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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호로 한주 건너 뛰고 내일 발행되는 <무비위크> 416호입니다.

- <평행이론>으로 돌아온 입담남 지진희의 커버 스토리. <동이> 관련 이야기도!
- <평행이론> 영화를 미리 포는 스틸 코멘터리!
- <러블리 본즈>의 천재소녀 시얼샤 로넌 인터뷰!
- <클로이>의 두 여인 줄리안 무어와 아만다 사이프리드 인터뷰!
- 빈스 본이 웃겨주는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 웃긴 뒷이야기들!
- <채식주의자> 원작자인 한강 작가와 감독의 대화!
- 4집 앨범 <레 미제라블>로 화제가 됐던 루시드 폴 심층 인터뷰!
- 연극 <낮잠>에 도전한 허진호 감독과 김창완 인터뷰!

에 또,
- 모처럼 같이 돌아온 왕년의 오빠들. 조지 클루니, 조니 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이산 호크 이야기도 특집으로 준비!
- 올해 꽃 챙겨봐야할 미드 라인업!

등 알찬 기사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답니다. 겟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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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lala janis

본지에서 말씀드렸던 노희경 작가와 김태균 감독의 대화 녹취록 전문입니다.
사실 원고를 쓰던 화요일까지만 해도 기사 형태로 풀어서 올리려고 했으나,
정리할 틈 없이 어느새 발행일인 금요일이 되어버렸고, 독자와의 약속에 늦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절반만 약속을 지키게 돼서 죄송한 마음을 보태며...

구어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 사실 읽으시기엔 좀 힘든 글이 될텐데요...
두 분의 화법이나 성정을 알기에는 기자에 의해 가공된 글보다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녹취록과 기사를 세세히 비교해보시다 보면
'기자란 놈들은 이렇게까지 남이 한 말을 바꾸는 거였냐!!'라고 생각하실지도?.?
어찌 보면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프로세스이기도 한데,
말을 바꾸고자 정리하는 게 아니라 읽기 쉽도록 정리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실 거죠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희경 작가, 김태균 감독. photo by 안주영

노 영화 보고 어떻게 보면 울지도 못하겠고 막 목이 계속 아팠어요. 감독님께서도 말하지만 불편하잖아요 끊임없이 저걸 만든 사람은 무슨 의도로 저 불편한 영화에 마음을 냈을까 저렇게까지.
김 제일 큰 대답은 하느님이예요 사실. 한 5년 크리찬됐는데 10년 전에 제 자신이 좋지않은 후지다는 건 알았죠. 꽃제비가 국수먹는 걸 다큐에서 보다가 너무 가슴아팠어요 아프리카 난민도 아니고 바로 저 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도덕적 윤리적으로 벗어날 길이 없었어요 그 전에도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싫고 힘들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감정이 체한 것처럼 쭉 있었어요 4년 전 쯤에 누군가 내게 이런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래서 이런 영화를 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노 왜 안된다고 했어요
김 대한민국에서 투자가 안된다고 안될 일이라고 했어요 미국에서 영화하는 친군데 이런 걸 영화 만들어야 한다 알려야 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보고 실상에 충격을 받은 거에요 자기가 프로듀서한다 했는데 한국에서 투자 안된다 정치적으로 너무 복잡해 처음에 거절을 했는데 끈질기게 하자 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미국에 있고 모르니까 내가 작가 찾아서 스터디해서 영화가 될 출발지점까지 만들어줄게 감독 컨택하고 그것도 심지어 내가 감독 리스트 줄게 도와주기 시작한 거에요 친한 후배니까. 그랬는데 한 6개월 정도 스터디하고 사람들 만나고 준비하는데 계속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거에요 사람 만날 때마다 그러고 나서도 영화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만드는 게 불가능해보였으니까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내 생각에는 이걸 세상에 내놔봐야 투자사를 만나봐야 내가 바보 소리 들을 것 같았어요 내가 20년간 기획 제작 연출 다 했고 너무 잘 아는데 돈 댈 사람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내가 다른 거 찍어서 돈 많이 벌면 작은 영화로 만들자 했는데 덜컹 투자가 돼버린 거지. 도덕적으로 이 영화를 준비했지만 놀려고 던진 거에요. 안 하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벤티지에 시나리오를 준 거지. 묵은 게 하나 있는데 지금 풀지 못한 게. 너랑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면 이걸 놔야 한다. 니가 안 한다고 하면 고생한 사람들이 있지만 놔야 한다. 덜컹 하자고 하는. 그래서 참 이건 운명이다, 해야 하는 거다. 했지. 나도 엄두가 안 났지. 세트 만들 생각하면 엄두가 나나. 미술 쪽이 준비도 많이 해 왔지만 중국 촬영도 있잖아. 중국은 촬영하기 어려워요. 정치적으로. 돈은 모여졌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제일 어려웠어요. 해야되는가.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뚫고 나가자. 40억이라는 돈이 사실은 좀 모자라요. 세트 만들고 3개국 돌아다녀야 하는데 모잘라죠. 투자사는 40억 안에 만들면 오케이다. 사실은 벤티지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투자 메이드시키기가. 하자고는 했는데 뒷걸음질치고 싶지. 노 왜 안 물렀어요
김 그때만해도 씩씩할때니까. 젊으니까 용기있는 30대 중바 젊은이들이니까 패기도 있고 밀어붙이는 거지. 이런 말도 하더라고. 오케이하고 돌아서서부터 후회했다고.
노 그럤을 것 같아요
김 최근까지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투자가 완벽히 다 이뤄지지 않아서.
노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양심의 문제가 딱 걸렸었다고
김 체한 것 같았어요 아주 오랫동안. 나도 외면하고 싶고 동영상 수기를 보고 싶다가 불가능해보였으니까. 왜냐면 그렇잖아요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탈북자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데 투자자는 당연히 관심없고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정말 독립영화로 얘기 하나 하는 걸로 할 수는 있겠지만 상업시장에서 대중영화로 완성되기는 좀 무리하다. 물론 아주 재미난 액션물이나 첩보물 속 안에서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건 아니었지만.
노 저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된장을 푼다 약을 푼다고 하는 얘기도 하는데 그 유혹을 내려놓기 되게 힘들잖아요
김 그렇죠
노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이댄거야
김 이런 거였어요 처음에 저도 많이 했으니까 아이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면 당연히 관객도 편할 거고 흥행도 더 될 것 같다 그 엔딩이 분명히 더 편할거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나랑 같이 못을 박았어요. 그 친구도 상업영화를 하는 친구니까. 우리가 끝까지 유혹이 있을텐데 그러지 말자 비겁하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그 비슷한 주인공 유상준 다큐멘터리 본적 있어요 아이랑. 이거보다 더 슬퍼요. 거기선 아이랑 핸드폰이 계속 통화가 됐어요. 갖고 있었던 거지. 밤에 사막에서 총이 발사되고 넘다가 대열이 흩어진 거야 잘못 넘었는데 그게 군부대로 가는 철조망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몽골군이 쏜 거야
노 그런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김 그걸 나중에 아버지가 구술하는 게 있었죠. 이 아이가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아버지 내가 여긴지 모르곘어요 아버지는 서울에서 그 핸드폰을 듣고 있었어 핸드폰이 끊어지고 몽골경비대에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되고 묻어준 거야 유상준씨가 있어요 그분은 탈북자를 도우려고 중국에 갔다가 잡혔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워해요 얘기도 하기 힘들어하고 극복이 안된 거죠 자식을 묻었는데 극복이 되겠어요 너무 슬픈 사연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해서 얘기가 시작이 됐는데 해피엔딩의 유혹은 계속 있겠지만 해피엔딩은 만들 수 없다 너무 비극적이라서 조금만 극화를 올려도 너무 극적이 돼버리니까 그건 아니었음 좋겠다
노 영화 보면서 그랬죠 집에 와서도 캐릭터들이 생각이 나는 거에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어요 ??????? 타는데 눈빛 같은 것. ??보면서 느꼈던 참담함에 버금간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시체더미 속에 있는 건데 한나라가 다 거지같았어 그 불편한 감정을 다독이는 방법은 단 하나야 신파지. 그래야 다독여지는데 신파라고 얘기를 해도 사람이 이 지경이 된 것을 갖고 과연 신파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자꾸 스스로 질문이 되는 거야.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감정이 쿨하고 세련되고 모던한 걸 저도 드라마 속에서 계속 고민되는 게 그런 것들인데 지금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김 저도 궁금합니다
노 나 자신은 그런데 왜 끊지 못하고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묻는 건데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절대 안하는데 내가 왜 하고 있나 너는 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쓸 마음까지 내느냐.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통제되어서 97년 10년 전 자료들 이후로 안나온다는 건 더 심각하다는 것. 그걸 알아도 우리는 잘 피해가지. 저도 멜로를 하니까.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고 나 자신도 떠들고 있으니까. 근데 그러면서 이게 뒷덜미를 잡는 거야. 지금 놔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게 정리되어 있다, 감정이 신파로 몰고가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에 기대서 말하지 않는 게 되게 좋았고. 우리가 보여준 것만으로 느끼게 하니까. 나는 피해갔는데 왜 이 사람은 피해가지 못했는가, 자괴감이 드네요
김 자본은 어쨌건 투자가 됐고 저도 대중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었어요 첫날부터. 그러다보니 아역을 찾는 것도 기존 연기자를 계속 많은 애들을 봤는데 아역이야 많으니까 쉽게 생각했어요 그 많은 아역 중에 분명, 그런데 없는 거에요 영동 산골 아이에요 분교 25명 생활하는 데서 개울에서 놀고 때 하나 묻지 않은 명철이가 온 거에요 독립영화를 하나 해 봤어요 그 동네 와서 찍는 걸
노 난 걔가 연기하던 애인 줄 알았어요
김 독립영화 편집하는 걸 보다가
노 유연해서 연기를 참 잘 배웠다 생각했어요
김 안 배운 애죠
노 여자애도 그렇고?
김 여자애는 많이 한 얘에요. 여섯살 때부터. 그런데 명철이를 보면서 걔 톤의 연기 톤을 기준으로 잡자. 담백하다. 연기가 훈련되어진 애가 아니니까 담백한 것 이외에는 못해요 조절이 안되는 거죠 어쩌면
노 시키면 너무 연기 해버리는구나
김 그게 안되고 또 성격이 워낙 쿨해요 네 아니면 대답이 없어 아니오는 대답을 안해버려요 세시간 앉아있어도 말을 시키는 법이 없고 말 시키면 그냥 네 산골 조그만 분교에서 때묻지 않고 자란 거지 아버지는 호두농사 지으시고 양봉 치시고.
노 또 제가 궁금했던 게 사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을 때에 감독이나 작가조차도 공감을 받는 부분이 있잖아요 영화나 만들고 글이나 쓰지 뭐한다고 의미를 담을 거냐 언젠가 감독과 작가에게 요구되던 게 의식이었다면, 의미나 사회적 참여였다면 지금 이 시기는 그런 것들이 하나의 제스쳐, 쇼가 돼버린 거지. 모두가 그렇게 해서 결국 종교로 빠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하니까 글 쓰는 사람들, 작품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건 하나의 쇼고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하다못해 감독답지 못하고 작가답지 못한 짓이다라는 공방이 있어요 어떤 밥을 먹고 살든 호화롭게 살든 그런게 욕이 안되는 세상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기 때문에 모든 게 쇼처럼 됐고 충분히 욕을 먹을 수 있는 쪽에서 보면 감독이 돈 써서 상업사회 살면서 돈이나 벌고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서 그렇게 고민을 해야지 무슨 의미를 찾고 하느님도 나오고.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 늘 가로막혀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이 시대의 창작자들은 지 밥벌이가 전부여야만 하는 사람들인가. 감정조차도 신파가 되고 이런 세상이니까 감독님도 고민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전면에 내세우면서 할 수 있었나
김 이건 오래된 숙제 같은 거니까요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거죠
노 숙제 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김 저는 이거 찍고 바로 화산고처럼 액션 젊은 애들 액션 영화 들어가는데 크로싱 찍을 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내가 여태 그런 얘기 하던 사람도 아니고 우습고 그만한 걸 감당할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떨어진 거죠 누군가 이 소재를 빨리 했으면 저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어요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하다못해 이 영화를 4년 동안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왔을 때 남북한이 더 빨리 교류되고 더 빨리 무너지면 이 영화를 가치 없는 게 되잖아요 지금 북한이 더 잘 살고 식량이 많이 들어가면 걱정을 했잖아요 그러다 회개를 했어요 누가 이렇게 묻더라고 니 영화가 망하는 게 좋니 저기가 살게 되는 게 좋니. 내가 4년을 날려도 저기가 잘 사는 게 좋더라고요. 해왔다고 했는데도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내 스태프들에게도 분노하고. 왜냐면 갈등이 많아요. 탈북자분들이 스태프로 배우로 많이 참여했는데 화가 너무 날 때가 있었어요
노 왜
김 요구사항도 참 많아 나는 다른 사람과 못 자니까 방을 따로 달라고 하기도 해요. 웬만하면 감독 빼고 돈 없어서 다 따로 자. 감독이야 혼자 자야되니까. 그런데 남이랑 못자겠다는 거야. 근데 나중에 이해를 한 게 많아요
노 어떻게 이해를 했어요
김 어려서부터 다른 세계에서 살았는데 잘못을 인정을 안 해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나 못 들었습니다 전달 받은 바 없습니다. 실수를 인정을 안 해요. 그게 뭐냐면 스스로 인정하는 그 순간 죽는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생활총아라는 게 너무 다른 세계에요. 세계 표준화에 접근돼있지 않아.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얘기하는 생활총아라는 자아비판 시간이 있는데 직장인 1주에 한 번 작가나 예술가는 이틀에 한 번 농민은 보름에 한 번
노 작가 예술가는 빨리 썩으니까 이틀에 한번씩이구나 하하
김 그런 사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같은 한국말인데도 말이 안 통해도 일본 미국 사람과 얘기하는 게 더 부드러워요 너무 폐쇄된 사회에서 자기 질서만 갖고 살아왔어. 통일되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노 아까 아들 죽은 아버지가 말하기 싫다는 마음이 차인표의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보는데 아이가 죽을 때보다 더 그런 ? 어떻게 사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막 울었어요
김 내가 볼 때 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온 게 아니에요 생존하려고 온 거에요 1만5천명이. 그 안에서 자유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유는 맛보고 비교는 거에요. 태어나서 그 안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면 몰라요. 자유를.
노 실제 대사관 사건도 그렇고 저도 그때 갔었는데
김 다 생존의 문제예요. 오고 싶어서 탈출하는 건 아니다. 잡혀가면 수용소 가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가면 또 굶어죽고 돌아가기 싫은 거지. 먹고 살고 싶어서. 가면 또 굶어죽고.
노 돈 준다고 해서 넘어온. 그런 걸 계속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벗어나는 문제였던 거야. 부모자식 버리고 온 놈이 오죽하겠어,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인데 그렇게 나올 때 갔다 와서 동생이 묻는 거에요. 얘기를 하다가 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얘기를 하니까 ??????
김 그 사람들 지금도 사실 돌아가고 싶어해요 정치적으로 박해만 안 받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여기서 친척을 먹여살리는 탈북자 많아요. 돈을 송금해서. 100만원 보내면 80만원이 들어가더라고요. 한국돈 80만원이면 여덟-12식구가 1년 간 식량 안 떨어지고 먹을 수 있어요. 그게 참, 돌아가고 싶어해요. 어쨌건 여기 뭐가 있어도 별 게 없는 거거든요. 자기 고향이잖아요. 자유가 없는 것 같아도 숨 쉴만은 해요. 숨 못 쉬는 건 아니고 다 익숙해서 그 안에서 설렁설렁 가는 것도 있고. 밥과 약만 있으면. 물론 자유를 맛 본 사람들은 힘들겠지. 직장 안 가도 되는 게 신기하대요. 배치 받으면 안 갈 수가 없대요. 출근 안 하면 노동단련소로 가야 하고. 우리는 직장 싫으면 관두잖아 그게 너무 신기하고. 너무 다른 세계에요
노 어떨 땐 북한 아사자들 얘기 들으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과연 그러겠나. 정부에서도 굶어죽는 사람 없다고 하니까. 내가 옛날에 19 20살 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소설이 있었어요 625 배경으로 한 가족사를 설명 거였는데 책 겉장에 독후감을 써놔요 막 욕을 써놨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고 막말을. 저도 산동네 살았는데 이미 70년대에도 나는 그 가난보다 더 찌들게 산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게 지금 과연 전후의 아픔을 아는 건가.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브루조아야. 먹을 수 있고 학교에 갈 수 있다니. 66년 생인데 마포 산2번지, 산천동. 고층 삼성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지만 판자촌이었어요. 거기서 내가 그 책을 읽는데 분노스러운 거야. 그걸로 아주 리얼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 사람들이 다 잠깐 미쳤나 했어요 20년 이후에도 우리는 이러고 살고 있는데 늘 싸우고. 크로싱 그 마을 보니까 우리 동네 같은 거야.
김 저도 그런 느낌을. 연결해서 세트 짓고 몽골 마을. 50년대 전쟁 끝나고 너무 똑같아요. 북한 사람들이. 사진이랑 연결해서 보니까 소련에서 처음 주택을 지어주던 방법들이 몽골이랑 똑같아요. 설계도가 같은 거야. 표준 설계도. 방 구조가 러시아 방법으로. 새마을 짓듯이. 그게 똑같아요. 너무 잘됐다 했죠. 저도 찍으면서 어린 시절이 너무 기억 나는 거야. 동네 애들… 충무로 위 산동네. 장충동쪽. 그 동네 좀 낫지 않아요. 루핑집이 있는 데서 살았어요 저도. 동네애들 다 트고 버짐 올라서 할 거 없으니까 밖에 나와서 놀고. 할 일 없는 아저씨들 파자마 입고 나와 있고. 술취해서 초저녁도 안돼서 소리 나오고 똑같아요. 그 느낌들이 나도 향수가 있지.
노 그 생각도 나고 그 이후 데뷔해서 좀 먹고 살 때 중국 다통 탄광촌에서 깜짝 놀란 거지. 20년 전의 모습이 있는 거야. 우리 언니도 공원이었으니까 카바 신고. 그때 내가 수필을 하나 썼었는데 거짓말 이후 간 거였어요. 도대체 이 시간이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나는 이미 잊었는데 또 만났다가 영화에서 또 만난 거지. 대한민궁이라 쓴 쌀이 있잔항요. 우리도 동회에서 배급을 쭉 받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위에서 뜯어먹는다고 해도 그래도 밑으로 떨어지긴 하거든. 어린 애가 20키로짜리 밀가루를 들고 계단을 막 올라요 거기에 그게 있는 거야. 악수하던 미군 포대. 한미우호. 그 생각도 나면서.
김 저도 이거 찍으면서 향수를 많이 느꼈어요. 왜냐면 북한 사람들 만나보니까 사람들이 점잖아요. 배운 사람들이. 내가 막 썼던 말들이,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내가 좀 뽈 좀 차죠 이렇게 말하면 걔는 사람 취급 안 받는다, 잘난 척 못 합니다. 하더라.
노 ???해서 그런가.
김 우리 아버지 시대 부부관계 같아요. 부부 간에도. 술먹고 때리는 사람 많다는데 참 깔끔하고 정있게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정있고 조용조용. 애들도 부모에게 존대말을 써요. 부부간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 내 어린 시절 기억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쉬웠어요. 30-40년 전 모습이구나. 그대로 있구나.
노 우리에겐 추억이고 향수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계속 현실이구나. 내가 그걸 2-30년 겪었으면 돌았을 것 같아요. 그 가난은 나는 절대적 가난이 10년. 설마가 자꾸만 확인하게 되고.
김 너무 변했죠. 먹고 살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노 그래도 불구하고 잊잖아요. 안 믿기잖아요. 설마가 떠오르잖아요. 내가 펑펑 울었던 장면이 두 군데였는데, 울음을 참았어. 우는 것도 신파다. 차인표가 벌목장에서 돈 받는 장면의 초라함과 구질스러움이 눈물이 나더라고. 임금 받을 때의 느낌. 우리는 이제 통장으로 받지만 옛날에 아르바이트 했었어요. 찌라시 나눠주면 아저씨가 오천원짜리 천원짜리 오백원짜리 섞어서 주는 거지. 탁 받아서 분명히 내 순서되면 날 주는 건데도 탁 받아서 고맙습니다 소리도 못 하고 뛰어가는 거야. 돈 쓸 생각에 그랬는지 몰라도 그게 돈 세는 데에 오버랩되더라고
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 고통이 있었던 사람들이예요 어머니 생각이 나거나 아버지 생각이 나거나 굉장히 강하게 다가오는 거. 요즘 영화가 그런 기능을 안했고 많이 채워준 적 없고, 현장에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맨날 좀 더 스피드있게 좀 더 대사 툭툭 쿨하게 던지고 좀 더 드라마틱한 것에 훈련되고 살아온 사람이라 어릴 때 꿈꿨던 영화를 잊었어요. 누군가에게 위안될 수 있고 그런 걸 잊었어요. 맨날 대중 의식하고. 대중보다 일단 투자자부터 의식하게 되지. 투자자가 대중의 표본이지. 그러다보니 잊었는데 찍을 수 있는 기호가 만들어진 게 감사하지. 극장에서 시사하는데 가니까 블록버스터들 보니까 나 같아도 내가 이걸 보겠나. 들어가면 고통일텐데. 어느 순간 되게 크로싱이 초라해보이더라. 그 화려한 신나는 여름 블록버스터들 안에서 미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일단은 감사한 거에요 내 스스로에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만들어진 자체가. 충무로 자본이 힘든 상황에서 만들어진 자체가 기적이에요.
노 그 기적이 정말 기적이 되길…
김 묘한 건데 만들고도 두려워졌고 영화가 나왔을 때 고독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치적으로 ?될까봐 표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인터뷰도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움직였어요. 이 문제를 만든다고 할 때 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너무나 의견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복잡하고 내가 중국촬영을 할 때 그 사람들 만나면 정보기관도 있고. 북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그럼 중국촬영 무산되고, 몽골에서도 여러 허가 받는 게 복잡해질 것 같고. 거기 북한 대사관이 있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하다가 한 분 한 분씩 만나기 시작하는 거죠. 만들었으니까. 그 안에서 진짜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고 내가 뭐했나 싶게. 일들을 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뉴스위크 일본 특파원이 중국에 취재를 갔다가 탈북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꽃제비 아이들을 만났다가 돌아서지를 못한 것. 돌아서면 애가 죽을 것 같았고. 통역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쟤 돌봐달라 하다가 그게 연결이 돼서 기자를 안 하고 NGO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신기자 클럽에서 이런 일을 알리고 있다. 중국이 계속 북송시키니까. 북송 당하면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사실 정치적 난민인데도 중국이 거부하고 있으니까. 그럼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부끄럽고. 저는 사실 이만치 했으니까 도망가고 싶은데. 숙제 했잖아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제 또 만나보니.
노 너무 많은 의미가 있으면
김 그게 발목 잡히는 것 같아서. 그런 분들 만나면 발목 잡힐 것 같아서. 너무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내 살 길 때문에 바빠서 안 돌봤는데 만나고 보면 내가 눈물이 나오는 거야.
노 누구는 목숨 걸고 하는데, 도망갈 변명이 너무 빈약한 거야
김 안 만나고 영화 찍고 도망가고 싶은데 홍보를 하려다 보니까 그분들을 또 초청하게 되고 만나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못 도망가는 거지. 그렇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여명학교 탈북자 아이들 교육시키는 곳인데 사실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나도 이걸 찍으며 쉽지 않았는데, 내가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데 나도 잡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잡혀가는 악몽꾸고 일어나서 식은땀 흘리고. 아이들도 여기 와서 두려운 거지. 왜 티비에 김정일 사진이 계속 나오는지. 잘못 되는 거 아닌지. 그런 두려움. 교육 체계도 다르니까 부적응해요. 더 돌보고 더 배려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애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데 상처를 더 후벼파는 거 아닌가. 잊고 싶은 부분을 상기시키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런 편지를 보냈는데. 애들이 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잘 안 우는 애들이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관객 안에 있었다는 게 애들에게 너무 위로가 됐다. 그들의 마음을 누군가 아는 것만 해도 큰 위로가 됐다.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그렇게 후벼파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같이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고. 감사한 건 홈페이지에 격려의 글이 많다는 것. 300몇십개를 읽어보면서. 이렇게 바쁘고 스쳐지나가는 것 같지만 누군가 장을 마련해주면 얘기를 할 수 있구나.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거지만 끄집어내지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 가장 위안이 되는게 될까 하는 부정적 마음 한 편에 모르고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정보가 공유되어있지 않으니까 들은 말로 편견이 돼버리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될 수 있겠다. 요즘 뉴스와 100분 토론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인데 너무나 많은 정보가 공유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다 보니 정확해지고. 엄청난 정보의 공유. 그러나 기사보다도 영화가 힘이 발휘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는 모르니까, 보고 나서의 얘기는 굉장히 다른 부분이다. 그런 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피해가고 도망가고 싶은 얘기지만 보고 있으며 불편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들을 감싸안는 자체가 내 자신이 편해지기 때문. 누구에게 그랬어. 작업하다 왜 내가 여길 왔을까. 나도 모르겠다. 동생이 그러더라. 배우 얘기를 많이 해, 연기 잘 한다고 그래.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봐. 꼬맹이들 정말 연기 잘한다고.
김 저도 안 가본 데잖아요. 몰래 찍어온 동영상, 사진 몇 장으로 새로 만드는데 북한 사람들 탈북자들이 도와주긴 했는데 녹음실에서 트는데 장마당 엑스트라들이 몽고 사람이니까 대사를 넣어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자기 동네라고 그러는 거다.  정말 들어가서 찍은 거냐고. 정말 감사한 거다. 내가 제대로 찍었구나.
노 가난을 접해보셨으니까.
김 참혹한 건 거뒀지. 수용소도 일부러 좀 더 아름답게 찍었다. 자연의 느낌이라도 다가오게. 그렇지 않으면 이걸 어떻게 볼까. 어떻게 더 쿨하게 드라이하게 찍을까 고민. 멜로와 서정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못 보겠다 싶었다. 비참함은 1/10도 안 보여진 것.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게 너무 많지만 묘사해버리면 몬도가네가 되니까. 감방이라는 데도 걔들은 잡혀가면 누워서 자지를 못 해. 풀려나올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자는 거다. 통솔하는 완장 찬 죄수만 발 뻗고 잔다. 밤 10시 취침 전까지는 계속 외우고 아침에는 노동하고 자는 거다. 허약한 애들은 석 달 못 버틴다더라
노 나는 한달도 못 버틸거야
김 살라고 갖다 놓은 것도 아니고 너무 말이 안돼. 온 몸, 벽 사이에 이가 득시글. 그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해 봐. 솔기마다 이가 붙어 있는 거. 내가 보위부에 잡혀가는 꿈을 꿨다. 김정일이 보위부 보내서 잡으러 오면. 너무 싫은 거야 거기 가서 산다는 게. 악몽을 두 번을 꿨어요.
노 시나리오는 누가 썼어요?
김 처음으로 영화화가 된 거예요
노 쓴 사람도 그렇고 카메라 들이댄 사람도 그렇고 판 사람도 그렇고 참.
김 이제 반동작가가 된 거죠. 자료수집서부터 고생했고 브로커 만나고 두만강변에서. 브로커가 진짜 들어가서 취재하고 올래 한 적도 있고, 강 건너가면 들어가는 거다. 거기서 겁이 나지. 눈 앞이 북한인데 들어가게 해줄게 인터뷰 하게 해줄게. 하는데. 나 아는 탈북자는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해. 허술한 것 같기도 하고. 돈으로 너무 잘 되니까. 여기보다 거기가 더 돈이 왕이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인데 너무 모르고 알려고 들지도 않고.
노 오면서 생각했어 사람들이 착해요. 어떻게 착하냐면 우리는 안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야. 정보가 없으니까 그렇게 믿어. 그게 사는 방법이야. 외면해야 내가 사니까.
김 그렇죠 한 시간 거리에서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게 진짜라면. 같은 핏줄이고 같은 언어을 쓰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분명 신음소리가 들려올텐데 너무 귀찮으니까 귀를 일부러 닫는 거지. 티비 볼 때도 힘들면 채널 돌리잖아. 그런 현상인 것 같아. 그러나 우리 국민 훌륭해요. 금반지 태안. 훈훈하고
노 이런 나라가 어딨어. 나 촛불 가서 촛불이 찡하더라니까. 72시간 할 때 한 번 갔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가니까 나도 나가서 한 시간 정도 걸어봤는데 누가 말을 들어줄 거라고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와서 촛불을 들고 있나 해서 먹먹하더라고. 희망이 있을 거예요.
김 저도 그렇게 믿어요. 우리 민족이 참 묘한 민족이에요.
노 그렇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를 통해서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줄 세뇌됐던 것을 깰 때 훈훈한 봇물이 좀 터질 수 있는 걸 왜 김태균 감독이 하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하하
김 저도 그게 제일 피하고 싶었고 궁금했던 저도 10월부터 일본 합작 촬영 스케줄이 있어요. 잘됐다 하는데 그런데 끝없이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기니까.
김 일본에서 크로싱을 틀어요. 인권 운동하는 분들이. 처음엔 사람 많은 런치 타임에 틀기로 했는데 사람이 덜 모이더라도 식후에 틀자 했죠.
노 나도 이거 보고 나와서 김효진씨랑 빈대떡집에 갔는데 음식이 남아서 싸올 건 싸오고 먹을 건 꾸역꾸역 먹고. 계속 뒷통수가.
김 어떤 목사님이 이러더라. 거룩한 고문이다. 이건 우리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다. 북의 문제는 우리 문제다.  혐오증이 생겨서 그래. 짜증나게 핵이니 뭐니 자꾸 그러니까. 핵이나 정치적 문제는 눈 돌려 들여다 보지 않아. 염증이 생겨 그렇지.
노 그런 정치적인 것들을 다 떠나 봐야 할 것 같아.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 감독님이 절제했단느 건 보면서도 힘든 와중에 절제된 게 보인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잘하셨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령 1/10밖에 안되더라도 사람들이 그나마 그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따뜻한 두 부자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참 잘하신 것 같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결과일 것이다. 너무 한쪽으로 갈 수 있었는데도
김 가족, 부자 간의 얘기만 잘 보이길 바랬어요. 지나가면서 다 보일 테니까 겪는 것 안에서 과장 안해도 그 안에서 다 느껴질테니까 얘기하고 싶은 건 부자의 얘기만 감정선을 가져가자. 그래서 그게 그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감정이입 들어가면 우리 얘기가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얘기가.
노 의미를 빼고 감동스러운 부자 얘기로 자꾸 얘기가 돼야 해요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부분이 많죠 다들 전략가가 됐으니까 다들 사람이 없어지고 다들 훈수를 두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지. 감독님이 참 잘 만드신 거야. 나는 일단 도망갔을 거예요. 100프로 도망갔을 거예요. 아예 다룰 생각도 안 했을 것. 이 얘기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도 쓰려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도, 통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같이 어우를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드라마에서 탈북자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잖아요. 그런데 날 보세요. 나는 도망갔단 얘기지. 내가 안 하는 꼴을 보세요.
김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노 소극적이지만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난 외면했잖아요. 그런 부분들. 모든 의미나 모든 사람들의 인정. 인간 사이에 가져야 할 훈훈함 마저, 때때로 부모자식간 마저도 쇼가 되고 나 자신까지도 신파가 돼버린다. 마음이 먹먹하죠. 언제부터 이렇게. 나 역시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사진 한 장이 아닌 영화로 새롭게. 부자 얘기가 참. 우리는 살려고 헤어졌습니다. 말이 안돼요. 내 동생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준 떡을 먹고 체해서 병원에 갔는데 쇼크사로 죽었어요. 가난이라는 분노는 <내가 사는 이유>를 썼을 때 70년대 마포를 갖고, 20년 내내 그게 내게 상처가 됐어요. 내 동생이 죽고 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거든요. 그 아버지가 몽골에서 ?때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너무 힘든 게 영화를 찍을 떄까지 오히려 몰랐는데 찍고 나서 우리 배우들 인터뷰를 했어요. 배우 중에 브로커로 등장하는 사람이 탈북자다. 난 처녀인 줄 알았는데 몇 달을 씩씩하게 잘 살았는데 갑자기 펑펑 우는 거다. 나 사실은 애 놓고 왔다고. 자격증 따서 화물 크레인 기사인데 열심히 잘 사는데. 석달 있다 온다고 애 두고 왔는데 영영 헤어졌다며. 자기 살려고.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애 데리고 강을 못 건너니까 맡겨놓고 왔는데 영영 멀어진 거야. 몇 개월 동안 생활하며 얘기를 안 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그러더라. 우리도 찍다가 못 찍은 일 많아요. 연습하다가 살아온 사연 좀 듣다 보면 이 사람들은 생사를 넘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한 상상을 초월하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 이번에 취재하고 준비하면서는 못한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인간의 극한까지 가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까지를 그려야 하는지. 소통의 방법은 그래서 일단 아버지와 아들 얘기로만. 멜로드라마지만 일단 사람이 관심을 갖고 봐야 하니까. 고발 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가 훨씬 강렬하지. 블록버스터지만, 그 틈새에 들어가 있지만. 내가 어쩌다가 처음에 5월에 했어야 했는데 점점 밀려서 그 중심에 딱 들어가게 됐나. 함경남도 고원이 우리 아버지 고향이다.
노 여러가지 빚도 있으셨네
김 이제 생존해 계신 분도 몇 분 안 계시고. 그래서 내가 함경도를 모델로 삼았지. 마지막 장면의 강가가 우리 할머니가 귀에 못 박히도록 말하던 덕지강이다. 편하고 좋았던 시절 얘기가 강가거든. 함경남도 고원군 군내면 상석연리. 이렇게 주소를 외우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내가 못 가도 너는 가라는 얘기를 들어서 나중에 찾아 봐라. 아버지 쫓아서 고향 분들 만나는 데에 따라가고, 술 많이 먹으면 우는 사람 꼭 나오고. 어쩄건 북한 문제가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가족의 문제가. 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요. 60년이 넘었잖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부르면 어릴 때 찡하고 그럤는데 부른지도 너무 오래됐고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중학교때. 통일 비용 어쩌고 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니가 돈 내냐 하며. 어디부터 그렇게 돈돈돈 해버렸는지. 중2짜리가.
노 이제 돈에 질리지 않았을까. 돈 때문에 뽑았는데 이렇게 되니까
김 노대통령이 이라크 파병할 때 근사한 얘길 보편적으로 해야 될 거 아냐. 돈 때문에 파병한다는 얘기를 하고. 진보는 그렇게 실수를 하고, 실용주의는 인간이 살 가치가 아니거든. 대안이잖아. 왜 그게 가치가 돼버렸는가.
노 돈계산들을 너무 잘하지
김 배고프면 일단 먹여야지, 아프면 약줘야지. 어느 순간에 통일의 문제가 비용 문제가 된 건가.
노 세뇌가 된 거죠. 계속 들으니까 전략가 정치가가 되는 것 같아요. 정치는 정치적으로 풀어야돼 하다가 반문을 하지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치적이었어, 정부에서 나오는 어쩌고 또 생각하다가 니가 또 언제부터 그렇게 정부를 믿었어, 북한 정부 얘기하면 또 니가 그렇게 북한 정부를 믿었어. 내가 말을 하면서도 탁탁 걸리는 거지. WFT도 그렇고 북한 자료도 그렇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믿었나. 세뇌가 된 거지. 대량학살 안 난다고 하는데, 이미 다 거지촌이고. 니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고 있냐. 세뇌가 뿌리깊게 된 거예요.
김 저도 그랬어요. NGO도 의심스럽기도 했다. CIA 국정원 안기부 끄나풀일 거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과장된 정보를 던지는 거야 하며. 외국인 NGO는 외국 사람이 여기 와서 왜 저 난리야 했고, 쇼맨쉽이라 의심했다. 그런데 다 가짜가 아니다.
노 이게 다 미친 짓이 돼버린 거지.
김 사실은 내가 NGO 피땀 흘리는 걸 잘 못 그려줬어. 냉정하게 그렸죠. 기획탈북도 그렇고 잘못할 수도 있다는 걸 자료를 통해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중립을 넘어서서 사실 비난논조가 있었어요. 희생양도 있고. 나중에는 그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탈북 운동하는 사람들은 버젓한 직장에 있다가 어쩌다 한 사람에게 엮여서, 그 사람 어떻게 될까 해서 돕다가 또 한 사람 알게 되고 해서 점점 일을 못 하게 돼버린 사람들 많아요
노 뻔히 보이는데 갈 수가 없지
김 내가 가면 쟤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쪽 세계에 발목 잡힌다는 얘기들이 있는 거지. 세상엔 내가 볼 때는 완전히 안 무너진 기준들이 있다.
김 성격상 목청 높이는 사람도 아니고 피켓 드는 사람도 아니다. 영화 봐. 영화가 만들어져 감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지게 돼서 감사하고. 요즘은 내 스스로가 감동돼서 감사한 게 많아요. 고맙다 하는 소리 들을 때. 조금이라도 체했던 거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다. 전 행복해요. 작가님도…
노 난 도망가서 힘들어요. 영화에 고맙고. 영화적으로 충분히 볼 거리도 있고. 저도 멜로 참 좋아하는데 세상에 부모자식 간의 멜로만큼 찡한 게 없죠. 상당히 이 영화가 대중에게 어필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내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면피 용으로 지원을 해야겠다는, 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내 양심을 잡는 부분이니까. 이런 큰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믿는 만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통일을 이 영화를 통해 믿게 된다면 통일에 큰 교두보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의미에 빠진 것이 아니고, 정말 많이 울고 훈훈해졌어요. 불편한 영화라면 보고 나서 각박해졌을텐데, 크로싱의 불편함은 내가 인정해야만 했던 부분이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축축해졌나봐요. 나올 때, 외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잘 봤다는 기분으로 훈훈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말 한 마디 보태는 것이잖아. 탈북자들에게도. 얼마나 악랄하면 자식을 두고 오냐,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무서운 애들 아니냐고. 하지만 오죽하면 여북할까. 나는 안 그러리라 생각하면서 남은 그럴 거라 생각하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다고 하면, 살려고 그렇게 버리고 오는 현실이라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그게 아닐까. 편견을 가지고 이들의 시선을 봐왔지만. 같이 울어주는 것, 마음 한 번 내주는 것이 어쩌면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 좀 더 편한 기분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김 이만치 어려운 거예요. 북한에 식량 보내자고 100분 토론하면 100분으로 안 될 거예요. 의견들이 그만큼 복잡해요. 다 잘라내고 단순한 데서 출발하자. 저기 사람이 있고, 굶어 죽고 있다. 가족들이 죽고 있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있다. 우리는 여태 보지 않았지만 안 보이는 곳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 나중에 그 시간에 우리 동포가 죽고 있는데 그 시간에 우린 뭘 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쩌나.
노 보고 나면 많은 논리들이 녹아요. 느끼게 되죠. 내가 당장 탈북자를 본다고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말, 작은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거예요. 보지 않고서는 거추장스러운 말이 많아져요. 냉정함은 그렇게 힘든 것.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닦아낼 때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게 내려 앉고 세상이 살만하게 다가설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도망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짜르르하구나 아직은 사람같이 느낄 수 있구나.

Posted by 미역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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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역의 장혁, 민석 역의 조동혁, 진혁 역의 이상우. (30대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명실상부 꽃미남 3인3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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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당연한' 강남영화 트렌드물은 이미 줄을 이어 실패를 맛봤다.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그 대열에 끼지는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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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에서 장혁의 손은 캐릭터만큼이나 황폐했다. 고운 손을 만지고 싶은 게 자연이겠으나, 장혁만 보면 곱지 않은 그 손이 좋다!

2009년 상반기 개봉할 예정인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6월 15일 크랭크 인했다. <스카우트> <내사랑> <추격자> <크로싱>(26일 개봉이지만, 영화를 봤으므로...)이후 <차우> <홍당무>를 라인업에 걸어놓고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커다란 앰플리파이어,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브랜드'의 작품인 만큼 벌써부터 작품성에만은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을 준비를 시작한 기분이다.
불륜이라는 모호한 관계를 통해 삶에 중독된 세 남자, 한 여자의 미묘한 감정선을 거미줄처럼 엮어갈 현대 서울의 도시 드라마...라고, 시나리오조차 안 읽은 상태로 알지도 못하는 얘기를 떠들기보다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결혼만 안 했어도 훨씬 더 좋았겠지만 장혁을 좋아한다. 생김새도 불만 없지만 군제대 후 부쩍 속깊어진 듯한 여운을 남기는 그 몸놀림 때문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와 인터뷰를 통해 내가 짐작한 그 변화를 가늠해보고 싶다. 이상우도 좋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네 캘리포니아 집 옆집 청년, 단테의 샤워 신만큼이나 눈을 사로잡는 샤워 신을 제공해 준 허리 부위 라인에 자신 있는 청년이니까. *-_-* (궁금하신 분은 <흑심모녀>를 보자. 김수미 선생님은 그를 두고 "난 놈이네, 난 놈"이라고 하셨단다.) 조동혁의 덜 깎아진 선도 좋다. 섹스에 중독된 자유분방한 성형외과의 역할이니 굳이 베드신을 지목하는 건 아니어도, 그의 거침없는 선은 더욱 거칠게 표현되겠지.
3인3색의 각기 다른 꽃미남성을 지닌 세 남자의 영화, 스태프를 가장하던가 촬영 현장이라도 급습해서 호들갑 떨고 싶을 정도로 기대된다. 아무쪼록 과잉 없이 잘 연기하고 댄디하게 잘 연출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영화로 완성되길.
Posted by 미역별

무비위크 329호 특집
My Favorite Things about Movie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것이다!

이번 호 무빅 특집 기사 보셨나요?
지면에는 실리지 못했지만, 제가 뽑은 것들을 여기에 올립니다.  
참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배우들, 장면들,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새록새록한 기분이 괜찮더군요.  ^ _^




film <식스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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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재밌는 원작을 재밌는 영화로 만드는 건 의외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식스티나인>을 영화로 봤을 때의 첫 느낌은, 소설에서의 캐릭터를 참 입체적으로 잘 살렸다는 것이다. 꽃피는 청춘들의 위험천만한 도전이 마치 농담 따먹듯 전개돼 시종일관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갖는 최대의 미덕은 지루하게 사는 건 젊음에 대한 죄라는, 이제는 식상해진 멘트를 식상하지 않게 상기시켜 준다는 것. 여기에는 개인적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꽃미남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한몫한다.(흐흣)

director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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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괴물>로 한국 영화의 기라성 같은 '괴물' 감독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봉준호라는 감독 타이틀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갖게 만든 영화는 <플란다스의 개>였다. 그는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뽑아낸 듯한 소재를 재기발랄하게 풀어내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졌다. 장르와 스케일에 상관없이 그가 만들어내는 캐릭터의 소박함에 정감이 간다. 이번에 칸에서 공개된 <흔들리는 도쿄>도 의심할 나위없이 잔뜩 기대 중.

actor 제이미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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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감이 끝난 새벽, 남은 이들끼리 옹기종기 둘러 앉아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눴다.
그 때가 5월 22일 AM 4시 30분 정도였으니 몇 시간뒤면 대한극장에서 <88분> 언론시사회가 열릴 터였다.

나: "아~ 일어날수만 있으면 <88분> 보고싶다.ㅠㅜ  전 알 파치노 팬이에요."
송편: "그래? 알 파치노 영화는 얼마나 봤는데?" (참고로 '송편'은 무빅에서 통용되는 송지환 편집장님의 준말입니다. ^ ^:)
나: "<인섬니아>랑.. <여인의 향기>랑..음"
송편: "<인섬니아>이후에도 알파치노가 나온 영화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

물론 안다. 그가 얼마나 수많은 영화게 출연했는지. 그러나 그가 나오는 어마어마한 대작 영화들을 그간 몇 편 정도 봤는지, 그게 뭐였는지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겠다. 단지 나를 알 파치노라는 배우에 전율하게 만든 영화는
<인섬니아>와 <여인의 향기>였다. 그 두 편으로,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몇 안되는 배우 리스트의 상위에 랭크됐다.

생각해보면 배우든 감독이든 작가든, 누군가를 신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나는 <여름의 흐름> 한 편으로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를 사랑하게 됐고, <할람 포>로 제이미 벨이라는 배우를 알게 됐다.

<할람 포>를 보고서야 <빌리 엘리어트>를 찾아 봤다. 그리곤 과장된 감탄사를 연발하며 전율했다.
"오~ 이럴 수가~ 제이미 벨!"
발레 소년의 아름다운 몸짓(빌리 엘리어트)은 사랑하는 여인을 훔쳐보기 위해 지붕을 탈 때마저(할람 포) 유연한 곡선을 그린다.
뭐랄까.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장르는 분명 판타지가 아닌데 판타지에 접어든 느낌이 든다.



character <금지옥엽> 임자영(원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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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의 은찬 캐릭터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장여자와 킹카와의 두근두근 러브스토리를 가장 사랑스럽게 풀어낸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금지옥엽>이다.
남장이 충분히 가능한 '밋밋한' 체형임에도 그녀만의 초특급 깜찍·큐트함으로 글래머 스타 로즈(유가령)를 꺾고 샘(장궈룽)과의 사랑을 확인할 때의 그 감동이란! 



scene <4월 이야기>의 풋풋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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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안 좋은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기적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차피 기적이라고 부를 거라면 난 그걸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짝사랑이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답답한 소재를 발단까지만 쏙 빼와 한 편의 시처럼 마무리 지은 영화가 <4월 이야기>다. 마츠 다카코의 미묘한 표정으로 마무리되는 싱거운 엔딩 신은 생각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O.S.T. <할람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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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사춘기 감성을 서정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영화 자체도 좋지만 음악이 예술이다. 장면마다 나오는 절묘한 멜로디에 '이게 무슨 노래지?'라는 궁금증이 절로 생길 정도. 그럼 그렇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했단다.

Posted by 은빈작가


2008월 5월 3일 토요일
전주, 뜨거운 축제의 열기!!!

오늘은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주에서의 둘째날 일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
 
전날 새벽까지 막걸리를 걸쭉하게 걸치고 나니,
아침 일찍 영화의 거리로 가서 프레스 아이디를 받아 당일 예매부터 하겠다는 계획은
가볍게(?) 수정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열 시 정도였을까요.
택시를 타고 전주의 명물인 왱이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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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이'라는 독특한 상호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겉은 그냥 좀 큰 규모인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 끝없이 자리가 있습니다.
다음 날은 무려 천 이백 명이 예약돼 있어서 들어가지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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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없이 대표 메뉴인 콩나물국밥을 시켰습니다.
날계란 두 개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따끈따끈한 국밥 국물을 몇 숟갈 넣고, 김을 찢어서 비벼 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다고 합니다.
저는 반숙은 좋아하지만 날계란은 좀 익숙치 않아서, 좀 남겼습니다.
국밥 안에는 이미 밥이 들어있어서 숟가락으로 바닥을 잘 헤쳐 나가며 먹어야 합니다.
국물에 오징어가 살짝 가미돼 있어 시원하고,
어떻게 간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칼한 그 맛이 해장에 그만입니다.
한마디로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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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축제의 열기가 한창인 영화의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부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JIFF 공식 입간판!
'환영'이라는, 어떻게 보면 형식적이고 평범한 말에
저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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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거리, 오전의 소소한 풍경들.
오후부터는 뜨거운 햇볕에 인파는 열 배로 불어나 거리가 북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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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 센터에서 아이디 카드와 프레스 키트를 받고
무빅 기자들은 각자의 길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걸고 기분이 좋아 한 장 찍었습니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하늘을 바라보는 자체로 두근거릴 정도로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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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JIFF 서비스 센터 2층입니다.
아이디 카드가 있는 사람에 한해 들어올 수 있는데,
무료로 커피 등의 간단한 음료도 제공하고 아이디 티켓 발권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덥고 지칠 때마다 차분히 쉴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고마웠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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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서 도록과 상영일정표를 보면서 제게 주어진 하루를 고민했습니다.
JIFF 쇼핑백과 제 배낭에 나누어 담을 짐도 정리했습니다.
빈번하게 사용할 카메라, 선글라스 케이스, 가이드북 등은 쇼핑백에 담고,
무거운 도록, 책 등은 배낭에 담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냈으니 이제 영화보러 가는 일만 남았다,
가 아니었습니다. ㅡ.ㅡ
늦장을 부린 탓인지, 서울에서 예매를 해놓고 오지 않은 탓인지
당일 표는 99% 매진인 상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서비스 센터의 또다른 기능 중 하나가 영화제 상영작 거의 전부를 비디오로 볼 수 있는 비디오룸이 있다는 사실에 한가닥 희망을 얻었습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와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 보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뭘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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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자막이 제공되어서 빠르게 지나가는 대사를 훑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_@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뭐해?"
"저 영화보고 있어요. 비겁한..암살.. 어쩌구 저쩌구"
"근데도 전화받았어?"
"아, 여기 극장이 아니고 비디오룸이에요."
"그래? 그럼 좀 있다가 12시 45분에 시작하는 기자회견 취재 좀 해줘."
(…생략)

이리하여 저는 화면에서 발산되던 브래드 피트의 카리스마는 잠시 접어두고
기자회견이 열리는 쌈지 건물을 찾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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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 건물로 가던 중 발견한 꽈베기 명물집.
찹쌀 도너츠와 꽈베기만 파는, 그래서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용진선배와 사 먹어본 결과 시중 꽈베기와 확연한 차이점이 있는 건 잘 못 느꼈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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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목적지를 찾은 기념으로 한 컷.
누가 찍어줬냐고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작년에 혼자 유럽으로 떠날 때부터 생긴 철판인데,
아무리 혼자 있어도 기념 사진 몇 장 정도는 알아서 챙기는 용기가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풍경 사진도 좋지만, 그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있었다는 기억을 상기하고 싶을 때,
이렇게 찍어둔 한 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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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자회견장 도착!
'디지털 삼인삼색 2008' 감독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감독 세 분에게 자유로운 디지털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작품이 완성되면 공통 주제를 묶어 발표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는 '귀향'이라는 주제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감독들을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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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취재 인파로 북적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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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주인공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과 나세르 케미르 감독의 모습입니다.
두 분 다 영화배우를 방불케 하는 수려한 외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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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나고 기념 핸드프린팅을 하시는 모습.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음 업데이트 때 뵙겠습니다.
쭈~욱 관심갖고 지켜봐 주시길!
Posted by 은빈작가

2008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5월 2일.
축제를 즐기고, 전주의 맛을 즐기고 싶은 무비위크 기자들이 모여  
고속터미널에서 전주행 버스를 타고 세 시간을 훌쩍 달려 도착하니
어느 덧 날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허기진 배를 채우러 택시를 탔고,
홍수경 선배의 지도에 따라 '반야 돌솥밥'이라는
고전적 맛집의 냄새를 풍기는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피디하게 주문을 마치니 구수한 숭늉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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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으로 목을 추기니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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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너무 행복해하고 있는 무비위크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윗 사진 왼쪽부터 이유진, 홍수경, 지용진, 이은빈 기자.
(인물 사진은 작게 올리는 센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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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타이저로 생딸기 드레싱이 어우러진 샐러드가 나왔습니다.
저 바쁘게 움직이는 젓가락들, 보이시죠?
생딸기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져와서 기분 좋게 입맛을 돋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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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접시를 비우기 바쁘게 등장했던 따끈따끈한 녹두전.
생녹두를 바로 갈아서 만든다고 하던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해치우고 대망의 돌솥밥을 기다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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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온 갖가지 반찬들.
제가 좋아하는 신선한 야채 중심으로,
중앙에 있는 더덕구이가 눈에 띕니다.
반찬은 대체로 심심한 편이라서 아낌없이 집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웰빙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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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드디어 돌솥밥이 등장했습니다.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밥에 갖가지 야채와 버섯이 어우러진 영양 돌솥밥이었죠.
다만 올해는 조류독감의 여파로 계란이 빠져 있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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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 선배가 시킨 소고기 돌솥밥.
기본 돌솥밥에 담백한 소고기가 듬뿍 올려져 있어 양이 매우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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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한 그릇을 비우고 숭늉을 부어서 긁어먹었던 누룽지.
직접 맛보지 않고는 형언할 수 없는 맛입니다.
구수한 향토의 맛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달까.
이보다 깔끔하고 개운한 디저트가 또 있을까요? ^ ^


식사를 마치고 전주의 명물 '가맥'집을 찾아갔습니다. (반야 돌솥밥에서 도보 15분)
가맥은 가게 맥주의 약자로, 겉으로 봤을 땐 그냥 슈퍼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 맥주를 마시는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이색적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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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을 즐기는 무비위크 기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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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의 안주로는 말린 북어와 계란말이가 있습니다.
북어를 아무렇게나 찢어서 오묘한 맛의 소스에 찍어 맥주와 함께 먹으면 아주 그만입니다.
색색찬란한 계란말이는 뒤늦게 나와서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이후 삼천동 우체국 골목의 막걸리 집에서
새벽까지 막걸리를 마시면서,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그렇게 전주에서의 첫날 밤은 지나갔습니다.
Posted by 은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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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무비위크가 태어나는 저희 사무실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는 영화주간지 무비위크가 만들어지는 공간의 입구입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저는 출근해서 이렇게 입구에 금주의 무비위크 표지 세 장을 나란히 붙이면서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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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전쟁을 치른 다음날 오전이면
이렇게 대부분의 자리가 썰렁합니다.
그러나 새벽까지 열렬히 키보드를 두드려댄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사무실 내의 공기는 후끈한 편입니다. 

이 시간까지 여기 보이는 기자 분들은,
무박 2일을 보낸 직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
기자는 기사 작성을 위해
동이 트고 지는 줄도 모르고, 머리에 떡이 진 줄도 모르고
때로는 무박 3, 4일까지를 사무실에서 보내며 창작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그야말로 '모질게' 원고를 써나가는 고도의 정신력만이 필요하기에,
매주 함께 밤을 새는 무빅 식구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서로 익숙합니다.
대학 새내기 때, 엠티 간 다음날 무방비로 노출된 서로를 바라보던 난감한 시선을 기억하시나요?
그런데 저희는 난감하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게 따로 없기에, ㅡ.ㅡ
일반 직장에서보다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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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주 한 권 한 권 세상에 태어난 무비위크가 어느덧 325호.
사무실 한 면은 온통 무비위크로 가득차 있습니다.
가끔씩 한 권을 콕 빼내 뒤적이듯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좋아하는 영화를 질리도록 보고, 글도 보고.
모두들 여가 시간을 활용해 극장에 갈 때
'일'의 일환으로 극장에 갈 수 있다는 것.
영화 기자의 가장 크고 절대적인 혜택이 아닐까 합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풀어 보겠습니다. ^ ^)



+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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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추가하는 보너스 사진!

지난주 <호튼> 언론시사회에서 본 차태현 씨 직찍입니다.
이번에 <호튼> 더빙판에서 호튼 역을 맡으셔서 무대인사를 나오셨는데,
생각보다 많이 마르신 왜소한 체격이라 놀랐습니다.
더 놀라운 건 화면에서 봤을 때보다 더 귀여우신 외모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탱탱한 피부였습니다. ^ ^;
직접 보니 호감도 2퍼센트 상승! +_+

참고로
교과서적 교훈을 귀여운 캐릭터와 기발한 발상으로 승화시킨
아주 깜찍한 애니메이션 <호튼>을,
가정의 달 5월에 자녀들과 함께 볼 작품으로 살포시 추천합니다.

Posted by 은빈작가

지면이 모자라 꾸역꾸역 넣고도 넘쳐 버린 게 많아 안타까웠던 기사..
게재된 것보다 조금 더 생생한 전문이라는 겁니다 ㅋ


ALCOHOL TALK

<경축! 우리 사랑> 오점균 감독 & 이형승 대표 & 배우 김영민
Cheers! 우리네 사랑을 위해
<경축! 우리 사랑>을 재미있게 본 <무비위크>는 영화의 원안을 내고 연출한 오점균 감독, 제작자인 동시에 현장에서는 PD 역할까지 겸업한 아이비픽쳐스의 이형승 대표, 스물한 살 터울 아줌마와 열애에 빠지는 총각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배우 김영민을 만났다. 술 한 잔 곁들여 얘기를 하다 보니 <경축! 우리 사랑> 상영관이 그러했듯 인터뷰 자리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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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
삶을 관통하는 유머가 있는 영화 <경축! 우리 사랑>

<경축! 우리 사랑>은 나이 쉰에 사위가 될 뻔 했던 서른 살 총각과 얼싸안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아줌마를 둘러싼 포복절도 코미디다. 불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룸에 있어 이렇게 유쾌하고 발랄, 유머러스한 영화는 흔치 않았다. 아나키적으로 부담스러운 인생의 한 조각을 관객의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내고, 순발력 있게 유머로 포장한 후 다시 관객의 깊은 곳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심각한 드라마가 흘러도 무심한 듯한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즐거운 영화, <경축! 우리 사랑>의 오점균 감독, 이형승 대표, 김영민과 가볍게 술 한 잔 하며 얘기하자며 시작했던 게 어느새 새벽 두 시를 지나 다섯 시로 이어진 자리였으니 오죽 즐거운 영화 얘기가 많이 오고 갔으랴만, 지면 관계상 인터뷰이들과 인터뷰어들이 만취 상태로 빠지기 직전까지만 소개한다. 참고로 모든 문답에 [(웃음)], [ㅋㅋㅋ] 혹은 [으하하하] 등의 지문이 너무 반복되어 차라리 생략했다.

PM 8:58 STAGE 1
디테일이 살아 움직이는 에피소드
{맥주 마셨는데 왜 술이 오르지?}

아니, 근데 김영민 씨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김영민(이하 영민) 몇으로 보이시는데요?
저는 스물 셋 정도로 봤고, 남은경 기자는 30 전후로 봤대요.
영민 음… 나이 알려지면 손해 보는데… 서른여덟이예요. 71년생.
에그머니나! 정말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대표님, 이 놀라운 동안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형승 대표(이하 형승) 저랑 영민 씨랑 나이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요. 저야 뭐 그냥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죠. 캐스팅할 때 마음에 들어서 일단 {같이 하자} 하고 나서 프로필을 받아 보니 71년생인 거죠.
영화 찍으면서 어떠셨어요?
오점균(이하 점균) 갈등도 좀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 하나가 다 재미있었죠. 그런데 저예산영화이다 보니 러닝타임이 100분인데 촬영 횟수가 23회밖에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싸울 일이 있어도 싸울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가고 그러는 거죠.
형승 저는 좀 아쉬운 게 있었어요. 현장 로케이션 장소 중에 마지막까지 축제 신이 아쉽더라고요. 거기가 대학로 근처 산자락 동네였는데, 워낙 방송국 같은 곳에서 많이 촬영하러 오는 곳이라 주민들이 경험이 많아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할 건지 생긴 것만 봐도 아나 봐. 굉장히 제제가 심해서 감독님께서 하고 싶으셨던 걸 많이 못 건졌어요.
점균 제작부에서 고생을 엄청 많이 했죠. 저는 그 동네를 보자마자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 했어요. 고집 정도가 아니라 거의 드러눕다시피 했어요. 동네 섭외가 안 되니까 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술수를 부리더라고. 전주도 데려가 보고, 다른 사람 보내서 괜히 전주가 촬영 여건이 좋다는 얘기 시키고. 촬영감독까지 나서서 전주랑 이 동네랑 똑같으니까 전주 가자,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 왜냐면 가옥 구조가 틀리거든요. 중북방식은 집이 ㄷ자형인데 전주는 다 일자형이에요. 지붕모양도 각진 게 아니라 반듯하니 표시가 팍 나요. 좁은 땅에서 팍팍하지만 오밀조밀하게 사는 서울 사람들의 공기가 표현돼야 하는데, 전주는 한가하고 전원적인 느낌이더라고요.
형승 저도 설득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싶어요. 그때는 뭐 시기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장마도 다가오는 통에 감독님께서 빨리 결정을 해주셨으면 해서 재촉했던 거예요. 그림이 나온 걸 보니까 소시민적이고 억척스러운 봉순 씨의 동네로는 역시 감독님 고집이 맞는 결과더라고요. 전주에 갔으면 지대가 낮아서 다른 그림이 나왔을 거예요.
그래도 PD 입장에서는 속 많이 상하셨겠어요.
형승 작품에 대한 욕심은 저도 마찬가지니까 괜찮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촬영하면서 힘든 거 없었나요?
영민 재밌었어요. 김해숙 선생님도 워낙 잘 해주시고.
에이, 감독님 때문에 힘들었죠?
점균 그렇지, 그랬지? 솔직히 얘기해.
오점균 감독님은 디테일 신경 많이 쓰시고 섬세하시고, 까다로우신데 고통스럽지 않았나요?
영민 에이, 고통스러울 것까지야.
점균 그냥 좀 [짜아증] 났던 거지?
영민 아니에요~. 그런데 한 테이크가 길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여러 번 갔다는 게 아니라 한 테이크를 갈 때마다 길게 지켜보시면서 자연스러운 게 충분히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건 있더라고요.
감독님 작품은 워낙에 생활연기가 아니고서야 안 될 것 같아요.
점균 내 영화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꼭 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요. 제 생각 속 그림이나,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과 배우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니까 그런 얘길 할 수 있는 걸 거예요. 특히나 <경축! 우리 사랑> 같은 경우는 애초에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라 관객들에게 그 부분을 설득해야 해요. 그게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사실성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만듦새도 꼼꼼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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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9:23 STAGE 2
믿어서 이루어진 이야기

{여기 소주 안 팔아요? 나가서 사와도 돼요?}

<경축! 우리 사랑>은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래~} 싶은 얘기예요. 시나리오의 원안은 누가 잡으셨나요?
점균 전체적인 기본 컨셉트는 제가 잡았어요. 시나리오는 박윤 작가가 썼죠. 퉁퉁하고, 전혀 사랑할 것 같지 않은 아줌마가 사랑을 하게 되고, 잊고 살던 [사랑의 영역]에 들어가는 얘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당시에 불륜 이야기가 많았으니까 우리 영화는 똑같은 불륜 이야기가 아닌, 밝고 경쾌하고 즐겁고 예쁜 얘기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결단 내리기 힘든 시나리오 아니었을까요?
형승 오점균 감독님은 제가 스무 살 때 만난 오래된 선배님이에요. 제가 군대 가기 전, 감독님께서 홍대 미대 대학원 재학 중일 때 독립영화협의회에서 인연을 맺었죠. 그때 제가 좋아하던 가수 송창식 씨를 닮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선배였어요.
점균 뭐? 송창식을 좋아했어?
형승 그러고 그 후에 영화계에 발을 담그게 됐는데 부산국제영화제 한 리셉션장에서 감독님을 만나 뵙고 {영화사를 할 예정이니까 좋은 거 준비하고 계시면 같이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오 감독님께서 가져온 시나리오가 <경축! 우리 사랑>이었어요. 제 취향과는 무관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에 끌리더라고요. 독특한 영화로 자리를 잡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점균 감독님이 <생산적 활동> 등에서 보여주셨던 특유의 유머를 믿었으니 더욱 쉽게 결정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시작을 했는데 한 번 엎어졌어요. 2005년 영화진흥위원회 HD 지원 선정이 됐는데 곧 1순위로 밀리더라고요. 이유인즉슨 미풍양속을 해친다나?
어찌나!
형승 그런데 2006년에 코미디 부분을 보강하고 다시 작품을 냈는데 1년 사이에 시대가 변하더라고요.
플롯만 봤을 때는 매력적이더라도 윤리적으로 다소 황당무계했는데, 영화로 완성된 걸 보니 그 이상의 매력이 보였어요.
점균 운이 좋았던 거죠. 김해숙 선생님, 기주봉 선생님, 그리고 다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도 다 경험도 많고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인데 시나리오 보시고 흔쾌히 해주시겠다 해서 고마웠어요. 여러 가지로 고마운 영화예요. 촬영하면서 날씨까지 도왔어요. 봄에 찍었는데 어떻게 비가 한 번도 안 와?
형승 축복이었죠. 쉬는 날만 비 오고, 우리 촬영 날은 비가 어떻게 하루도 안 왔어요.
김영민 씨는 대학로에서 확실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배우로서 결단 내리기 힘들지 않으셨나요?
영민 아뇨? 전혀. 오히려 영화가 처음에 덜컥 하고, 다시 제작된다고 들었을 때 애착이 강하게 생겼어요. 더 잘 만들자, 더 잘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로 배우가 아니었다면 했을까요? [아줌마랑 사귀는 역이래~ 싫다~] 하는 거부감이 없었을까요?
영민 안 그랬을 것 같아요.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축! 우리 사랑>의 파격은 감각적인 파격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파격이잖아요.
엄마가 제 남친과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각적인 파격이던데요….
형승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댓글 보신 거 있어요?
점균 오, 그래, 재밌는 거 하나 있더라?
형승 네, 그거. 영화평에 {요즘 여자친구 엄마가 이성으로 느껴져}라고 달려 있더라고요.
점균 그러면서 별 세 개 줬더라?
형승 그 기분이 싫은 거지. 자기도 그런 자기가 싫은 거야!

PM 10:34 STAGE 3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연

{그럼 또 내가 한 잔 말아드려야죠!}


구상과 봉순 아줌마의 로맨스는 처음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가 중반부에 감정 흐름이 딱 바뀌면서 급물살을 타죠. 봉순 씨가 {난 그냥 니가 좋아…}라는 대사가 분수령이었어요.
영민 사랑이라는 게 원래 단계를 밟는 게 아닐 거예요. 어느 순간 딱 사랑하게 되는 거죠. <경축! 우리 사랑>은 나이 차이가 아닌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전체의 상황에 몸을 맡기고, 가장 중요한 자연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대사가 정말 현실적이에요.
그 전까지 주저하던 구상의 마음이 빨리도 무장해제 되더라고요.
점균 그 전에 나름대로 봉순 씨뿐 아니라 구상의 마음도 단계가 오르고 있었어요. 김해숙 선생님도 걱정하셨던 부분인데, 이 로맨스는 단계를 생략하면 추하게 보일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우리의 의도가 어긋나잖아요. 그래서 아줌마가 힘들게 소처럼 살고, 딸이 구상을 버리고 가니까 미안해서 반찬도 얹어 주고, 휴지도 건네주는 등 자연스러운 단계를 중요하게 보여줬어요. 그때 배우의 표정도 정말 중요했어요. 놀라움, 안타까움, 연민이 교차하는 표정.
그 장면에서의 봉순 씨는 마치 구상의 엄마 같았어요.
점균 그 감정을 세게 표현하면 안됐으니까요. 아줌마가 먼저 좋아하지 않았어요. 구상이 먼저 스킨십을 하잖아요.
아니, 그건 술김에 실수한 거잖아요.
형승 지금 이거 반란이에요? 맞죠?
영민 그…그렇죠.
점균 봉순 씨는 구상에게 미안한 게 쌓이니 어느 순간 경계도 알 수 없게 확 다른 영역에 가는 거죠. 그래서 둘이….
그러게요, 그놈의 술이 대체 뭔지 말이에요. 그런데 <단풍잎>과 <생산적 활동>을 찾아 봤는데 둘을 섞으니까 <경축! 우리 사랑>이 되더라고요. 의도하신 건가요?
어? 그러네? 진짜 그렇다. 나이도 그렇고 스토리나 이런 것도 그렇고.
<단풍잎>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하는 대사 중에 {사람이 늙을수록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까짓 남의 눈이야 무시해버립시다}라는 대사가 있었잖아요. <생산적 활동>도 마찬가지로 섭리대로 하는 게 좋다는 얘기이고요. <경축! 우리 사랑>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요.
형승 아하, <단풍잎>의 자연친화적인 메시지, 그리고 유머도 비슷해요. 함부로 웃어버릴 수 없는데 결국은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 웃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들이 비슷해요. <생산적 활동>도 그렇고요.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경축! 우리 사랑>은 불가능한 일 같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이나 세상 어디에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감독님 단편들 보고 어떠셨어요?
영민 잘 모르지만 숨겨져 있는 것을 끌어내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분명히 있는데 표현하지 못 하고 감춰져 있는 감정.
그걸 꺼내 보이시니까 웃으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거겠죠. 똑같이 일상적이지만 홍상수 감독의 일상성과는 또 다른 일상성이에요.
점균 음… 일견의 자연스러움이나 일상적, 생활적인 부분이 공통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는 시선이나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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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1:43 STAGE 4
불황을 기회로 양분 삼은 대안적 대중영화

{이딴아요~ 어디 가서 딱 한 좐만 더 하죠~!}

제가 제일 좋았던 장면은 다리를 건너서 둥글게 돌아서 내려가는 길이었어요.
점균 나도 그 길이 탐나서 꼭 그 동네에서 해야겠다고 한 것도 있었어요. 축대의 벽이 굉장히 높아서 성 같아요. 성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있는 것 같았죠. 그 길도 예쁘고요.
거길 부감으로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점균 배경으로 고층건물들 보이고, 카메라 돌리면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 나오고… 저도 좋았어요.
어떤 장면들이 제일 좋으셨어요?
형승 구상이 아줌마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모든 걸 다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 다음 샷이 바로 기주봉 선생님과 혜나 씨가 어처구니없이 텅 빈 표정을 하고 보고 있는 거잖아요. 이상한 감정이 포착이 되니까 그 장면은 또 제일 재미있어요.
감독님은요?
점균 나는 거기 나오는 곤충들. 특히 똥파리, 너무 좋아. 너무 예뻐, 너무 귀여워. 너무 살아있는 느낌.
형승 그 인서트 컷에서 저와 감독님 관점이 너무 달랐어요. 주변에 의견도 많이 묻고, 비호감인 건 가능하면 빼자며 감독님과 회의를 여러 번 심각하게 했어요. 하지만 저예산이니까 좀 더 작가의 폭을 넓게 해보자, 그 안에서 충분히 작가의 의도가 보여야 관객들이 느끼고 비전도 갖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예산의 영화니까 충분히 해봄직한 시도다, 했죠.
감독님의 고집이 이겼군요.
형승 원래 고양이 등등, 되게 많았는데 그나마 합의 하에 몇 마리 뺀 거예요. 동물, 곤충, 채소, 흙, 비, 하늘을 좋아하세요. 원형이 그러신 것 같아요. <비가 내린다>라는 작품도 그랬고.
자연은 좋은 거지만 똥파리가 예쁜 건 충격이군요.
점균 그 색깔은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색이에요. 푸르스름하면서 윤기가 나고, 녹색 빛이 나는데, 얘들은 또 움직이는 게 지그재그로 활발하게 움직여요
정신머리가 없죠.
점균 여러 마리가 움직이는 장면이 너무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아요. 살아있다는 게 좋아. 미추에 대한 관념도 성이나 애정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통하는 게 있어요. 봉순 씨가 똥파리라는 게 아니라, 아줌마의 사랑이 자연의 생동감에 맞닿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똥파리 좋았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그래서 되게 기분 좋았다고.
형승 감독님,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영민 저는 그 인서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던데요. 의미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럼 김영민 씨도 그 장면이 가장 좋으셨나봐요?
영민 저는 배우니까, 상대 배우와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신이 좋았어요. 아까 말씀하신 눈물 닦아 주는 신. 쉽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던데, 선생님과 영향을 계속 주고받고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걸 느낀 게 좋았어요.
자극적이었겠어요.
영민 때로는 그런 때에 섹스보다 더 큰 쾌락이 있어요. 쉽지 않은 건데 이번에 느꼈어요. 굉장히 유명한 모 배우도 평생 영화를 찍으면서 단 몇 번밖에 느끼지 못 했다던데 말이에요. 김해숙 선생님 덕분이죠. 연기에 대한 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계신 분 같아요.
형승 저는 주연, 조연, 단역 모두 200퍼센트 만족이에요. 동네 분들로 나오시는 분들도 모두 대학로 최고의 연극 베테랑들이시고, 기주봉 선생님, 김해숙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완벽했어요. 기주봉 선생님은 조폭, 국방부장관, 강력계 형사 과장 하던 분이잖아요. 그 마초 이미지가 한 방에 무너지죠. 와이프를 되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워요. 저예산영화는 캐스팅이 힘들어서 호흡이 끊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경축! 우리 사랑>은 그런 게 없어요.
제작비가 얼마였는데 계속 저예산이라고 하세요?
형승 7억이요. 원래 영진위 HD 지원비가 총예산 10억으로 제한이 돼있어서 맞췄어요. 거기서 5억 원을 지원해주니까 일단 시작을 했는데 나머지 2억과 마케팅 비용 3억 원을 끌어와야 하더라고요. 어떻게 KTB 네트워크 다양성 펀드에서 지원해 주셔서 날개를 달았어요.
오히려 영화계 불황은 안 겪는 건가요?
형승 기회였어요. 재작년 같았으면 눈에도 안 띌 작은 영화였죠. 그런데 이제는 큰 작품들이 없으니까 <경축! 우리 사랑> 같은 양질의 콘텐츠가 눈에 띌 기회를 갖는 거죠. <경축! 우리 사랑>은 잘 돼야 돼요. 그래야 이런 영화들이 계속 나오죠.
시사하고 반응이 굉장히 좋죠?
형승 기자 시사는 물론, 일반 시사 때도 호평을 받았고요. VIP 시사 때 <박쥐>팀이 다 오셨었어요. 박찬욱 감독님, 송강호 선배, 신하균 씨 등. 그분들이 {깔깔깔} 박장대소를 하며 보시더라고요. 송강호 선배는 심지어 {이 영화 송강호가 재미있다고 했다고 홍보하라} 하셨어요.
<박쥐>도 웃었군요.
형승 네, 반응이 전체적으로 코미디죠. 설문 결과를 봐도 90퍼센트 이상이 그래요.
점균 웃기긴 웃기죠?
밥정, 몸정의 공포를 이해해야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형승 그게 또 예상 밖이더라고요. 저희도 원래 스폰지 쪽이랑 마케팅 회의 하면서 메인 타깃을 40대로 잡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40대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아저씨가 불쌍한, 가정이 파탄 나는 [반란] 영화더라고요. 오히려 20대 중반 이후의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왔고, 20대 초반의 지지도도 높아요.
점균 요즘 젊은 분들은 이런 상상력 코드에 더 익숙해서인지 잘 받아들여요. 나이 드신 분들 중 자유로운 바람을 가진 분들은 재미있게 보시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 거예요. 쉽지 않게 살아가는, 무엇이든 다 유지해야만 살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이후로는 가정,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냉 사케, 친구, 빨간 스타킹, 동안 되는 법 등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가 오갔던 관계로 후략합니다.

진행 이해림 남은경 기자 | 글 이해림 기자 | 사진 김태선

Posted by 미역별

인류애적 독설의 페이소스

마이클 무어가 미국 의료보험체계에 독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논조가 인류애적이고 솔직하다. 무릇 그런 독설에는 힘있는 페이소스가 있는 법이다.

 

식코 SiC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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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마이클 무어가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의 부조리와 폐단을 폭로한다. 수익 논리에 사로잡혀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미국 의료 보험사, 그들로 인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소시민들의 케이스로부터 출발해 영국, 프랑스, 쿠바 등 [부러운] 나라들의 의료 정책이 국민들의 생활과 인식에 실생활적으로 어떤 혜택을 주는지까지 파고든다.

 

STAFF 각본•감독 마이클 무어

DETAIL 러닝타임 123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홈페이지 blog.naver.com/sicko2008

 

영화의 시작부터 부시의 연설이 인용된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의사들이 실직하고 있어요. 의술을 펼칠 기회도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것이 미국의 소시민들이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 해서, 보험사로부터 가입을 거절 당해서 세상을 떠났거나 아픈 채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못 박는다. {그들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란다. 베트남전 직후 미국이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의 행복한 자료화면이 이어지며 마이클 무어의 독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눈 여겨 봐야 할 변화는 마이클 무어의 독설이 이제 더 이상 [부시까] [안티]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변방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소수에 대한 인류애적 접근을 함에 있어 위정자들만 바라보며 악으로 깎아내리는 대신에 그들이 만든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적 결함을 조근조근한 톤으로 지적한다. 동시에 <스타워즈>의 유니크한 오프닝 시퀀스를 패러디해 길고 긴 의료 보험 가입 거절 질병 목록을 보여주는 등의 풍자적 위트는 버리지 않았다.

악보다는 진심으로 다가서는 마이클 무어는 분명 이전보다 공평해졌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너무 잘 구성돼서 문제다. 현실 그대로가 아니다. 물론 그는 온전한 현실만을 보여주지만 편집된 결과물까지도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에 있는 팩트들 중 의도에 맞게 극대화된 단면만 취사선택해 [잘 엮은] 것이 다큐멘터리적 공평함의 잣대는 아니다. 이면에 있을 흑색은 가리고, 자신의 주장에 뒷받침되는 백색만 남겨 만든 불공평한 큐브다. <식코>는 상업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라 그렇다. 픽션에 가깝도록 [너무] 영민하게 잘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100퍼센트 공평하지 않은 대신에 힘있는 페이소스와 감동, 풍자와 위트, 웃음을 얻었다.

마이클 무어는 주장한다. {1. 모든 미국 거주자([국민]이 아니다!)는 누구라도 평생 무료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2. 모든 (민간) 의료 보험사는 없어져야 한다. 3. 제약회사는 공공 기관처럼 강력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이 주장이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미심쩍게 들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영제국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면 분명 당연한 얘기를 하면서 왜 소리를 높이는 거냐고 비웃을텐데!

이해림 기자

*무비위크 321호 게재분 (편집 전)

Posted by 미역별
<마이 뉴 파트너> 안성기 & 조한선
나의 뉴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안성기와 조한선이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다. <마이 뉴 파트너>는 8년째 소식도 없이 지내던 경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마약 수사를 진행하며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하는 영화다. 새 파트너가 된 안성기와 조한선은 실제 부자지간처럼 여유롭고 흐뭇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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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서로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이다.

안성기 그치 좀. 말도 드문드문 하고 웃음으로 때우고. 이런 것 좀 비슷해.(웃음)
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안성기 30년 전 팬레터를 한창 받을 때도 ‘오빠라 불러야 할지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었어. 워낙 처음부터 늙어놓은 거라 지금까지 그냥 가는 거야. 지금도 오빠 소리를 듣는다니까.(웃음)
조한선 전 선생님을 뵈면서 정말 열심히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면?
안성기 든든하지. 키도 훤칠하고. 원래 내가 평범하게 장가를 갔으면 딱 한선이 나이만 한 아이가 있었을 거야.
조한선 저야 선생님 같은 아버지가 있다면 당연히 좋죠. 맛있는 것도 매일 사주시고 낚시도 함께 다니고.(웃음)
안성기 우리가 촬영 안 하고 낚시만 한 것 같네.
조한선 그때 정말 재밌었거든요. 선생님은 낚싯대만 넣으면 바로 물고기가 잡혔잖아요.
안성기 한선이는 이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심성이 곱고 순하고, 쑥스러워하고 그랬지. 그래서 금방 친해지더라고. 근데 키가 생각보다 정말 크더라.
조한선 선생님과 함께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영광스러웠어요. 탄탄한 버팀목이 돼주실 것 같아서.
젊은 배우들이 안성기 때문에 연기를 시작했다는 말을 종종 하던데?
안성기 신현준 얘기 하는구나. 전부들 그래. 하하. 사실 말을 재밌게 하려고 그랬던 거 같아. 젊은 배우들이 어릴 적부터 날 봐왔는데 아직도 건재하니 나와 함께 연기한다면 좀 부담스런 느낌이 들긴 할 것 같아. 그래서 요즘 부담스럽지 않게 바로 풀어주려다 보니 내가 많이 망가져.(웃음)
조한선 선생님이 원래 술을 잘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현장에서는 잘 맞춰주세요.
안성기 술이 좀 됐을 때는 사람이 갑자기 좀 귀여워지지.(웃음)
<마이 뉴 파트너>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서 촬영하며 실제 아버지, 아들이 생각나지는 않았나?
안성기 근데 상황이 너무 달라.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히 등지고 살다가 만나는 이야기잖아. 아들도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고 아버지도 워낙 못살고. 그래서 대비가 안 되더라고. 우리 두 아들을 생각하면 귀엽거든. 시나리오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지.
조한선 영화에서 안성기 선생님과는 불편해야 하는 관계여서 연기할 때는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촬영이 없는 날은 친아버지처럼 지냈죠. 제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나더라고요. (병상에 오래 계시다 돌아가셔서) 제가 아버지와는 추억이 많이 없거든요.
영화에서 안성기의 아들이나 딸을 연기한 배우 중 조한선이 제일 나이가 많지 않나?
안성기 제일 많던가.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임수정이 딸이었고, <라디오 스타>나 <아름다운 시절>에서도 꼬마였고…. 아, <화려한 휴가>의 (이)요원이가 있구나.
조한선 저보다 한 살 많습니다. 휴, 다행이다.(웃음)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났는데, 서로 호흡이 잘 맞아가는구나 싶은 느낌을 받은 때가 언제였나?
안성기 영화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우리가 아마 처음 촬영했지?
조한선 달동네에서 강아지를 쫓아다닌 장면이었어요.
안성기 날이 정말 더웠는데 강아지 쫓아 ‘헉헉” 뛰어다니면서 많이 풀렸어.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이 해소되는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한편으로는 미스터리 수사극도 펼쳐지는 영화라 연기로 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성기 부대끼는 게 좀 있었지. 티격태격하다가 사람도 좀 죽고 그러다 감동도 있고. 우리도 어디다 포인트를 확실히 맞춰야 할까 감정에 혼돈이 좀 있긴 했어. 여러 요소를 다 보여주는 게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운 요소도 있었거든. 물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나중엔 이게 장난이 아닌 거야.(웃음)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여서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까 궁금한 부분이기도 해.
조한선 저는 대사가 문어체라서 좀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감독님이 그대로가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연기를 배우는 입장이니까 시키시는 대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액션 신도 많던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안성기 나야, 역할이 한물간 경찰이니까 추적할 때도 제대로 못 쫓아가잖아. 얼마나 좋아. 헉헉 거리다 나중에 스윽 나타나고, 편했지.(웃음)
조한선 폐수 처리장에서 하는 마지막 액션 신이 있는데, 저는 합을 맞춰 진행해서 누가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거든요. 근데 선생님 액션은 정말… 보면서 감동받았어요.
안성기 그 장면 촬영할 때 참 힘들긴 했지. 세트장에 철망이 깔려 있는데 용접한 부분이 굉장히 날카로웠어. 거기서 계속 뒹굴어서 액션 끝나고 보니 등이랑 얼굴에 피가 착착 맺혔더라고. 액션도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감정을 교류하는 신이기도 해서 힘들더라고. 근데 끝나고 느낌이 좋아서 다행이었지. 한선이는 운동을 계속 해 와서 발차기도 부드럽고 굉장히 날렵했어.
조한선 (웃음)저도 좋은 신을 잘 마무리 지어서 좋았습니다.(웃음)
안성기
아버지처럼 포근한 ‘국민 배우’의 웃음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 배우 >> 근데 결국 거절해. 예전엔 그걸 잘 못해서 끌다가 결국 못한다고 한 적이 많았지. 내가 쉽게 거절을 못할 듯, 잘하면 넘어갈 듯 보이나 봐.(웃음) 요즘엔 결단을 빨리 내려. 너무 시간 끌지 않게 오히려 빨리 얘기하는 게 더 좋겠더라고. 그 대신 이유를 확실히 해주면 괜찮은 것 같아.
국민 배우 안성기의 아버지 >> 사실 영화계 계신 분들의 감성은 아니셨던 분이지. 아이스하키도 하시고, 미식축구도 처음 들여오고, 손기정 선생님 같은 분들과 함께 운동하러 다니셨던 체육 교사. 영화 제작도 몇 편 하셨지만 다 안 되고 나중에 영화 기획을 좀 하셨지. 제작하신 <황혼열차>에 출연도 하시고. 일본배우 미후네 도시로 스타일로 근사하게 생기셨거든. 김기영 감독, 배우 박암 선생과 동창생인데, 술도 못하시고 일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시는 신사셨어. 나도 비슷하지만 좀 더 재미나게 지내잖아.(웃음)
두 아들이 배우가 되겠다면 >> 요즘 애들은 이쪽 일에 다 관심이 많아. 우리 애들은 내가 이 일을 하니까 좀 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게 사실이고. 좀 안 좋을 때는 아버지가 다른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을 텐데, 요즘에는 인정을 해주고 분위기도 좋으니까 좋게 생각하지. 요즘 애들은 확실히 영악하고 정보도 많으니까 연기를 하고 싶다는 판단은 본인이 잘할 것 같아. 한다고 하면 준비를 잘해야겠지.
멜로영화에 출연한다면 >> 1980년대는 영화다운 영화를 찍어야 하고 좀 사회성 있는 영화를 찍어서 영화가 제자리를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제작비도 없고, 촬영장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멜로드라마 장르를 많이 놓쳤지. <겨울 나그네> 정도가 정통 멜로였을까. 참 별로 없었어. 지금은 꼭 멜로드라마의 느낌보다는 굉장히 잔잔하고 섬세한 걸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차분한데 이야기의 울림이 큰 그런 영화.
차기작 <신기전>과 <현의 노래>는 >> <신기전>은 세종대왕 역으로 특별 출연을 해달라고 해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참 매력적이더라고. 근데 특별 출연이면 하루나 이틀 정도 출연하잖아. 1주일을 찍더라고. 아주 제대로 출연이야.(웃음) <현의 노래>는 느낌이 참 좋은 영화야. 스케일도 크고 서사성도 좋더라고. 주경중 감독과 얘기하면서 “진지하면서도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영화가 좀 필요하다, 웃기지 않고 절실하게 그리면 좋겠다”고 했더니 힘이 된다고 하더라고. 우륵 역이라서 촬영 전에 가야금을 배우려고 해.
연륜이 쌓이다 보니 >> 젊었을 때는 실수도 쉽게 용납되는데 나이 먹는 게 점점 힘들게 느껴져. 매사에 조심해야 하고 말할 때도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만의 시간은 예전이 더 많았지. 요즘엔 자꾸 사람들을 챙기느라 내 것을 많이 잃게 돼. 자식 생각,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도 들고. 삶의 때는 많이 묻는데 깊어지는 맛이 덜한 거야. 여기저기 행사도 많고 맡은 일도 만만치가 않아. 내 시간을 좀 많이 가져야겠다는 게 요즘 내 숙제야.
조한선
겸손한 ‘완소 훈남’의 풋풋한 미소
열혈 꽃미남 조한선 >> 아휴, 제가 꽃미남은 무슨. 그런 소리, 안 하세요. 잘생긴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인터넷도 잘 안 봐요. 혹시라도 제 얘기 나오면 쑥스러워서.(웃음)
건달에서 경찰로 상황 역전 >> 사실 <열혈남아>의 건달 치국이와 <마이 뉴 파트너>의 경찰 강영준 사이에 영화가 한 편 더 있었어요. <특별시 사람들>이라고, 정말 편하고 재밌게 촬영한 영화인데 아직 개봉을 못해서 많이 아쉬워요. 영준이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역이었어요. 김종현 감독님과 안성기 선생님과도 함께해 보고 싶었고요. 영준이는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죠. 남들이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왕따’ 같은 인물이에요.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굴지만 처음부터 버릇이 없었다기보단 버릇이 없어진 사람이죠. 어릴 적 아버지의 그릇된 모습을 보고 사람이 변한 거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서 뒤돌아 볼 시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고.
롤러코스터 위에서의 위험천만한 액션 신 >> 지금 생각하면 제가 어떻게 촬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촬영 전에 정석용 선배님과 촬영장소인 놀이공원에 미리 답사를 갔었어요. 아마 촬영 날, 바로 롤러코스터 위에 올라가라고 했다면 정말 무서워서 못했을 거예요. 열차가 올라가는 최고점이 40~50미터라던데 거긴 와이어를 달 수가 없다더라고요. 그 위를 맨몸으로 뛰어다녔죠.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바로 떨어지는 상황이었어요. 열차가 지나가면 제가 고개를 돌리는 컷이 있는데 그땐 진짜 너무 긴장돼서 저 멀리서 열차가 오는데 다리가 절로 후들거리더라고요. 너무 실감나서 다행히 한 번에 촬영이 끝났어요. 이제 다시는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진짜 무서웠거든요.
조한선의 동생 조한준 >> 전 동생이 이 영화에 정말 출연 안 했으면 했어요. 연기 조언 같은 거요? 전혀 안 했죠. 동생이 연기할 때는 일부러 촬영장에도 가지 않았어요. 전 정말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데, 동생이 괜히 출연해서 조금이라도 촬영에 누가 될까 봐, 실수할까 봐 걱정스러웠거든요. 근데 감독님이 저와 동생이 똑같이 생겼다면서 제 고교 시절 역을 꼭 동생이 연기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휴. 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제 동생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닮았다는 거죠. 하하.
지금 조한선에게 연기는 >> 사실 <뉴 논스톱 3>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생계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연기가 재미있어요. 잘은 하지 못해도, 아직도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요. 솔직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바늘로 찌르면 피가 나오듯 정직하게. 근데 어떻게 하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알면 좀 가르쳐 주세요.
차기작 <기억, 상실의 시대>는 >> 재밌는 영화예요. 박진희 이기우 씨와 출연하는데 저는 박진희 씨를 짝사랑하고 박진희 씨는 이기우 씨를 짝사랑하죠. 제가 여자 속옷도 팔고, 리코더도 부는 재밌는 역이에요. 아, 근데 내가 얘기하면 꼭 재미없게 느껴지더라고요.
안영윤 기자 2008.02.25
Posted by oyun