어떻게 볼까. 어떻게 더 쿨하게 드라이하게 찍을까 고민. 멜로와 서정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못 보겠다 싶었다. 비참함은 1/10도 안 보여진 것.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게 너무 많지만 묘사해버리면 몬도가네가 되니까. 감방이라는 데도 걔들은 잡혀가면 누워서 자지를 못 해. 풀려나올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자는 거다. 통솔하는 완장 찬 죄수만 발 뻗고 잔다. 밤 10시 취침 전까지는 계속 외우고 아침에는 노동하고 자는 거다. 허약한 애들은 석 달 못 버틴다더라
노 나는 한달도 못 버틸거야
김 살라고 갖다 놓은 것도 아니고 너무 말이 안돼. 온 몸, 벽 사이에 이가 득시글. 그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해 봐. 솔기마다 이가 붙어 있는 거. 내가 보위부에 잡혀가는 꿈을 꿨다. 김정일이 보위부 보내서 잡으러 오면. 너무 싫은 거야 거기 가서 산다는 게. 악몽을 두 번을 꿨어요.
노 시나리오는 누가 썼어요?
김 처음으로 영화화가 된 거예요
노 쓴 사람도 그렇고 카메라 들이댄 사람도 그렇고 판 사람도 그렇고 참.
김 이제 반동작가가 된 거죠. 자료수집서부터 고생했고 브로커 만나고 두만강변에서. 브로커가 진짜 들어가서 취재하고 올래 한 적도 있고, 강 건너가면 들어가는 거다. 거기서 겁이 나지. 눈 앞이 북한인데 들어가게 해줄게 인터뷰 하게 해줄게. 하는데. 나 아는 탈북자는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해. 허술한 것 같기도 하고. 돈으로 너무 잘 되니까. 여기보다 거기가 더 돈이 왕이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인데 너무 모르고 알려고 들지도 않고.
노 오면서 생각했어 사람들이 착해요. 어떻게 착하냐면 우리는 안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야. 정보가 없으니까 그렇게 믿어. 그게 사는 방법이야. 외면해야 내가 사니까.
김 그렇죠 한 시간 거리에서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게 진짜라면. 같은 핏줄이고 같은 언어을 쓰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분명 신음소리가 들려올텐데 너무 귀찮으니까 귀를 일부러 닫는 거지. 티비 볼 때도 힘들면 채널 돌리잖아. 그런 현상인 것 같아. 그러나 우리 국민 훌륭해요. 금반지 태안. 훈훈하고
노 이런 나라가 어딨어. 나 촛불 가서 촛불이 찡하더라니까. 72시간 할 때 한 번 갔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가니까 나도 나가서 한 시간 정도 걸어봤는데 누가 말을 들어줄 거라고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와서 촛불을 들고 있나 해서 먹먹하더라고. 희망이 있을 거예요.
김 저도 그렇게 믿어요. 우리 민족이 참 묘한 민족이에요.
노 그렇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를 통해서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줄 세뇌됐던 것을 깰 때 훈훈한 봇물이 좀 터질 수 있는 걸 왜 김태균 감독이 하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하하
김 저도 그게 제일 피하고 싶었고 궁금했던 저도 10월부터 일본 합작 촬영 스케줄이 있어요. 잘됐다 하는데 그런데 끝없이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기니까.
김 일본에서 크로싱을 틀어요. 인권 운동하는 분들이. 처음엔 사람 많은 런치 타임에 틀기로 했는데 사람이 덜 모이더라도 식후에 틀자 했죠.
노 나도 이거 보고 나와서 김효진씨랑 빈대떡집에 갔는데 음식이 남아서 싸올 건 싸오고 먹을 건 꾸역꾸역 먹고. 계속 뒷통수가.
김 어떤 목사님이 이러더라. 거룩한 고문이다. 이건 우리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다. 북의 문제는 우리 문제다.  혐오증이 생겨서 그래. 짜증나게 핵이니 뭐니 자꾸 그러니까. 핵이나 정치적 문제는 눈 돌려 들여다 보지 않아. 염증이 생겨 그렇지.
노 그런 정치적인 것들을 다 떠나 봐야 할 것 같아.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 감독님이 절제했단느 건 보면서도 힘든 와중에 절제된 게 보인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잘하셨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령 1/10밖에 안되더라도 사람들이 그나마 그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따뜻한 두 부자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참 잘하신 것 같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결과일 것이다. 너무 한쪽으로 갈 수 있었는데도
김 가족, 부자 간의 얘기만 잘 보이길 바랬어요. 지나가면서 다 보일 테니까 겪는 것 안에서 과장 안해도 그 안에서 다 느껴질테니까 얘기하고 싶은 건 부자의 얘기만 감정선을 가져가자. 그래서 그게 그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감정이입 들어가면 우리 얘기가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얘기가.
노 의미를 빼고 감동스러운 부자 얘기로 자꾸 얘기가 돼야 해요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부분이 많죠 다들 전략가가 됐으니까 다들 사람이 없어지고 다들 훈수를 두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지. 감독님이 참 잘 만드신 거야. 나는 일단 도망갔을 거예요. 100프로 도망갔을 거예요. 아예 다룰 생각도 안 했을 것. 이 얘기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도 쓰려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도, 통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같이 어우를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드라마에서 탈북자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잖아요. 그런데 날 보세요. 나는 도망갔단 얘기지. 내가 안 하는 꼴을 보세요.
김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노 소극적이지만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난 외면했잖아요. 그런 부분들. 모든 의미나 모든 사람들의 인정. 인간 사이에 가져야 할 훈훈함 마저, 때때로 부모자식간 마저도 쇼가 되고 나 자신까지도 신파가 돼버린다. 마음이 먹먹하죠. 언제부터 이렇게. 나 역시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사진 한 장이 아닌 영화로 새롭게. 부자 얘기가 참. 우리는 살려고 헤어졌습니다. 말이 안돼요. 내 동생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준 떡을 먹고 체해서 병원에 갔는데 쇼크사로 죽었어요. 가난이라는 분노는 <내가 사는 이유>를 썼을 때 70년대 마포를 갖고, 20년 내내 그게 내게 상처가 됐어요. 내 동생이 죽고 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거든요. 그 아버지가 몽골에서 ?때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너무 힘든 게 영화를 찍을 떄까지 오히려 몰랐는데 찍고 나서 우리 배우들 인터뷰를 했어요. 배우 중에 브로커로 등장하는 사람이 탈북자다. 난 처녀인 줄 알았는데 몇 달을 씩씩하게 잘 살았는데 갑자기 펑펑 우는 거다. 나 사실은 애 놓고 왔다고. 자격증 따서 화물 크레인 기사인데 열심히 잘 사는데. 석달 있다 온다고 애 두고 왔는데 영영 헤어졌다며. 자기 살려고.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애 데리고 강을 못 건너니까 맡겨놓고 왔는데 영영 멀어진 거야. 몇 개월 동안 생활하며 얘기를 안 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그러더라. 우리도 찍다가 못 찍은 일 많아요. 연습하다가 살아온 사연 좀 듣다 보면 이 사람들은 생사를 넘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한 상상을 초월하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 이번에 취재하고 준비하면서는 못한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인간의 극한까지 가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까지를 그려야 하는지. 소통의 방법은 그래서 일단 아버지와 아들 얘기로만. 멜로드라마지만 일단 사람이 관심을 갖고 봐야 하니까. 고발 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가 훨씬 강렬하지. 블록버스터지만, 그 틈새에 들어가 있지만. 내가 어쩌다가 처음에 5월에 했어야 했는데 점점 밀려서 그 중심에 딱 들어가게 됐나. 함경남도 고원이 우리 아버지 고향이다.
노 여러가지 빚도 있으셨네
김 이제 생존해 계신 분도 몇 분 안 계시고. 그래서 내가 함경도를 모델로 삼았지. 마지막 장면의 강가가 우리 할머니가 귀에 못 박히도록 말하던 덕지강이다. 편하고 좋았던 시절 얘기가 강가거든. 함경남도 고원군 군내면 상석연리. 이렇게 주소를 외우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내가 못 가도 너는 가라는 얘기를 들어서 나중에 찾아 봐라. 아버지 쫓아서 고향 분들 만나는 데에 따라가고, 술 많이 먹으면 우는 사람 꼭 나오고. 어쩄건 북한 문제가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가족의 문제가. 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요. 60년이 넘었잖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부르면 어릴 때 찡하고 그럤는데 부른지도 너무 오래됐고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중학교때. 통일 비용 어쩌고 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니가 돈 내냐 하며. 어디부터 그렇게 돈돈돈 해버렸는지. 중2짜리가.
노 이제 돈에 질리지 않았을까. 돈 때문에 뽑았는데 이렇게 되니까
김 노대통령이 이라크 파병할 때 근사한 얘길 보편적으로 해야 될 거 아냐. 돈 때문에 파병한다는 얘기를 하고. 진보는 그렇게 실수를 하고, 실용주의는 인간이 살 가치가 아니거든. 대안이잖아. 왜 그게 가치가 돼버렸는가.
노 돈계산들을 너무 잘하지
김 배고프면 일단 먹여야지, 아프면 약줘야지. 어느 순간에 통일의 문제가 비용 문제가 된 건가.
노 세뇌가 된 거죠. 계속 들으니까 전략가 정치가가 되는 것 같아요. 정치는 정치적으로 풀어야돼 하다가 반문을 하지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치적이었어, 정부에서 나오는 어쩌고 또 생각하다가 니가 또 언제부터 그렇게 정부를 믿었어, 북한 정부 얘기하면 또 니가 그렇게 북한 정부를 믿었어. 내가 말을 하면서도 탁탁 걸리는 거지. WFT도 그렇고 북한 자료도 그렇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믿었나. 세뇌가 된 거지. 대량학살 안 난다고 하는데, 이미 다 거지촌이고. 니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고 있냐. 세뇌가 뿌리깊게 된 거예요.
김 저도 그랬어요. NGO도 의심스럽기도 했다. CIA 국정원 안기부 끄나풀일 거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과장된 정보를 던지는 거야 하며. 외국인 NGO는 외국 사람이 여기 와서 왜 저 난리야 했고, 쇼맨쉽이라 의심했다. 그런데 다 가짜가 아니다.
노 이게 다 미친 짓이 돼버린 거지.
김 사실은 내가 NGO 피땀 흘리는 걸 잘 못 그려줬어. 냉정하게 그렸죠. 기획탈북도 그렇고 잘못할 수도 있다는 걸 자료를 통해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중립을 넘어서서 사실 비난논조가 있었어요. 희생양도 있고. 나중에는 그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탈북 운동하는 사람들은 버젓한 직장에 있다가 어쩌다 한 사람에게 엮여서, 그 사람 어떻게 될까 해서 돕다가 또 한 사람 알게 되고 해서 점점 일을 못 하게 돼버린 사람들 많아요
노 뻔히 보이는데 갈 수가 없지
김 내가 가면 쟤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쪽 세계에 발목 잡힌다는 얘기들이 있는 거지. 세상엔 내가 볼 때는 완전히 안 무너진 기준들이 있다.
김 성격상 목청 높이는 사람도 아니고 피켓 드는 사람도 아니다. 영화 봐. 영화가 만들어져 감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지게 돼서 감사하고. 요즘은 내 스스로가 감동돼서 감사한 게 많아요. 고맙다 하는 소리 들을 때. 조금이라도 체했던 거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다. 전 행복해요. 작가님도…
노 난 도망가서 힘들어요. 영화에 고맙고. 영화적으로 충분히 볼 거리도 있고. 저도 멜로 참 좋아하는데 세상에 부모자식 간의 멜로만큼 찡한 게 없죠. 상당히 이 영화가 대중에게 어필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내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면피 용으로 지원을 해야겠다는, 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내 양심을 잡는 부분이니까. 이런 큰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믿는 만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통일을 이 영화를 통해 믿게 된다면 통일에 큰 교두보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의미에 빠진 것이 아니고, 정말 많이 울고 훈훈해졌어요. 불편한 영화라면 보고 나서 각박해졌을텐데, 크로싱의 불편함은 내가 인정해야만 했던 부분이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축축해졌나봐요. 나올 때, 외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잘 봤다는 기분으로 훈훈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말 한 마디 보태는 것이잖아. 탈북자들에게도. 얼마나 악랄하면 자식을 두고 오냐,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무서운 애들 아니냐고. 하지만 오죽하면 여북할까. 나는 안 그러리라 생각하면서 남은 그럴 거라 생각하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다고 하면, 살려고 그렇게 버리고 오는 현실이라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그게 아닐까. 편견을 가지고 이들의 시선을 봐왔지만. 같이 울어주는 것, 마음 한 번 내주는 것이 어쩌면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 좀 더 편한 기분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김 이만치 어려운 거예요. 북한에 식량 보내자고 100분 토론하면 100분으로 안 될 거예요. 의견들이 그만큼 복잡해요. 다 잘라내고 단순한 데서 출발하자. 저기 사람이 있고, 굶어 죽고 있다. 가족들이 죽고 있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있다. 우리는 여태 보지 않았지만 안 보이는 곳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 나중에 그 시간에 우리 동포가 죽고 있는데 그 시간에 우린 뭘 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쩌나.
노 보고 나면 많은 논리들이 녹아요. 느끼게 되죠. 내가 당장 탈북자를 본다고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말, 작은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거예요. 보지 않고서는 거추장스러운 말이 많아져요. 냉정함은 그렇게 힘든 것.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닦아낼 때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게 내려 앉고 세상이 살만하게 다가설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도망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짜르르하구나 아직은 사람같이 느낄 수 있구나.

Posted by 미역별

드디어 개봉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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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스필버그

5월 22일입니다. 극장에서는 이미 <인디아나 존스 4>가 여러번 상영됐겠네요. 몇 년을 기다린 작품이었고, 개봉 직전 전편들을 되돌려 보며 두근거리는 심정도 느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비록 영화에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스필버그와 루카스에 대한 팬심만은 영원하다는 의미에서... 칸 영화제 기사와 중복되어 게재하지 못한 스필버그, 루카스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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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속편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있었나?
내가 연출한 영화 때문에 홍보 정킷을 갈 때마다 나는 기자들로부터 꼭 이런 질문을 받곤 했었어요. “다음의 ‘인디아나’ 영화는 언제 나옵니까?” 물론 거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고 일종의 뉴스 거리이긴 하죠.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일하는 라디오나 TV 방송국, 또는 신문이나 잡지를 대변하여 물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그저 자신들 스스로가 궁금한 것 뿐이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카메라가 꺼졌을 때도 나한테 이렇게 묻곤 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만드실 건가요?”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나에게만 던져진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난 그것과 관련해서 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 질문은 해리슨에게도 마찬가지로 던져지곤 했고 조지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모두가 그 질문을 받아왔죠.

해리슨 포드와 다시 작업하는 건 어땠나?
맨 처음부터 해리슨은 이 프로젝트의 중심이었어요. 그를 캐스팅 한 건 우리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구요. 내가 연출했다는 점보다, 모든 작가들이 달려들어 에피소드들을 썼다는 점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어요. 더 중요한 건, 내 생각이지만, 그가 그 역할을 맡아주지 않으면 이 시리즈는 과거만큼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해리슨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방식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힘이 나온다고 믿었으니까요. 이건 단지 맥거핀이 아니라 컨셉의 문제에요. 이 캐릭터를 만든 것 자체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니까. 이 점이 바로 우리 모두가 공감한 핵심이었어요.

액션 영웅, 해리슨 포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 생각에 이번 영화는 어떤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세 편의 영화보다 더 해리슨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안전 장비나 장치들, 혹은 우리가 나중에 디지털 작업으로 지울 수 있는 와이어 덕분에 해리슨은 죽음을 무릅쓴 스턴트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죠. 아마 물리적 관점에서 만일 주행 거리계 같은 것이 있다면 해리슨은 아마 <레이더스>보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더 많은 마일리지를 기록했을 걸요.

영화의 시대배경이 1957년이다…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된 1957년은 냉전과 매카시즘처럼 서슬 퍼런 시기였죠. 물론 가죽 스웨터에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새들 슈즈를 신은 소녀들도 넘쳐나긴 했지만요. 결국 이런 게 50년대를 규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음악은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였구요. 완전히 새로운 시대였죠. 더 이상 30년대가 아닌…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인디아나를 본 지 20년, 거의 20년이 흘렀어요. 인디는 성장했고 더 현명해졌고, 그리고 훨씬 더 강해졌어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1950년 대 중반의 미덕으로 바꿔야했죠.

머트’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설명해달라
머트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인디아나 존스의 삶에 들어왔죠. 마치 <와일드 원(위험한 질주)>에서 말론 브란도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는 브란도 스타일의 모터사이클용 모자를 줬더니 그는 역을 막 떠나려는 기차에서 기관차의 수증기 속을 헤집고 나오더군요.  그의 손에 드라마의 키가 있죠. 그가 결국은 인디아나 존스, 즉 존스 교수와 관객에게 플롯의 단초를 제공해요. 그가 인디아나에게 그의 오랜 동료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물이거든요. 수 년 전에 인디아나와 함께 시카고 대학교를 다닌 옥슬리 교수라는사람이 납치된 사실을… 결국 그가 정보를 제공하고 “인디아나 4편”의 드라마를 여는 인물이에요.

샤이아 라보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머트 역할에는 그 어떤 다른 대안도 없었어요. 내가 몇 해 전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영화 “홀스 Holes”에서 샤이아를 처음 봤을 때 그랬어요. “인다아나 존스 영화에 딱이겠다”구요. 약간 리버 피닉스를 연상시키기도 했구요. 어쨌건 내가 샤이아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첫인상을 내 머리 속에 일종의 북마크한 순간이었어요.

샤이아 라보프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
내가 샤이아가 “인디아나 4”의 머트가 될 거라는 걸 안 건 “디스터비아”를 봤을 때였어요. 거기에 관해서는 정말 확신이 있었어요. 조지 루카스에게 “디스터비아” 얘기를 했고 그도 보고 나선 당연히 좋아했죠. “당장 샤이아를 캐스팅하자”고 하던데요.

“메리언 래번우드”, 카렌 알렌과 다시 작업하는 기분은 어땠나?
그 수 년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카렌과 같이 일한다는 건 진짜 영광이었어요. 그녀는 정말 하나도 안 바뀌었더라구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우리가 저번 영화를 개봉했던 1981년과 하나도 다름없이 그녀는 여전히 혈기왕성하고 팔팔한 메리언 래번우드더라구요.

악역 “스팔코”, 케이트 블란쳇에 대해 설명해달라
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작업해 봤던 제 주변의 감독들이 하나같이 그러더군요. 블란쳇이 혹시 캐릭터 속으로 사라져버리더라도 놀라지 말라구요. 정말 그들 말이 맞았어요. 그녀는 진짜 이리나 스팔코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더라구요. 그리곤 내가 “컷”을 부르는 순간 다시 나타나요.

이번 시리즈의 스타일에 대해 설명해달라
나는 정말로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전작 3편과의 혈통을 이어가길 바랬어요. 그래서 온갖 종류의 부비 트랩과 온갖 해외 로케이션과 리얼한 셋트들이 동원됐죠. 하지만 첫 번째 영화만큼 전세계를 돌아다니진 않았어요. 전작들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이 미국 내에서 촬영됐어요. 남미와 중미, 사우스 웨스트, 그리고 마샬 대학 분량을 찍은 이스트 코스트 등지를 다녔죠.         

존 윌리암스의 음악이 이번에도 역시 등장하겠죠?
매일 아침 셋트장엘 가면 전기공이 “인디아나 존스”의 주제가를 휘바람으로 불곤 했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그 주제가를 흥얼댈 때도 있었구요. 누군가가 그 노래를 시작하지 않으면 우린 촬영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건 확실히 존이었죠. 이 영화의 표상이나 이미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구요. 멋진 모자도 있고 훌륭한 채찍도 있어요. 물론 그 모자를 쓰고 자켓을 입고 채찍을 든 해리슨은 정말 근사하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거의 누더기 차림으로 나타나는 해리슨에게 그 멋진 활기를 부여한 건 바로 존 윌리암스의 주제가에요. 마치 선율들이 하늘에서 그의 악보로 뚝 떨어진 것처럼 존은 천재에요. 그의 주제가가 없었다면 인디아나 존스는 정말 존재하지 못했을 거에요. 물론 당연히 그 주제가도 인디아나 존스 없인 아무 의미도 아니었을 테구요.

인디아나 존스가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인디아나 존스”가 전형적인 가족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DVD나 비디오, 심지어 텔레비전으로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인디아나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아마 “인디아나 존스”가 과거에 누구였고 현재는 또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보시게 될 거에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앉아서 은접시에 담겨 나오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받아 보시는 것처럼요. 이 영화는 단지 오랜 팬들을 위한 영화뿐만 아니라 인디아나 시리즈를 접해 보지 못한 어린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해요. 그 어린 관객들은 인디아나라는 이 남자가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전혀 알 턱이 없지만 이게 곧 그가 헤쳐 나갈 일을 생애 처음으로 목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곤 그들 역시 그 여정에 동참하게 되겠죠.

조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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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관련, 30년간에 걸친 스필버그와의 작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부분 합의를 했고, 비슷한 미적 취향을 가졌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와이 해변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죠. 해변에서 스필버그는 제임스 본드 류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고 “이봐, 나한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야, 아마도 우리가 함께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라고 나는 말했어요. 사실 나는 절친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건 다른 어떤 일도 마찬가지지만 자칫하면 우정에 금이 가기 쉽거든요. 하지만 스티븐과 나는 서로 기질이 비슷했고, 우리가 함께 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리고 우린 둘 다 영화 만드는 걸 정말 사랑합니다. 제작을 하건, 연출을 하건, 시나리오를 쓰건 말이죠. 그 과정 자체를 정말 사랑해요. 그런 면에서 우린 정말 닮은 사람들이에요.

인디아나 존스라는 이름의 기원이 유명한데 설명해달라
인디아나라는 이름은 사실 내가 키우던 개에게서 따 온 거 에요.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면 책상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개죠.  사실 그 개가 오리지널 우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우키 족을 칭함)에요. 내가 외출할 때면 나랑 차에 타서 같이 다니곤 했는데, 알래스칸 맬러뮤트 (썰매 개) 종이라서 정말 덩치가 컸거든요. 그래서 정말 우키가 나랑 같이 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쨌건 그 개 이름이 인디아나였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해리슨 포드는 어떤 의미의 배우인가
아마 관객들은 인디아나 존스의 어떤 영화를 떠 올리더라도 특유의 모자와 코트를 입고 있는 해리슨 포드가 완전히 풀 샷으로 연상될 거에요. 하지만 어떤 영화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죠. 그 풀 샷의 이미지가 어떤 시리즈에서 나온 건지 말이죠. 왜냐하면 해리슨은 인디아나 존스의 다른 모든 시리즈에서 항상 그렇게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이니까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선 어떤 스타일을 추구했는가
인디아나 존스는 B급 영화지만 스타일만큼은 확실히 A급이에요. 프로페셔널리즘의 최고의 경지가 만들어 낸 거죠.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완성도와 그 외 모든 게... 그 전에는 결코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그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전에 애정과 경외심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바로 이런 것들이 모두 “인디아나 존스”의 품질 보증서 같은 거죠.

“메리언 래번우드” 역을 맡은 카렌 알렌과의 작업은 어땠나
첫 번 째 시리즈에서 메리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였어요. 그녀는 용감무쌍하고 재미있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고, 독립심 강한 인물이죠. 유머 감각도 훌륭하구요. 근데 그게 바로 카렌이에요. 그리고 이번 속편에서 그녀를 다시 불러들인 건, 그 생동감 넘치고 독립적인 여성을 불러들인 건 우리한텐 정말 플러스가 됐어요. 그녀는 같이 있으면 좋고 강하고 인디아나에 대적할 수 있고, 또 그를 항상 제 자리에 돌려 놓을 수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들은 함께 해서 좋은 진짜 팀이에요. 그건 항상 유쾌하고 행복한 관계에요. 그리고 카렌은 정말 예전 그대로에요. 정말 어제 만난 사람처럼 그대로 더라구요. 예전 그대로의 유머 감각과 예전 그대로의 캐릭터에요. 그녀는 캐릭터 속으로 완전히 몰입했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영화 속 세트를 거의 실제 사이즈로 지었다고 들었다. 제작을 고집한 이유가 있나
이 영화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하고 멋진 셋트를 만들었어요. 나는 대규모의 셋트를 짓지 않고, 블루 스크린 앞에서 최소한의 셋트 외에는 전부 디지털 셋트로 처리한 “스타워즈”를 끝냈는데 그때 스티븐이 그러더군요.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구. 나는 말야, 진짜 셋트를 원해.” 그래서 뭐, 우린 그렇게 했어요.  

전세계에서 이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기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 관객들이 어떤 점을 주목해서 봐주길 바라나
나이든 관객층들은 정말 그 기대가 대단했죠. 어렸을 때 “인디아나 존스”에 열광했었던 세대니까요.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인디아나 존스”를 보여주러 극장에 가고 싶어했을 거구요. 왜냐하면 정말 설레고 재미있잖아요. 그 경험 자체도 그렇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10대와 젊은 관객들에게도 소구될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그들 또한 예전의 열광적인 현상을 다시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자료제공|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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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드니 라방에게 전주 영화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전주의 그 많은 음식 얘기는 쏙 빼놓고(사실 당연하죠, 뭘 알았겠습니까-_-) 벨라 타르의 회고전에 대한 언급을 했었죠.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고,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벨라 타르를 이야기 했습니다. 살아있는 벨라 타르가 전주 거리를 활보해서 실감이 덜하지만, 아무튼 생전에 회고전이 마련되는 거장 감독인 겁니다. 그의 작품세계의 유니크한 예술적 가치는 롱테이크에 취약해 어쩔 때는 기어이 3분 안에 잠들어버리는(한 5분 자고 일어나도 화면에 변화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에게도 와닿는 바입니다.

인터뷰 때는 그가 왜 거장인지, 포스로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는데요. 그에게는 어떤 질문을 해도 명확한 자기 '입장'이 답변으로 되돌아옵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은 이유를 또한 명확하게 덧붙입니다. 그리고, 영화로 이야기되어야 할 자신에 대해 말로 하는 것이 싫은 티를 과감하게 팍팍 냅니다-_ -.. 말하면서 자신이 웃고 싶은 대목에서는 웃고, 인상 쓰고 싶을 때에는 인상 쓰면서, 상대방도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몇몇 질문을 던졌고, 대답했지만, 기자를 일정 컨디션 하에서의 대화 상대가 아닌, 철저한 메신저로만 취급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의 수용방식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몇 년 간 인터뷰를 했지만, 감정 없는 문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흔치 않았습니다. 여느 배우들과는 다른 의미의 벽이 존재했습니다. 이제까지, 벨라 타르는 거장으로서의 자아를 그런 식으로 일궈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가 아침이었는데, 그 전날 공식석상에서 운영상의 미숙으로 심기가 불편했다고 하긴 하더군요. 인터뷰는 제 입장에서 다소 걸끄러웠으나, 결과적으로는 기사쓸 거리야 풍부했습니다. 문제는 사진이었죠. A컷이 나오긴 했는데, 다른 인터뷰가 200컷을 찍고 1컷을 고른다면, 벨라 타르는 20컷도 채 못 찍은 시점에서 촬영을 그만하자고 해서 그 중 A컷을 간신히 건진 거였습니다. 왜 "촬영은 이만 됐어, 그만 해"했을까요? 사진 찍히는 게 싫은 걸까요? 아니면 이미 A컷이 포토그래퍼의 카메라에 찍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거장'의 포스때문에 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촬영 중에 반동강을 내는 건 자신의 높은 위치를 지나치게 자각하고 못된 권한으로 써먹는, 자신의 예술을 인정해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부족한 태도였습니다. 이미 A컷이 나왔을 거라 생각했더라도, 그 판단은 포토그래퍼에게 맡기는 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의 겸손한 예의였을 겁니다. 포토그래퍼 또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 아닐까요. 물론 무비위크의 포토그래퍼는 파인아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벨라 타르만큼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벨라 타르라는 벽에 막혀 촬영을 스스로 끝내지 못하고 끝냄 당한 우리 포토그래퍼 김태선씨에게 미안함을, 더불어 전주영화제 기간 내내 좋은 사진을 고심한 노고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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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홍진 감독님과 잠깐 통화를 했습니다. 500만 돌파, 백상과 칸 소식에 두루두루 축하 인사를 하다 보니 "그런데 백상은 옷을 뭘 입고 가야 돼요? 아놔~ 어제 마신 술도 막 안 깨는데 어떡해~"(측근에 의하면 정우성이랑 술 드셨다는 소문이...ㅠ.ㅠ 부러워요) 하시기에 어른들이 주시는 상인데 턱시도나 정장 차려입으시는 게 어떨까 했더니 결국 "세탁소에 양복 맡기긴 했는데 그거 너무 구려~ 정우한테 '마의'나 하나 빌려 입어야겠다"하시더군요. 그렇게 얘기해놓고 결국 백상에 입고 오신 건 매일 쓰는 디젤 캡모자에 흰 셔츠, 청바지-_-;;;;;;
아무튼 백상 예술 대상에서 <추격자>가 신인감독상과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감독상, 작품상이나 각본상, 특히 남우주연상들을 '양보'해야했지만, 어쨌건 신인 감독의 영화라고 치면 대단한 추임새임은 틀림이 없죠. 게다가 <추격자>는 5월 중순에 칸도 갑니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으로 초청 받아서 가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가는 장편영화는 <놈놈놈> <도쿄!> 말고는 <추격자>뿐인 걸로 압니다.)
일개 신인 감독이었던 나홍진 감독이 무비위크와의 인터뷰 때 했던, 한예종에 들어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이전의 이야기들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갈 길을 찾기까지 폐인처럼 부유하며 자신을 소모하고 시간만 지냈던 날들의 아픔-_-;;이 전해졌던 얘깁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 받고 계신 때에 그때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니 살짝 먹먹해지기도 하네요. 제가 다 뿌듯한 지경입니다. 절대 쓰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이렇게 당당하신 나홍진 감독께 누가 될 얘기는 아니라 생각하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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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하십니다 감독님!!!



나홍진 감독이 하지 말라고 했던 얘기

고등학교 때요, 공예과를 왜 가셨어요?
공돌이.
미술하셨다고 나오던데?
미술 했죠. 어렸을 때부터 미술 시켜야 한다고 했어요. 집에서 하지 말라고. 하도 애가 돈 많이 들어가니까. 미술 해봐라 공부를 못 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미술 시키고.
돈이 많으시구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미술 하는데 돈 많이 안 들어요.
공부 잘 했을 것 같은데요? 아이큐 높을 것 같아요.
공부 못했어요. 뒤에서 꼴등하려고. 전교 꼴등 나냐 너냐 그랬어요.
뭐하고 노셨길 래 그렇게까지?
그냥. 뭘 놀아.
공부를 안 했음 놀기라도 해야죠.
한양대 들어갔더니 교수님이 뭐라고 그래. 한양대 공예과는요 빠다를 치고.
대학에서 맞는 거 말곤 다른 거 안 하셨어요? 공부? 술?
술 많이 마셨죠. 친구들하고 여행가고 낚시 다니고. 술은 매일 먹고 있어요.
술은 매일 마시라고 있는 거고.
그러다가 만화를 했어요. 만화를 좋아했죠.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냥 그리고 계셨어요?
글을 써야할 줄 알아야 하잖아요. 좋은 만화가 뭔지 어렸을 때 잘 몰랐어요. 왜 내가 쓴 글하고 차이가 날까? 왜 그럴까? 모르겠더라고요.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한계를 못 넘겠는 거예요. 짧은 글인데. 이 글에는 뭔가가 있어 뭔가가. 내 글엔 없는 거야. 왜 그러지, 그러다 끝났어요. 굉장히 궁금해 하는 부분이에요. 영원히 깨우치지 못한 상황에서. 인쇄 만화 잡지나 차리자 그러고. 아, 눈 오는 밤이었는데 못 참겠다. 머리 속에 동영상들이 지나다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어느 눈 오는 밤에 미안하다 나 안할 거야 그랬죠. 계속 걸어 다녔죠. CF 하면서 알아냈지. 아 이거구나.
뭔데요?
비밀이에요. 나도 먹고 살아야지.
뭔데요?
몰라요~ 암튼 CF를 하면서 그걸 알게 되니까 창작이란 게 재미있어 지는 거지. 일을 하다가 아닌 것 같아. 이런 얘기도 하면 안 돼. 과거 얘기하면 안 돼.
영화는 영상원가서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니에요. 2년에서 3년 작업실에서. 백수는 됐는데 영화하겠다고. 시나리오 쓰면 되겠지. 방안에 앉아서 시나리오 썼어요. 아름다운 동네 찾아서 찾아다닌다고, 근데 이거 아닌 것 같아. (웃음) 아버지가 한심했던지 너 계속 그렇게 살거냐고. 서른이었나 그쯤에. 내가 학교에 2005년 쯤 들어갔으니까. 니가 무슨 영화를 해 그러고. 너 이 새끼야 뭐하겠다는 거야. 학교갈 돈이 없어요. 돈 그거 빌려줄 테니까 어떻게 좀 해봐, 이 새끼야. 그러고.
한예종 학비가 싼가?
많이 안 비싸요.
잘 간거네요. 확 폈잖아.
그러니까. 들어간 과정도 웃긴 게 그 때 김성수 감독님이 너 이 새끼야 말도 안 되는 성적이었어. 얘가 진짜 점수가 어땠어? 이러니까. (웃음)
뽑은 이유 들었어요?
면접 때 성적도 안 좋은데. 면접하는데 재미있었어요. 김성수 감독님이랑 밖에서 조심하세요, 면도하고 오세요. (웃음) 뭐야 뭔데 그러는 거야. 누군지 알았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으니까. 어, 다들 뭐라고 그러는 거야. 박종오 감독님이 자꾸 공격을 하는 거야.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김성수 감독님한테 제일 감사해요.
이거 안 쓸래요.
쓰지 마세요 정말. 그분은 이런 새끼가 감독 되는 새끼에요 이러고. 다들 왜 이래 그건데.
뭐라고 했어요?
합격시켜주세요. 진짜 절실하다. 영화를 하려는 데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 진짜 다니고 싶다 그런 얘기. 그런데 너 나가 이러고. (웃음)
근데 합격.
그러니까. 영화 난 몰라. 찍으면 된다. 그냥 정말 좆 됐다. 미장센 영화제 나갔던. 그 영화가 35mm로 찍었는데 그게 4,500만원이 드는 거야. 미치는 거야 정말. 그 영화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구성한 영화라 미칠 것 같은 영화. 온 몸으로 입까지 4천 만 원의 고통이 가득 있어서 절대.
이경규 아저씨처럼.
그게 그 경험이 어마어마하죠. 보석 같은.
보고 싶다.
보고나면 저거 뭐. (웃음)
가지고 계세요?
가지고 있죠.
보내주세요. (웃음)
이현승 감독님께서 미쟝센 단편영화제도 너무 감사드리고. 저 멀찌 감치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계시더라고요. 시사회 보고 밥을 먹는데 얘길 들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저 상 주신 거고. 미쟝센 그게 투자사나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 모르잖아요.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람들은. 의심을 한다는 거죠. 수상할 때 관계됐던 박찬욱 김지운 임필성 감독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대요. 그 대가들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됐겠습니까. 투자자 제작사 고생했고, 엄청난 리스크가 있는 걸 감수하고 해주셨는데. 대가들의 한 마디로 가능했구나 하는 게 감사하고 고맙더라고요.

Posted by 미역별

<미안하다, 사랑한다><고맙습니다><상두야, 학교 가자>이경희 작가의 차기작인 <사계>는 이만저만이 아닌 예산이 투입되는, 소위 대작입니다.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와, 규모에 합당한 기대치에 대해 부담도 많으시겠지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배경이 모두 포괄된 드라마라고 들었습니다만, 그 장황한 배경도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일 뿐이겠죠. 마치 '영신이'라는 사람을 그리기 위해 미혼모나 소아 에이즈, 치매 노인 같은 장치를 두었던 것처럼요. 그 모든 장치가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주인공은 영신이었고요. 결국 이경희 작가가 <사계>를 통해 하고자 하는 얘기는 사람에 대한 게 아닐까 합니다. 이경희 작가는,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 얘기'가 아니고서는 써서는 안 되고, 써지지도 않는 작가라는 인상을, 인터뷰하면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당시 그런 드라마를 볼 수 있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당시에 마지막회를 보고 난 후 '고맙습니다'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세상을 그렇게 까칠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 아파도 누군가 보듬어주면 아프지 않다는 것, 잊고 살던 많은 것들이 마음에 되살아 났으니까요.
인터뷰에서의 작가님 말씀대로 작가의 마음은 드라마에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인지, 드라마에서 느꼈던 포근한 위안이 작가님에게서도 느껴지더군요. 작가님을 만났던 두 시간 동안, 작가님의 드라마 한 편을 다 본 것 같은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70분짜리 포만감이 아닌, 24부작짜리 포만감을요. 어디까지나 인터뷰를 한 것이지 개인적인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도 '고마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작가님 말씀 하나하나에서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더군요. 이야기만으로 남으로 하여금 '고맙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흔치 않죠. 연이 닿는다면 쭉 인연을 잇고 싶은 인터뷰이였습니다.
<온에어>에서 보여지는 작가와 배우 간의 불화가 어쩌면 대부분의 현실일텐데도, 작가님은 함께 작업했던 배우 하나하나를 보듬고 계셨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대본 써서 넘기면 그만일지도 모르는데, 작가님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배우들과 교감을 이룬 후 캐릭터를 키워 나갑니다. 그래서 정지훈 원빈 임수정 소지섭 등등 그 많은 배우에 대해 좋은 말 하나라도 더 해주시려 노력하는 모습, 참 좋았습니다. 특히 <스피드 레이서>로 관심이 높아지는 정지훈군에 대해서는 요즘도 베를린으로 통화를 몇 번 했는데 매일 새벽 6시부터 밤까지 트레이닝 하느라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더라면서 그에 대한 칭찬을 한아름 하셨더랬죠. 지훈군과 꼭 다시 한 번 드라마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셨었다던데, 두 분 모두 약속을 헛으로 하지 않을 분들이니 우리는 그저 그 약속이 빨리 지켜지기만 바라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완소하는;; 연기를 발로 하지 않는 임수정씨와도 작업을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하시면 좋겠단 바램이구요.
아무튼, 이경희 작가의 <사계>가 너무 기다려집니다. 혹은, 이경희 작가님의 따뜻한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고 싶습니다.

Posted by 미역별

지면이 모자라 꾸역꾸역 넣고도 넘쳐 버린 게 많아 안타까웠던 기사..
게재된 것보다 조금 더 생생한 전문이라는 겁니다 ㅋ


ALCOHOL TALK

<경축! 우리 사랑> 오점균 감독 & 이형승 대표 & 배우 김영민
Cheers! 우리네 사랑을 위해
<경축! 우리 사랑>을 재미있게 본 <무비위크>는 영화의 원안을 내고 연출한 오점균 감독, 제작자인 동시에 현장에서는 PD 역할까지 겸업한 아이비픽쳐스의 이형승 대표, 스물한 살 터울 아줌마와 열애에 빠지는 총각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배우 김영민을 만났다. 술 한 잔 곁들여 얘기를 하다 보니 <경축! 우리 사랑> 상영관이 그러했듯 인터뷰 자리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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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
삶을 관통하는 유머가 있는 영화 <경축! 우리 사랑>

<경축! 우리 사랑>은 나이 쉰에 사위가 될 뻔 했던 서른 살 총각과 얼싸안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아줌마를 둘러싼 포복절도 코미디다. 불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룸에 있어 이렇게 유쾌하고 발랄, 유머러스한 영화는 흔치 않았다. 아나키적으로 부담스러운 인생의 한 조각을 관객의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내고, 순발력 있게 유머로 포장한 후 다시 관객의 깊은 곳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심각한 드라마가 흘러도 무심한 듯한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즐거운 영화, <경축! 우리 사랑>의 오점균 감독, 이형승 대표, 김영민과 가볍게 술 한 잔 하며 얘기하자며 시작했던 게 어느새 새벽 두 시를 지나 다섯 시로 이어진 자리였으니 오죽 즐거운 영화 얘기가 많이 오고 갔으랴만, 지면 관계상 인터뷰이들과 인터뷰어들이 만취 상태로 빠지기 직전까지만 소개한다. 참고로 모든 문답에 [(웃음)], [ㅋㅋㅋ] 혹은 [으하하하] 등의 지문이 너무 반복되어 차라리 생략했다.

PM 8:58 STAGE 1
디테일이 살아 움직이는 에피소드
{맥주 마셨는데 왜 술이 오르지?}

아니, 근데 김영민 씨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김영민(이하 영민) 몇으로 보이시는데요?
저는 스물 셋 정도로 봤고, 남은경 기자는 30 전후로 봤대요.
영민 음… 나이 알려지면 손해 보는데… 서른여덟이예요. 71년생.
에그머니나! 정말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대표님, 이 놀라운 동안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형승 대표(이하 형승) 저랑 영민 씨랑 나이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요. 저야 뭐 그냥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죠. 캐스팅할 때 마음에 들어서 일단 {같이 하자} 하고 나서 프로필을 받아 보니 71년생인 거죠.
영화 찍으면서 어떠셨어요?
오점균(이하 점균) 갈등도 좀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 하나가 다 재미있었죠. 그런데 저예산영화이다 보니 러닝타임이 100분인데 촬영 횟수가 23회밖에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싸울 일이 있어도 싸울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가고 그러는 거죠.
형승 저는 좀 아쉬운 게 있었어요. 현장 로케이션 장소 중에 마지막까지 축제 신이 아쉽더라고요. 거기가 대학로 근처 산자락 동네였는데, 워낙 방송국 같은 곳에서 많이 촬영하러 오는 곳이라 주민들이 경험이 많아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할 건지 생긴 것만 봐도 아나 봐. 굉장히 제제가 심해서 감독님께서 하고 싶으셨던 걸 많이 못 건졌어요.
점균 제작부에서 고생을 엄청 많이 했죠. 저는 그 동네를 보자마자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 했어요. 고집 정도가 아니라 거의 드러눕다시피 했어요. 동네 섭외가 안 되니까 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술수를 부리더라고. 전주도 데려가 보고, 다른 사람 보내서 괜히 전주가 촬영 여건이 좋다는 얘기 시키고. 촬영감독까지 나서서 전주랑 이 동네랑 똑같으니까 전주 가자,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 왜냐면 가옥 구조가 틀리거든요. 중북방식은 집이 ㄷ자형인데 전주는 다 일자형이에요. 지붕모양도 각진 게 아니라 반듯하니 표시가 팍 나요. 좁은 땅에서 팍팍하지만 오밀조밀하게 사는 서울 사람들의 공기가 표현돼야 하는데, 전주는 한가하고 전원적인 느낌이더라고요.
형승 저도 설득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싶어요. 그때는 뭐 시기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장마도 다가오는 통에 감독님께서 빨리 결정을 해주셨으면 해서 재촉했던 거예요. 그림이 나온 걸 보니까 소시민적이고 억척스러운 봉순 씨의 동네로는 역시 감독님 고집이 맞는 결과더라고요. 전주에 갔으면 지대가 낮아서 다른 그림이 나왔을 거예요.
그래도 PD 입장에서는 속 많이 상하셨겠어요.
형승 작품에 대한 욕심은 저도 마찬가지니까 괜찮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촬영하면서 힘든 거 없었나요?
영민 재밌었어요. 김해숙 선생님도 워낙 잘 해주시고.
에이, 감독님 때문에 힘들었죠?
점균 그렇지, 그랬지? 솔직히 얘기해.
오점균 감독님은 디테일 신경 많이 쓰시고 섬세하시고, 까다로우신데 고통스럽지 않았나요?
영민 에이, 고통스러울 것까지야.
점균 그냥 좀 [짜아증] 났던 거지?
영민 아니에요~. 그런데 한 테이크가 길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여러 번 갔다는 게 아니라 한 테이크를 갈 때마다 길게 지켜보시면서 자연스러운 게 충분히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건 있더라고요.
감독님 작품은 워낙에 생활연기가 아니고서야 안 될 것 같아요.
점균 내 영화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꼭 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요. 제 생각 속 그림이나,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과 배우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니까 그런 얘길 할 수 있는 걸 거예요. 특히나 <경축! 우리 사랑> 같은 경우는 애초에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라 관객들에게 그 부분을 설득해야 해요. 그게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사실성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만듦새도 꼼꼼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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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9:23 STAGE 2
믿어서 이루어진 이야기

{여기 소주 안 팔아요? 나가서 사와도 돼요?}

<경축! 우리 사랑>은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래~} 싶은 얘기예요. 시나리오의 원안은 누가 잡으셨나요?
점균 전체적인 기본 컨셉트는 제가 잡았어요. 시나리오는 박윤 작가가 썼죠. 퉁퉁하고, 전혀 사랑할 것 같지 않은 아줌마가 사랑을 하게 되고, 잊고 살던 [사랑의 영역]에 들어가는 얘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당시에 불륜 이야기가 많았으니까 우리 영화는 똑같은 불륜 이야기가 아닌, 밝고 경쾌하고 즐겁고 예쁜 얘기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결단 내리기 힘든 시나리오 아니었을까요?
형승 오점균 감독님은 제가 스무 살 때 만난 오래된 선배님이에요. 제가 군대 가기 전, 감독님께서 홍대 미대 대학원 재학 중일 때 독립영화협의회에서 인연을 맺었죠. 그때 제가 좋아하던 가수 송창식 씨를 닮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선배였어요.
점균 뭐? 송창식을 좋아했어?
형승 그러고 그 후에 영화계에 발을 담그게 됐는데 부산국제영화제 한 리셉션장에서 감독님을 만나 뵙고 {영화사를 할 예정이니까 좋은 거 준비하고 계시면 같이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오 감독님께서 가져온 시나리오가 <경축! 우리 사랑>이었어요. 제 취향과는 무관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에 끌리더라고요. 독특한 영화로 자리를 잡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점균 감독님이 <생산적 활동> 등에서 보여주셨던 특유의 유머를 믿었으니 더욱 쉽게 결정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시작을 했는데 한 번 엎어졌어요. 2005년 영화진흥위원회 HD 지원 선정이 됐는데 곧 1순위로 밀리더라고요. 이유인즉슨 미풍양속을 해친다나?
어찌나!
형승 그런데 2006년에 코미디 부분을 보강하고 다시 작품을 냈는데 1년 사이에 시대가 변하더라고요.
플롯만 봤을 때는 매력적이더라도 윤리적으로 다소 황당무계했는데, 영화로 완성된 걸 보니 그 이상의 매력이 보였어요.
점균 운이 좋았던 거죠. 김해숙 선생님, 기주봉 선생님, 그리고 다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도 다 경험도 많고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인데 시나리오 보시고 흔쾌히 해주시겠다 해서 고마웠어요. 여러 가지로 고마운 영화예요. 촬영하면서 날씨까지 도왔어요. 봄에 찍었는데 어떻게 비가 한 번도 안 와?
형승 축복이었죠. 쉬는 날만 비 오고, 우리 촬영 날은 비가 어떻게 하루도 안 왔어요.
김영민 씨는 대학로에서 확실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배우로서 결단 내리기 힘들지 않으셨나요?
영민 아뇨? 전혀. 오히려 영화가 처음에 덜컥 하고, 다시 제작된다고 들었을 때 애착이 강하게 생겼어요. 더 잘 만들자, 더 잘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로 배우가 아니었다면 했을까요? [아줌마랑 사귀는 역이래~ 싫다~] 하는 거부감이 없었을까요?
영민 안 그랬을 것 같아요.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축! 우리 사랑>의 파격은 감각적인 파격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파격이잖아요.
엄마가 제 남친과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각적인 파격이던데요….
형승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댓글 보신 거 있어요?
점균 오, 그래, 재밌는 거 하나 있더라?
형승 네, 그거. 영화평에 {요즘 여자친구 엄마가 이성으로 느껴져}라고 달려 있더라고요.
점균 그러면서 별 세 개 줬더라?
형승 그 기분이 싫은 거지. 자기도 그런 자기가 싫은 거야!

PM 10:34 STAGE 3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연

{그럼 또 내가 한 잔 말아드려야죠!}


구상과 봉순 아줌마의 로맨스는 처음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가 중반부에 감정 흐름이 딱 바뀌면서 급물살을 타죠. 봉순 씨가 {난 그냥 니가 좋아…}라는 대사가 분수령이었어요.
영민 사랑이라는 게 원래 단계를 밟는 게 아닐 거예요. 어느 순간 딱 사랑하게 되는 거죠. <경축! 우리 사랑>은 나이 차이가 아닌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전체의 상황에 몸을 맡기고, 가장 중요한 자연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대사가 정말 현실적이에요.
그 전까지 주저하던 구상의 마음이 빨리도 무장해제 되더라고요.
점균 그 전에 나름대로 봉순 씨뿐 아니라 구상의 마음도 단계가 오르고 있었어요. 김해숙 선생님도 걱정하셨던 부분인데, 이 로맨스는 단계를 생략하면 추하게 보일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우리의 의도가 어긋나잖아요. 그래서 아줌마가 힘들게 소처럼 살고, 딸이 구상을 버리고 가니까 미안해서 반찬도 얹어 주고, 휴지도 건네주는 등 자연스러운 단계를 중요하게 보여줬어요. 그때 배우의 표정도 정말 중요했어요. 놀라움, 안타까움, 연민이 교차하는 표정.
그 장면에서의 봉순 씨는 마치 구상의 엄마 같았어요.
점균 그 감정을 세게 표현하면 안됐으니까요. 아줌마가 먼저 좋아하지 않았어요. 구상이 먼저 스킨십을 하잖아요.
아니, 그건 술김에 실수한 거잖아요.
형승 지금 이거 반란이에요? 맞죠?
영민 그…그렇죠.
점균 봉순 씨는 구상에게 미안한 게 쌓이니 어느 순간 경계도 알 수 없게 확 다른 영역에 가는 거죠. 그래서 둘이….
그러게요, 그놈의 술이 대체 뭔지 말이에요. 그런데 <단풍잎>과 <생산적 활동>을 찾아 봤는데 둘을 섞으니까 <경축! 우리 사랑>이 되더라고요. 의도하신 건가요?
어? 그러네? 진짜 그렇다. 나이도 그렇고 스토리나 이런 것도 그렇고.
<단풍잎>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하는 대사 중에 {사람이 늙을수록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까짓 남의 눈이야 무시해버립시다}라는 대사가 있었잖아요. <생산적 활동>도 마찬가지로 섭리대로 하는 게 좋다는 얘기이고요. <경축! 우리 사랑>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요.
형승 아하, <단풍잎>의 자연친화적인 메시지, 그리고 유머도 비슷해요. 함부로 웃어버릴 수 없는데 결국은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 웃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들이 비슷해요. <생산적 활동>도 그렇고요.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경축! 우리 사랑>은 불가능한 일 같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이나 세상 어디에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감독님 단편들 보고 어떠셨어요?
영민 잘 모르지만 숨겨져 있는 것을 끌어내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분명히 있는데 표현하지 못 하고 감춰져 있는 감정.
그걸 꺼내 보이시니까 웃으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거겠죠. 똑같이 일상적이지만 홍상수 감독의 일상성과는 또 다른 일상성이에요.
점균 음… 일견의 자연스러움이나 일상적, 생활적인 부분이 공통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는 시선이나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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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1:43 STAGE 4
불황을 기회로 양분 삼은 대안적 대중영화

{이딴아요~ 어디 가서 딱 한 좐만 더 하죠~!}

제가 제일 좋았던 장면은 다리를 건너서 둥글게 돌아서 내려가는 길이었어요.
점균 나도 그 길이 탐나서 꼭 그 동네에서 해야겠다고 한 것도 있었어요. 축대의 벽이 굉장히 높아서 성 같아요. 성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있는 것 같았죠. 그 길도 예쁘고요.
거길 부감으로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점균 배경으로 고층건물들 보이고, 카메라 돌리면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 나오고… 저도 좋았어요.
어떤 장면들이 제일 좋으셨어요?
형승 구상이 아줌마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모든 걸 다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 다음 샷이 바로 기주봉 선생님과 혜나 씨가 어처구니없이 텅 빈 표정을 하고 보고 있는 거잖아요. 이상한 감정이 포착이 되니까 그 장면은 또 제일 재미있어요.
감독님은요?
점균 나는 거기 나오는 곤충들. 특히 똥파리, 너무 좋아. 너무 예뻐, 너무 귀여워. 너무 살아있는 느낌.
형승 그 인서트 컷에서 저와 감독님 관점이 너무 달랐어요. 주변에 의견도 많이 묻고, 비호감인 건 가능하면 빼자며 감독님과 회의를 여러 번 심각하게 했어요. 하지만 저예산이니까 좀 더 작가의 폭을 넓게 해보자, 그 안에서 충분히 작가의 의도가 보여야 관객들이 느끼고 비전도 갖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예산의 영화니까 충분히 해봄직한 시도다, 했죠.
감독님의 고집이 이겼군요.
형승 원래 고양이 등등, 되게 많았는데 그나마 합의 하에 몇 마리 뺀 거예요. 동물, 곤충, 채소, 흙, 비, 하늘을 좋아하세요. 원형이 그러신 것 같아요. <비가 내린다>라는 작품도 그랬고.
자연은 좋은 거지만 똥파리가 예쁜 건 충격이군요.
점균 그 색깔은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색이에요. 푸르스름하면서 윤기가 나고, 녹색 빛이 나는데, 얘들은 또 움직이는 게 지그재그로 활발하게 움직여요
정신머리가 없죠.
점균 여러 마리가 움직이는 장면이 너무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아요. 살아있다는 게 좋아. 미추에 대한 관념도 성이나 애정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통하는 게 있어요. 봉순 씨가 똥파리라는 게 아니라, 아줌마의 사랑이 자연의 생동감에 맞닿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똥파리 좋았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그래서 되게 기분 좋았다고.
형승 감독님,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영민 저는 그 인서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던데요. 의미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럼 김영민 씨도 그 장면이 가장 좋으셨나봐요?
영민 저는 배우니까, 상대 배우와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신이 좋았어요. 아까 말씀하신 눈물 닦아 주는 신. 쉽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던데, 선생님과 영향을 계속 주고받고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걸 느낀 게 좋았어요.
자극적이었겠어요.
영민 때로는 그런 때에 섹스보다 더 큰 쾌락이 있어요. 쉽지 않은 건데 이번에 느꼈어요. 굉장히 유명한 모 배우도 평생 영화를 찍으면서 단 몇 번밖에 느끼지 못 했다던데 말이에요. 김해숙 선생님 덕분이죠. 연기에 대한 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계신 분 같아요.
형승 저는 주연, 조연, 단역 모두 200퍼센트 만족이에요. 동네 분들로 나오시는 분들도 모두 대학로 최고의 연극 베테랑들이시고, 기주봉 선생님, 김해숙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완벽했어요. 기주봉 선생님은 조폭, 국방부장관, 강력계 형사 과장 하던 분이잖아요. 그 마초 이미지가 한 방에 무너지죠. 와이프를 되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워요. 저예산영화는 캐스팅이 힘들어서 호흡이 끊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경축! 우리 사랑>은 그런 게 없어요.
제작비가 얼마였는데 계속 저예산이라고 하세요?
형승 7억이요. 원래 영진위 HD 지원비가 총예산 10억으로 제한이 돼있어서 맞췄어요. 거기서 5억 원을 지원해주니까 일단 시작을 했는데 나머지 2억과 마케팅 비용 3억 원을 끌어와야 하더라고요. 어떻게 KTB 네트워크 다양성 펀드에서 지원해 주셔서 날개를 달았어요.
오히려 영화계 불황은 안 겪는 건가요?
형승 기회였어요. 재작년 같았으면 눈에도 안 띌 작은 영화였죠. 그런데 이제는 큰 작품들이 없으니까 <경축! 우리 사랑> 같은 양질의 콘텐츠가 눈에 띌 기회를 갖는 거죠. <경축! 우리 사랑>은 잘 돼야 돼요. 그래야 이런 영화들이 계속 나오죠.
시사하고 반응이 굉장히 좋죠?
형승 기자 시사는 물론, 일반 시사 때도 호평을 받았고요. VIP 시사 때 <박쥐>팀이 다 오셨었어요. 박찬욱 감독님, 송강호 선배, 신하균 씨 등. 그분들이 {깔깔깔} 박장대소를 하며 보시더라고요. 송강호 선배는 심지어 {이 영화 송강호가 재미있다고 했다고 홍보하라} 하셨어요.
<박쥐>도 웃었군요.
형승 네, 반응이 전체적으로 코미디죠. 설문 결과를 봐도 90퍼센트 이상이 그래요.
점균 웃기긴 웃기죠?
밥정, 몸정의 공포를 이해해야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형승 그게 또 예상 밖이더라고요. 저희도 원래 스폰지 쪽이랑 마케팅 회의 하면서 메인 타깃을 40대로 잡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40대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아저씨가 불쌍한, 가정이 파탄 나는 [반란] 영화더라고요. 오히려 20대 중반 이후의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왔고, 20대 초반의 지지도도 높아요.
점균 요즘 젊은 분들은 이런 상상력 코드에 더 익숙해서인지 잘 받아들여요. 나이 드신 분들 중 자유로운 바람을 가진 분들은 재미있게 보시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 거예요. 쉽지 않게 살아가는, 무엇이든 다 유지해야만 살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이후로는 가정,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냉 사케, 친구, 빨간 스타킹, 동안 되는 법 등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가 오갔던 관계로 후략합니다.

진행 이해림 남은경 기자 | 글 이해림 기자 | 사진 김태선

Posted by 미역별

블로그에 어떤 글을 올리면 좋을까 이런저런 고민을하다가 무비위크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좀 주절주절 늘어놓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지면엔 쓰지 못하는 개인적인 감상들이 있거든요. 가끔 변태처럼(?) 녹취한 파일을 들어볼 때가 있는데 뭐랄까 시간을 머금은 오묘한 목소리에 때때로 묵직한 힘을 얻곤 한답니다. 암튼, 앞으로 한 명 한 명 풀어나갈 짧은 이야기의 첫번째 손님은 바로 배우 조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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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신념, 고집이 공존하는 강인한 얼굴
그리고 이따금씩 전해오는 유쾌한 웃음



배우 조재현과의 만남은 무비위크 304호 위클리이슈 연극열전2 인터뷰를 위해서였습니다. 연극열전은 저에게 연극의 맛을 알려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던지라 개인적인 관심과 애착이 있었답니다. 왜 다시 안 할까 하는 의심과 그리움이 마구 밀려올 즈음에 <연극열전2-조재현 프로그래머되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죠. 제작발표회 날, 오랜만에 동숭아트센터에 북적북적 대학로에서 내노라하는 연출, 작가, 배우들이 총집합했을 때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설렘을 느끼게해준 조재현 프로그래머를 만나야겠다 주먹을 불끈(!)쥐고 인터뷰를 요청했고, 약간의 기싸움 후에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는 연극열전2에 대한 애정을 200% 높여놓았지요.

배우가 아닌 연극열전2 프로그래머로서의 조재현은 연극에 대한 열정과 신념, 고집이 공존하는 강인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전해오는 유쾌한 웃음은 인터뷰어를 마구 사로잡는 무한매력이었죠. 인터뷰 시간 내내 연극을 향한 사랑, 그리고 연극열전2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은 한정된 지면에 저의 짧은 필력으로 소화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배우임에 틀림없습니다.

며칠 전 무릎팍도사 조재현 편을 봤습니다. 옆에서 어머니는 저 사람이 원래 저렇게 웃겼었구나 하시며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셨지만, 저는 무릎팍도사를 보면서 그동안 제가 바라본 배우 조재현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설렘과 벅찬 의지로 사회를 보던 프로그래머로서의 그를, 인터뷰 내내 연극에 대한 열정을 토로하던 배우로서의 그를, <뉴하트> 촬영 중간 밥 먹을 시간을 포기하고 달려와 작품을 홍보하는 든든한 연극열전2 수장으로서의 그를, 그 모든 조재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속에 몰래 품어 놓은 열정이란 이름을 되새기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들이 찾지 않으면 그 무대는 빛을 잃고맙니다. 단순히 한 번의 빛을 잃는 문제에서 끝날리 없습니다. 빛을 잃은 무대는 의욕을 잃고 열정을 잃고 결국엔 꿈을 잃고 맙니다. 한 번 잃어버린 꿈은 금세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배우의 삶 또한 그 무대 위에 발을 딛는 동안은 무대와 마찬가지란 생각을 합니다.

제가 만난 조재현은 꿈을 품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 <뉴 하트> 촬영이 끝난 그에게 봄 계획을 물었습니다. "개인적인 계획은 일절 없다. 무조건 연극열전에 올인이다. 밥도 대학로에서 먹고 술도 대학로에서 마시고 잠도 대학로에서 자겠다."는 그는 아마도 지금 가장 멋진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리고 그 멋진 꿈은 가까운 시일 내에 대학로에서 슬금슬금 실체를 나타내지 않을까 싶네요.



■ 관련 인터뷰 무비위크 304호 위클리이슈 (사진 고윤지)

Posted by har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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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토요일에 나오는 <무비위크> 커버는 <스피드 레이서>의 정지훈군입니다. 커스튬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긴 했는데, 공식 루트가 아니라 태국 매체에서 나온 걸 올린 것이더군요. 그러므로 <스피드 레이서> 커스튬 샷 공개는 <무비위크>가 처음입니다!(무조건 우긴다는)

문제는 정지훈군의 스케줄이었습니다. 지금 한창 베를린에서 <닌자 어쌔신> 촬영을 위해 하드 트레이닝 중이니, 한국에 모셔올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메일 인터뷰 제안을 했습니다. 좀 얄미운 점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할리우드 스타가 되버린 그는 스케줄이 너무 복잡해서 <스피드 레이서> 홍보도 하루 '내한'으로 마칠 예정입니다. 베를린에서 또 바로 홍콩으로 넘어가봐야 한다네요. <무비위크>가 커버 사진을 몇 시간을 들여 공들여 찍는데 정지훈군의 경우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안은 여느 할리우드 스타처럼 영화 홍보를 위해 제작사에서 찍어둔 사진들이었어요. 아니, 한국 매체가, 한국 스타를 취재할 수가 없다니요! 아, 그는 이제 정녕 할리우드 스타인 건가요!!!
아무튼 그래서 메일 인터뷰를 위해 지난 주말에 컴퓨터 앞에 앉아, 미처 술이 안 깬 머리를 굴리며 질문을 만들었어요. 바쁜 그를 생각해 몇 개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계속 궁금한 게 생기는 겁니다. 하다 보니 30개 정도 되는 질문 목록이 만들어졌어요. 결국 '한 번 당해보셔!'라는 몸쓸 심리로 킥킥대며 메일을 보냈죠.(직접은 아니고 홍보팀을 통해서 갔어요 ㅠ_ㅠ) 그런데 정말 바쁜 모양인지 답장이 안 오더라고요. 거의 마감 직전에 그의 메일이 도착했어요. '별 거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었는데. 아, 이럴수가! 정말 그 모든 질문에 꼼꼼하게 답을 해준 게 아니겠습니까!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성실함의 증거물이었던 거죠. 부지런하다는 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그냥 소문이 아니라는 걸 체험하고 말았어요.

말이 아닌 글로 푼 것이라, 현장의 재미는 덜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직설적으로 홍보 마인드를 내세우지 않고 대화를 나누듯 대답을 해준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긴 대답을 예상치 못하고 지면을 적게 잡아버리는 바람에 질문 몇 개는 부득이하게 빼야만 했어요. 그래도 글씨체 작게 해 알차게 넣었답니다.

정지훈군이 오랜만에 들려준 그의 소식이 여러 독자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길 빕니다.
나중에 '내한'하면 꼭 만납시다요.



Posted by lalala ja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